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12/64

능엄경… 12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반드시, 깨닫는 성품이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라면,
세존께서는 어찌하여 항상, 비구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는 성품이 네 가지
연을 갖추어야 하니, 허공을 근본으로 삼고 밝음을 근본으로 삼으며,
마음을 근본으로 삼고 눈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하셨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그것은 내가 세간에 인연을 표현한 것일 뿐, 제일의(第一義)를
말 한 것이 아니니라.
아난아! 내가 다시 네게 묻겠는데, 세상 사람들은 내가 본다고 말하니,
어떤 것을 본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상 사람들은 해나 달이나 등불의 빛으로 인하여 갖가지 모양을 보는
것을 본다고 하나이다.
만약, 세 가지 밝힘이 없으면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난아! 만약 밝힘이 없을 때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어두움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만약, 어두움을 본다고 한다면, 오직, 밝음이 없는 것이지 어찌 보는
것이 없다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어두울 때는 밝음을 보지 못하기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지금같이 밝을 때는 어두운 모양을 보지 못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겠느냐?
그렇다면, 두 모양을 모두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두 모양이 서로를 빼앗는다 할지라도, 너의 보는 성품이그 가운데
잠시도 없는 것은 아니니, 두 가지 경우를 모두 본다고 해야할 것인데.
어찌, 보지 못한다고 하겠느냐?
아난아! 너는 당연히 알아야 한다.
밝음을 볼때도 보는 것이 밝음이 아니며, 어둠을 볼 때도 보는 것이
어둠은 아니며, 허공을 볼 때도 보는 것이 허공은 아니며, 막힌 것을 볼
때도 보는 것이 막힌 것은 아니니라.
사리(四理)가 성취되었으니, 너는 당연히 알아야 한다.
보는 것을 볼 때,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니라.
본다는 성품은 오묘하여 그것이 오히려 보는 것을 벗어나서는 보는
것으로 미칠 수가 없으니, 어떻게 인연이다, 자연이다, 어우러진 것이라
말하겠는가?
너희 성문(聲聞)들이 용맹만 있고 지식이 없으니, 청정한 실상(實相)을
통달하지 못하였음이니, 내가 지금 너에게 가르쳐 주겠으니, 잘 생각해서
오묘한 보리도을 지나치거나, 게을리 하지 말아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저희들을 위하여 인연과 자연과 서로 어우러진
현상과 어우러지지 못함을 설명하시나, 마음이 아직 열리지 않으니,
보는 것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라 하시니, 의혹이 더욱 짙어집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데,
큰 자비로서, 큰 지혜의 눈을 베푸시어, 저희들에게 깨닫는 마음이 밝고
맑음을 보여주소서.”
말을 마치고, 슬피 울며, 이마가 땅에 닿도록 예를 올리고,성인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아난과 대중들을 가엽게 여기시고, 큰 총지문(總持門)과
삼매의 오묘한 수행법을 말씀하시기 위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비록, 기억력은 좋으나, 많이 들으려만 하고, 사마제의 오묘하고,
미묘하게 관(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깨닫지 못하니, 자세히 들으라.
내가 너를 위해, 분별하여 보여줄 것이며, 장래의 유루자들에게도 보리를
얻게 하리라.
아난아!
모든 중생이 세간을 윤회하는 것은 두 가지 뒤바뀜으로 인하여, 분별하여
보는 것을 거스리는 것은 장소에 따라, 업보에 따라 윤회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두 가지 거스리게 보는 것인가 하면,
첫째, 중생들의 각각 다른 업(별업: 別業)으로 인하여 허망을 보는 것이고,
둘째, 중생들이 서로 합의함(동분同分)으로 인하여 허망을 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별업에 의하여 허망을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세상 사람들이 눈이 붉어지는 눈병이 생기면, 밤에 등불을 볼 때,
또다른 둥근 그림자가 생겨, 다섯 가지 색깔이 겹쳐 보이나니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밤에 등불을 밝힘에 따라 나타나는 둥근 그림자는
이것이 등불의 빛이냐, 보는 것의 빛이냐?
아난아!
이것이 만약 등불 빛이라면, 눈병이 없는 사람은 어찌, 그와 같은 것을 보지
못하고, 둥근 그림자는 오직, 눈병이 있는 사람만 보느냐?
만약, 그것이 보는 것의 빛이라면, 보는 것이 이미 빛을 이루었으니, 눈병이
있는 사람만 둥근 그림자를 보는 것은 무엇이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둥근 그림자가 등불없이 또다른 것이 있다면, 마땅히 곁에 있는 병풍과
휘장과 의자와 자리를 볼 때도 둥근 그림자가 생겨야 하며,
보는 것을 벗어나 또다른 것이 있다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니, 어떻게,
눈병이 있는 사람만 둥근 그림자를 보느냐?
그러니, 분명히 알아야 한다.
빛은 사실 등불에 있는 것이며, 보는 것은 병으로 인해 그림자가 되었느니라.
그림자와 보는 것이 모두 눈병으로 생긴 것이지만, 눈병을 보는 것은 병이
아니니, 이것을 ‘등불 탓이다, 보는 탓이다’하지 못하며, 그 가운데에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탓이 아니다’라고 할 수 없으니, 이는 마치, 물에 비춰진
달은 본체도 아니고, 그림자도 아닌 것과 같다.
왜냐 하면, 물에 비춰 진 달을 보는 것은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이들은 눈을 비벼서 생긴것을 가리켜 ‘달의 형체다
달의 형체가 아니다 한다거나, 보는 것이니, 보는 것이 아니니’하는 등의
말을 하지 않나니라.
이와 같이, 눈병으로 생긴 것이어니, 무엇으로’등불의 탓이다, 보는 탓이다’라고
하려느냐?
