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11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지금 이곳의 여러 층으로 된 강당에서 멀리는 황하강에 이르며,
위로는 해와 달까지 보지만, 손을 들어 가리키는 것, 눈으로 보는 것,
가리키는 것은 모두가 무형(無形)이라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아직 흐름(漏)을 끊지
못하고, 처음으로 배움의 길에 들어선 성문(聲聞)이거니와, 일체의
형상에서 벗어나야 자성이 있음이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렇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말한 것처럼 미세한 것은 가려낼 수 없고, 일체의 형상에서 벗어나,
견성이 있다 한다면, 네가 가리키는 것은 보는 것이 없겠구나.
지금 다시, 너에게 말하겠는데, 네가 여래와 함께 기타림에 앉아, 숲과
동산, 그리고 해와 달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상을 보아라.
형상이 각기 다르지만, 반드시 보는 것이 네가 가리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어느 것이 보는 것이 아니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제가 사실 이 기타림을 두루 보았으나,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보는 것이
아닌지를 알지 못합니다.
만약, 나무가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나무를 본다고 하겠으며,
만약, 나무가 보는 것이라면 어떻게 나무라고 하겠습니까?
만약, 허공이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허공을 보며,
만약 허공이 보는 것이라면 어떻게 허공이라고 하겠습니까?
제가 다시 생각하니, 온갖 형상을 자세히 밝혀 보니,
보는 것이 아님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러하니라.”
그때, 대중 가운데 유학자(有學者: 배워야 할 사람)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멍청하게 이치를 알지 못하여, 한동안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 마치, 쥐고
있던 물건을 잃어 버린 듯하였다.
여래께서 그들이 어리둥절함을 아시고, 가엾은 마음을 내시어 아난과 여러
대중을 위안하시기를,
“선남자들아! 위없는 법왕의 진실한 말씀이며, 여여(如如)한 말씀이기에
속일 수도 없고, 거짓도 아니니, 말가리(末伽梨)들이 죽으면 없어진다는
네 가지 거짓으로 혼란하게 하는 것과는 같지 않으니, 너희들은 자세히
생각하여 애모(哀慕)함을 욕되게 하지 말아라.”
그때, 문수사리 법왕자보살이 여러 사부대중을 가엾게 여기시여,
대중 가운데 계시다,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에게 예를 올리고, 공손히
합장하며,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여기 모인 모든 대중들은 여래께서 밝혀주신 두 가지 보는 것과
형상이나 허공에 대하여 이치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앞에 나타나는 허공과 형상이 보는 것이라면 가리킬 것이
있어야 하며, 만약 보는 것이 아니라면 볼 것도 없어야 할 터이니,
여래께서 말씀하신 근본을 알지 못하여, 놀랍고, 두려워 하나, 옛날보다
선근(善根)이 적어진 것은 아닙니다.
바라옵건데,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어 이를 밝혀주시옵소서.
모든 형상과 보는 것이 본래 어떠하여, 이것과 이것이 아님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와 여러 대중들에게 이르시기를,
“시방의 여래와 보살들이 스스로 머무는 삼마지 가운데 보는 것과 보이는
대상과 생각하는 모양은 마치 허공의 꽃과 같아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
보는 것과 보이는 대상은 본래가 보리의 오묘하고, 깨끗하고, 밝은 실체이니,
어찌, 그 가운데 ‘이것이다, 저것이다’ 할 것이 있겠느냐?
문수사리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네가 문수인 것과 같이,또 다른 문수가 문수사리냐?
문수사리가 아니냐?”
문수사리가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진실한 문수사리이므로, 또 다른 문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이는 두 문수사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문수사리가 없는 것은 아니기에, 실제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
라고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top
“보는 성품의 오묘하고, 밝은 것과 허공과 물질도 이와 같이, 본래 오묘하고,
밝은 위없는 보리의 깨끗하고, 원만한 자성이니, 이것을 허망하게, 허공과
물질, 듣고, 보는 것이 마치, 두개의 달과 같으니, 어느 것이 달이고, 어느
것이 달이 아니라고 하겠느냐?
