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심이 모든 지혜의 원천이다
-지광스님-
조금 늦더라도 그대의 전성기는 분명히 도래할 것이다 고통인가 감사인가,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무엇일까? 인생을 고통의 바다라고도 하고 감옥에 비유하기도 한다.
안양교도소에 가서 법문할 때마다 그곳에 계신 분들에게 하는 얘기가 있다.
그 분들도 나와 헤어스타일이 비슷하고 색깔은 다르지만 비슷한 유니폼을 입고 산다.
갈 때마다 “그대들은 여기 감옥에 있지만 나도 비슷한 삶을 산다”고 우스개로 얘기한다.
감옥에 계신 분들과 수행자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일부러 감옥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곳에 계신 분들은 하나 같이 강제적으로 그곳에 살고 계신다.
머리 깎고 사는 수행자들과는 자발적이란 점에서 다를 게다.
그곳에 계신 분들은 불평불만이 많으실지 몰라도 나는 머리 깎고 사는 삶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아마도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불평하느냐 감사하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인생을 고해라 하기도 하고 감옥이라 하기도 하는데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매일 매일 고통을 하소연하며 사는 분들도 많겠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매일 매일의 삶에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 분들도 계실 것이다.
수행자들의 세계에서도 무문관이란 수행처소가 있다.
두문불출, 몸과 마음을 다해 수행에 전념하는 곳이다.
그곳에 계신 분들이 불평불만이 있다면 몇 년씩이나 그곳에 계실 수 있을까? 자발적인 수행자로서의 감사함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
그대의 꽃이 필 날이 반드시 오리라 모두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들 한다.
어렵고 힘겨운 삶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감내하며 이겨내는 가운데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불평불만 속에 사는 사람들도 많다.
감사와 사랑, 찬탄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까? ‘로마를 로마로 만든 것은 시련이다’라고 하는 얘기도 있지만 내가 힘들게 받아들이면 힘든 것이고 의연하게 당당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넘어가는 예가 대부분이다.
진정 고통과 시련은 우리 모두의 힘이 된다.
기적이란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란 가르침을 아는가.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능력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
고통에 감사한 마음이 된다.
봄에 피는 꽃이 있고 여름에 피는 꽃이 있고 가을에 피는 꽃, 겨울에 피는 꽃이 있다.
남들보다 다소 늦을지는 모르지만 그대의 계절이 오면 그대의 꽃을 피울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그대의 계절을 위해 어려움을 참고 준비하는 것이다.
그대의 전성기는 조금 더 시간을 요한다.
얼마나 빨리 전성기를 맞이할 것인가 하는 점보다 그대의 꿈을 진정으로 이룰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대의 현실을 사랑하고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라.
모든 성공은 고통에서 온다.
모든 성장은 좌절에서 온다.
오늘의 고통 없이 내일의 성공은 없다.
과거로 돌아갈 순 없지만 새롭게 시작할 순 있다 어느 날 시간이 있어 내가 법문을 했던 목록들을 정리해 본 적이 있다.
놀라웠던 점은 내가 법문했던 대로 나의 인생이 전개돼 온 것처럼 느껴져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한참 젊었던 날엔 전성기를 향해 고통을 이겨내라 얘기했었는데 그것이 신도님들께 드렸던 말씀이기도 하지만 내 자신에게 들려주고픈 얘기들이었던 것 같다.
또 고통 가운데 힘겹게 걷고 있을 때에는 자신을 위로하고 강인하게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고행자의 강인함을 얘기했었는데 그 역시 나의 삶의 고통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려는 발로였던것 같다.
따지고 보니 이제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세월이 흘러 뒤를 돌아볼 때 한 인간의 삶의 흐름이 법문 자락에 묻어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흘러가고 오고 흘러가지만 그때마다 하게 되는 얘기는 나의 인생을 엮어나가면서 스스로에게 강력히 들려주고픈 얘기들이었고, 모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유효하게 적용되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또 다른 전성기를 향해 전진해야만 한다는 부르짖음이 마음 속 깊이 우러나온다.
생명이 있는 한 우리는 나아가야만 한다.
영원히 앞으로 나가는 길 외에는 우리들의 앞에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시작한다 하더라도 새로운 결말을 지을 수는 있다.
항상 대비심과 보리심을 바탕으로 나아가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잊지 말아야만 할 중요한 점은 절대로 부처님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원아속지일체법 원아조득지혜안이라 하듯이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께 기도 올리는 마음,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관세음보살님과 하나인 마음이 아니고는 위대한 지혜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일체의 지혜는 자비심에서 생겨나고 사랑과 자비심이 일체지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자비심, 보리심을 일으킬 때 지혜와 복덕의 길이 열리고 성취의 길이 열린다.
부처님께서 보살의 육바라밀을 올바르게 성취하는 것이 보리심과 자비심의 완성요인이라 하셨다.
공성(空性)만을 닦아서는 성불의 길을 올바르게 성취할 수 없으며 필히 육바라밀의 방편을 닦아야 일체의 지혜가 완결된다 하셨다.
육바라밀행은 다름 아닌 우리 모두의 수행의 근간인 것이며 공성의 실천인 것이다.
공성의 대비심을 바탕으로 보리심을 진작시켜 나가는 가운데 항상 부처님과 보살님을 만나게 될 것이며 항상 길한 꿈을 꾸게 되고 무량한 신중들을 기쁘게 할 것이다, 결국 우리의 수행방편은 이기심을 녹이는 것이고 평범함을 뛰어넘어 개화의 길을 여는 것이다.
난행, 고행을 즐겁게 이겨나가며 자기의 장벽, 이기심의 업장을 깨뜨려라.
그곳에서 찬연한 성취의 꽃이 개화될 것이며 그 꽃봉오리가 터질 때 누구나 비범함으로 도약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