나의 유심론(唯心論)

내가 내세운 세 가지 큰 항목 중의 하나인 불경 한글 번역은 나의 주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용성대사의 큰 뜻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불경번역사업은 일찍이 대사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불경은 승려들의 독점물이 아니다. 차라리 보다 많은 대중들의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은 한문을 해독하지 못하는 한글 세대들이 계속 자라나고 있기 때문에 불경 번역은 한국 불교의 가장 시급한 최대사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경 번역과 더불어 또다시 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일은 불료의 대중화 내지 불교의 현실화 운동이다. 사람들이 한가로운 때, 신심이 두터운 때에는 사찰이 산간에 있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사람들이 분주하고 어떠한 방법으로도 믿음이라는 것을 가지기에 어려운 시대에서는 신자와 승려들의 대화와 이해소통으로 그 갭을 메꾸어야 한다.

사람들은 시달리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먹고 출근하고 많은 일과 사교에 시달리고 그리고 저녁이면 솜같이 지쳐서 집으로 돌아간다. 밥을 먹고 잠에 떨어진다. 다음날도 같은 일이 되풀이 된다. 그들에게 사찰을 찾을 만한 시간이 없는 것이다.

불교가 그들을 찾아가야 한단 말인가는 다음 문제가 따라온다. 어떻게 대중들을 찾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승려들의 교육문제와 연관된다. 이제는 극락이라든가 기이한 선문답으로 대중들을 거느릴 수 없다. 그러기에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너무나 영악하다. 그들은 환상이라든가 가상적 세계의 약속을 뿌리칠 수 있도록 충분히 영리하다. 그렇기 때문이 승려들은 그들과 정식으로 만나는 수밖에 없다. 정연한 논리로서 보리의 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나로서 이 세가지 문제는 파벌이라든가 이헤타산을 넘어서서 공감할 수 있고 공감으로써 실현시킬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랬는데 어떻게 그런 결과가 빚어질 수 있었단 말인가. 내가 제외한 모든 안건은 깡그리 부결되고 말았었고 그리하여 나는 며칠을 번민한 끝에 탈퇴 성명을 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각계의 지인들은 거기서 나의 경솔성을 지적하고 돌이켜 생각하라고 권유했었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런 식으로 한국 불교의 내일을 바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그 탈퇴가 오히려 한국 불교를 제자리로 옮겨놓는 경첩이 되고 말았지만, 탈퇴라는 너무오 소란스러운 사건으로까지 치달리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때의 나의 심경엔 많은 앙금을 남기고 말았다. 그 앙금은 지금도 조용한 시간이면 나를 찾아온다. 그리하여 나는 이렇게 고즈적한 밤에 문을 열고 나가 나무 숲 사이로, 냇물가로 거니는 것이리라.

도선사의 마지막 층계를 밟고 내려가면 밤나무숲에서는 물큰한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그리고 10월의 독특한 산 냉기와 달빛의 매끈매끈한 감촉이 나를 휩싼다. 그 냉기가 좋다. 그리고 달빛이 좋다. 때때로 나는 밤숲을 거닐면서 (좋다 좋다)라는 말을 무심하게 입밖으로 흘러낼 때가 있는데, 냇물을 따라 흘러내려 가고 있는 한 이파리 단풍을 주워들고 그 앙상히 드러난 엽맥을 보고 있을 때, 이슬 내린 바위에 않아 잠들어 조용해진 시내로 뻗어내린 신작로를 보고 있을 때, 그 말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소리내지 않으면 안되는 성질의 것처럼 보인다.

나는 밤의 산길을 좋아한다. 길들은 끝이 없이 흘러간다. 그리고 냇물도 끝없이 흘러간다. 왜 흘러가는 것일까. 냇물은 지면이 낮기 때문에 흘러내리고 길들은 사람들의 발자국의 때가 묻어서 흘러내릴 것이다. 그 자체의 의지로써 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달빛 아래 보고 있으면 그것은 한 의지처럼 보인다.

마치 도라든가 보리라는 말이 그 자체로서도 품격을 지니고 있는 듯이 생각되기에. 달빛 속에는 사해대중의 아픔이 보이지 않은 밀도로서 들어차 있다. 그래서 대승들은 그 달빛 속으로 나아가 정진하는 것이리라. 중 일연의 기록에는 광덕은 밤마다 달빛 위에 떠올라 정진하였고 현수도 달빛 속에서 그의 선을 맞아들였었다.

기록만이 아니다. 사실에 있어서도 달빛은 승려들의 정진과 깊은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대승들의 모든 게송 속에는 한두 마디 달빛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아니 달빛만이 아니다. 저녁 노을이가든가 새벽의 써득써득한 빛깔은 승려들이 너무도 사랑하는 색채이다. 아침 다섯시가 되면 승려들은 눈을 뜨고 일어나 대빗자루를 들고 절 뜰을 한바퀴 쓸고 구석구석에서 진회색의 냄새가 풍기는 법당의 문을 밀고 들어간다. 아침 염불을 왼다. 법당문을 열고 나올 때는 벌써 건너 산 위로 붉고 미숙한 햇빛이 트고, 나오던 승려들의 손은 합장하여 지고 허리는 겸손하게 구부러진다. 절간을 둘러싼 대숲에서 바람에 이파리가 흔들리는 소리, 풍경이 흔들리는 소리, 이 아침의 소리들은 너무나도 미세하고 신경질적이다. 마치 신라인들의 귀금속품과 같다.

그렇게 긴 아침이 서서히 사라지고 난 뒤, 산으로 빼꼭이 둘러싸인 산간에는 저녁이 줄달음질치듯이 뒤따라온다. 더욱이 가을과 겨울에는 아침과 저녁이 거의 일직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만산은 종일 붉은 노을에 잠겨 있는 듯하다. 아아, 승려들은 그 시간을 사랑한다. 더욱이나 그런 시간의 벼랑에서 또는 토굴에서 정신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노을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온 몸으로 토해낸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윽고 그 달빛과 노을과 일출 위로 떠올라온다. 그런 다음 그들의 허적허적한 발길은 토굴을 빠져나 세상으로 향하여진다. 법설이 시작되는 것이다.

또다시 나는 나의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그래서 머릿글을 빨리 끝내야겠다. 길을 보고 있을 때 사람들은 걸어왔다는 사실과 그리고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오늘밤 나에게도 그러한 사람들의 상습적인 사고는 되풀이 되어 일고 있다. 나의 반생은 어떤 일을 하면서 걸어왔던가. 그리고 어떻게 앞으로 걸어가야 할 것인가.

서구의 어느 시인은 (모든 연대기적인 사건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것이 어떻게 그의 정신의 성장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는 사실만이 중요 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은 불교적인 어투로 번역하자면 그의 본성을 어떻게 찾아가고 있던가라는 것이 될 것이다. 즉 수도기가 될 것이다. 나는 다음 글이 수도기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것을 바라기에는 한 사람의 삶 속에는 너무나 너저분한 사건들이 가득 차 있고 우연이 널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건들 속에서 내가 염원한 나의 유신재건이라는 커다란 명제를 볼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그것이 어떻게 싹트고 어떻게 커 나왔던가를.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것은 써걱써걱한 관념이 아니고 싱싱한 삶이며 웅변이 아니고 사실이며 허위가 아니고 실체일 것이다. 그렇기만 한다면 그것은 진짜일 것이다.

그러면 대중들이여! 우리는 이제 저 길을 따라 내려가 보자. 과거를 만나러 가자.
淸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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