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파면 어디든

지착개생수 地鑿皆生水 땅을 파면 어디든 물이 나오고

운수진벽천 雲收盡碧天 구름 걷히면 푸른 하늘 드러나는 법

강산운수지 江山雲水地 구름과 물이 있는 강산의 땅이여

하물불거선 何物不渠禪 무엇 하나 선 아닌 게 어디 있으랴.

‘본래 아무것도 없는 것이 본래 다 있는 것이다’는 말이 있다. 이러한 이치를 공(空)과 불공(不空)으로 설명하면서 달리 진공묘유(眞空妙有)의 도리라고 한다. 땅을 파면 어디든지 물이 나오고 구름 걷히면 본래의 청명한 하늘이 있다는 건 본래 갖추어진 진공속의 묘유를 상징하는 말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은 있다 하고 안 보이는 것은 없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이는 피상적인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므로 현상의 배후를 모르고 순간의 감각만 가지고 말하는 경우다. 따라서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인 유무(有無)를 초월한 중도를 알지 못한다. 유무는 식심분별이 일어난 의식의 파동일 뿐 실상의 분별없는 지혜가 되지 못한다. 의식이 멈춰질 때 판단이 중지되며, 판단이 중지될 때 선(禪)이 되는 것이다. 만물은 사람의 의식과는 상관없이 본래의 제 모습대로 있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선의 경지이기에 무엇 하나 선 아닌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 시는 조선조 영조 때의 화엄대가 묵암최눌(黙庵最訥1717~1790)의 시이다. 화엄과도인 <화엄품목>을 짓고 사교의 행상을 모아 <제경문답>을 편찬하였다. 문집 묵암집이 남아 전하며 송광사에 부도비가 있다.

요산 지안 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8년 10월 제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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