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천송반야경 05. 참된 실천
그러자 사리불 장로가 수보리 장로에게 물었다.
“그러면 보살이 어떻게 실천해야 참으로 반야바라밀 위에 서서 불도를 실천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수보리 장로가 대답했다.
“나는 불도를 실천하고 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불도를 실천하지 않고 있다’라고도 생각하지 않는 것.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불도를 실천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실천하고 있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보살은 참으로 반야바라밀 위에 서서 불도를 실천하는 것이 되겠지요.
왜냐하면 거기서는 모든 것이 실체가 있는 것으로서 포착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 어떠한 것도 실체가 있는 것으로서 포착하는 일이 없는 명상’이라고 일컫는 광대하고, 무한한 보살의 명상입니다.”
사리불 장로가 물었다.
“그러면 그 명상을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 보일 수가 있겠습니까?”
수보리 장로가 말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왜냐하면 불도에 뜻을 둔 사람에게 있어 명상이란 이런 것이다 또 저런 것이다 하는 그런 고정적인 판단으로 체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명상은 그것이 지금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그런 것이 아니므로 그 명상에 대해서 무엇인가 고정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리불 장로는 세존께 다음과 같이 물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불도를 배우는 것이 그런 것이라면 대체 보살은 어떤 법을 배우는 것입니까?”
세존은 사리불 장로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보살이 불도를 배우는 것은 배움이 없이 배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이 배워야 할 법이 실체로서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사리뷸이여, 보통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법이 실제로 있는 법으로 생각해서 그것에 집착하려고 하지만 사실은 법의 참다운 모습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리불 장로는 계속 묻는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법이란 어떤 모습으로 있는 것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이여, 어떠한 모습도 아닌 모습으로 법은 있는 것이다.”
팔천송반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