문수사리야! 하나의 달만이 참된 것이라면, 그 중에는 자연 ‘달이다, 달이 아니다’
라고 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지금 보는 것과 보이는 대상을 보고,
여러 가지로 밝힘을 허망하다 하나니,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하는 것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참되고, 순수하고, 오묘한 깨달음이니, 너로 하여,
가리키고, 가리키지 않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진법왕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각연(覺緣)이 시방 세계에
가득하여, 맑고, 고요하게 상주므로,성품이 생기고, 없어짐이 아니니,
선범지(先梵志)인 사비가라가 말한 명제(冥諦)와 투회(投灰)등, 외도자가
말하는 ‘진정한 나’라는 것이 시방 세계에 고루 가득히 있다는 것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세존께서, 일찌기 능가산에서 대혜보살(大慧菩薩)등을 위하여, 설법하실
때, ‘외도들은 항상 자연이라고 말하였나니, 내가 말한 인연은 저들의
경계가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이제 보니, 깨닫는 성품이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도 아니요,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일체가 허망하게 바뀐 것을 멀리 벗어나니,
아마도 인연이 아닌 것 같으니, 마치 저들이 주장하는 자연과 같습니다.
어떻게, 우리들이 삿된 소견에 빠지지 않고, 진실한 마음이 밝은 성품을
얻게 하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이 진실을 보여도, 너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자연인가 하고,
의혹을 품는 구나?
아난아!
만약, 자연이라면, 분명히 자연을 밝혀야 할 것이다. 너는 다시 보아라.
오묘하고, 밝은 것 중에 무엇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보는 것은 밝음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어둠을 자(自)라 하겠느냐?
허공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막힌것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밝은 것을 자(自)라면, 어둠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약 허공을 자의
본체라 한다면, 막힘을 보지 못할 것이며,
또 다른 상황을 자연이라 한다면, 밝을 때는 보는 성품이 아주 없어질 것이니,
어떻게 밝음을 보겠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반드시, 보는 성품이 자연이 아니라면, 제가 지금 이것은 인연으로 밝히고
싶습니다만, 마음에 아직까지 분명하지 못하여 여래께 묻습니다. 이 이치가
어떻게 인연에 맞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인연이라 하기에,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네가 지금 보고 있으니
보는 성품이 앞에 나타나나니라. 이렇게 보는 것은 밝으니 보는 것냐, 어둠이
보는 것이냐? 허공이 보는 것이냐, 막힘이 보는 것이냐?
아난아!
만약 밝음이 보는 것이라면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할 것이고, 어둠이 보는
것이라면 밝은 것은 보지 못할 것이며,
허공과 막힘까지도 밝음이나 어둠과 같을 것이다.
아난아! 보는 것이 밝은 것을 따라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운 것을 따라 보는 것이 있느냐? 허공을 따라 보는 것이 있느냐,
막힘을 따라 보는 것이 있느냐?
만약, 허공을 따라 보는 것이 있다면 막힘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약, 막힘을 따라 보는 것이 있다면 허공을 보지 못할 것이니,
밝음과 어둠이 허공이나 막힘과 같나니라.
당연히 알아야 한다.
깨달음의 오묘하고, 밝음은 인(因)도 아니며 연(緣)도 아니며, 자연도 아니며
자연이 아닌 것도 아니며, 아닌 것과 아님이 아닌 것도 없으며, 이것과 이것이
아닌 것도 없어, 일체의 모양에서 벗어나 일체의 법으로 나아 가나니라.
네가 지금, 무슨 마음으로, 세간의 명상(名相)으로 분별하려 하느냐?
이는 마치 손바닥으로 허공을 만지려는 것과 같아, 수고(受苦)스러울 뿐,
허공이야 어떻게 잡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