또한,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탓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겠느냐?
어떤 것을 ‘동분(同分)에 의한 허망을 보는 것’이라고 하느냐 하면,
아난아! 염부제에서 큰 바닷물을 제외하고, 중간의 위치에 삼천개의 섬이 있으니,
한 가운데 있는 큰 섬을 동쪽과 서쪽으로 헤아려보면, 큰 나라가 이천삼백이 있고,
나머지 작은 섬이 바다 가운데 있으니, 그 가운데 삼백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고,
이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며, 혹은, 한 두 나라에도 삼십, 사십, 오십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니라.
아난아!
그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 두 나라가 있으니, 오직, 한 나라 사람만이 악한
인연을 함께 만나게 되어, 그 섬에서 사는 중생은 일체의 상서롭지 못한 세계를
봄에 있어, 때로는 두 개의 해를 보기도 하고, 두 개의 달을 보기도 하며,
그 가운데 달무리, 해무리[暈適], 해의 귀걸이, 혜성[彗], 패성, 유성, 부이(負珥),
무지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나쁜 모양을 오직, 이 나라의 사람들만 볼 것이며,
다른 국토 중생들은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느니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를 위해, 두 가지 가지고, 앞뒤를 가려주리라.
아난아! 중생들이 지은 업장의 허망을 보는 것으로 등불주위에 둥근 그림자가
비록, 보는 대상처럼 나타나지만, 보는 자의 눈병으로 생긴 것이니, 눈병은 보는
것의 피로로 생긴 것이며, 빛깔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니라.
그러나, 그 눈병을 보는 자는 보는 잘못은 없나니라.
예를 들면, 네가 산과 강, 국토와 여러 중생들을 보는 것이 모두, 무시이래,
병으로 생긴 것이니, 보는 것과 보이는 대상은 눈앞에 나타나지만,
본래, 내가 깨닫고, 분별하는 것으로 대상인 형상을 보는 눈병이니라.
보는 것은 눈병이겠지만, 깨달음의 밝은 마음은 보는 대상의 형상을 깨닫는
것이니 눈병이 아니리라.
대상을 분별하는 것은 눈병이고, 분별하는 본각[性覺]의 밝은 근본은 눈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을 보는 것인데 어찌하여, 또다시 깨닫는다, 듣는다, 안다, 본다고 하겠느냐?
네가 지금 나와 세상의 열 종류의 중생을 보는데 그것은 모두 보는 것의 병이며,
병을 보는 것은 아니다.
보는 것이 미묘하고 참된 것은 성품이 병들지 않았기 때문이니, 보는 것이라고
이름하지 않는다.
아난아!
중생들이 지은 업장의 허망을 보는 한 사람을 예로 들어 비유하면, 눈병이 생긴
한 사람은 한 나라와 같으며, 그가 보는 둥근 그림자가 눈병으로 생긴 것과
같은 부분의 허망을 보는 것이 같은 업장 가운데 장악으로 생긴 것이니, 모두가
무시이래 보는 것이 허망에 의하해 생긴 것이다.
염부제(閻浮提)의 삼천 개의 섬과 사방의 큰 바다와 사바세계 그리고, 시방의 유루국
[有漏國]들과 모든 중생들을 예로 들면, 모두, 깨닫고, 분별하며, 무루의 오묘한
마음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하는 허망의 병으로 인하여, 서로 어우러진 조화를
이루어 허망하게 나고, 죽느니라.
만약, 화합하는 것과 화합하지 않는 모든 인연을 멀리 여의면, 나고 죽는 근본을
없앨 수 있어 원만한 보리도의 나고, 죽지 않는 성품을 이루어 청정한 본래의 마음에
본래의 깨달음이 늘 머무르게 되리라.
아난아!
네가 비록, 본각(本覺)의 오묘하고, 밝은 성품은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았다 하더라도 이러한 깨달음의 근본은 서로 어우러져
생긴 것도 아니며, 서로 어우러지지 않는 것으로 생긴 것도 아님을 알지 못하는구나.
아난아!
내가 지금 다시, 앞에 나타나는 경계로, 네게 묻겠는데,
너는 지금, 세간이 허망으로 화합하는 모든 인연의 성품으로 인해, 스스로
의혹하기를 보리를 증득하는 마음도 화합으로 생긴다고 여기는구나.
만약, 밝은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라면, 네가 밝은 것을 볼 때, 마땅히 밝은 것이
앞에 나타날 것인데, 어느 곳에 보는 것이 섞였느냐?
보는 것과 형상은 분별할 수 있지만, 섞인 것은 어떤 모양이냐?
만약,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밝은 것을 보며, 만약 보는 것이라면,
어떻게 보는 것을 본다고 하겠느냐?
보는 것은 반드시, 밝은 것과 다르며, 섞이었다면, 성품이 밝다는 이름을
잃으리니, 섞임으로 해서 밝은 성품을 잃어버린 것이라서 밝음과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그 밖에 어둠과 통한 것, 여러 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네가 지금, 오묘하고, 청정하게 보는 것은 밝은 것과 어울린 것이냐,
어두운 것과 어울린 것이냐, 통한 것과 어울린 것이냐, 막힌 것과 어울린 것이냐?
만약, 밝음과 합한 것이라면 ,어두울 때는 맑은 모양이 없어질 것이니,
보는 것이 어둠과는 어우러지지 못할 것이니, 어떻게 어둠을 본다고 하겠느냐?
만약, 어둠을 볼 때, 어둠과 화합하지 아니하였다면, 밝음과 화합할 때도
밝음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미 밝음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밝음과 화합하였다
고 할 것이며, 밝은 것은 어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느냐?
그 밖에 어둠과 통한 것,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힌 것도 역시 이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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