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조의 호법정치와 불도징의 공로

후조의 호법정치와 불도징의 공로 굽다왕조는 전타라굽다 2세(월호2세)가 왕도를 아유타에 옮긴 후 서력 41년에 그가 죽고 그의 아들인 구마라굽다(童護)가 즉위한다. 그러나 그의 말년, 즉 서력 5세기 중경에 이르러서는 북인도내에 있어서 흉노의침략적 세력이 심히 강성하였었다. 이로 말미암아 번영이 극하던 굽다 왕조도 점차로 최운의 길로 향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제 6세기 반경에 이르러서는 중인도의 카라궁도국(Kanyakudja)세력이 점차 강하게 되었다. 그래서… 후조의 호법정치와 불도징의 공로 계속 읽기

부견의 호불치세와 도안의 공적

부견의 호불치세와 도안의 공적 전진(前秦)은 16국중 가장 강대한 나라였다. 부견이 1백 대군으로써 남방 동진(東晋)을 병탄하고자 하였다가 비수의 일전에서 대패하여 드디어 와해하는 기인이 되기는 하였으나, 불교에 있어서는 대단월이었다. 전진의 불교는 후조의 불도징과 같이 도안이 그 대표자이다. 도안은 속성이 위(衛)써요, 상산의 부유인이다. 12세에 출가하니, 그 전기에, 신지 총민 이형모기루(神智聰敏而形貌其陋)라 함과 같이 형모가 초루하기 때문에 그 스승에게 중히… 부견의 호불치세와 도안의 공적 계속 읽기

구마라집의 역경사업

구마라집의 역경사업 전진의 뒤를 이어 건립한 후진은 불교가 강성하기가 전진시대보다 수승하였다. 특히 진주(秦主) 도장(姚養)·요흥(姚興)의 불교신앙은 도저히 부견이 추급할 수 없을 정도이었다. 부견은 불교에 의한 치세를 목적으로 하였으나 후진주에 있어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불교의 연구에까지 들어갔었다. 후진의 불교 대표자는 나집이다. 후한 이래 진에 이르리까지 서역의 삼장이 계속 와서 각종 경전을 역출하니, 교학이 일성하였으나 모두 개인적 사업이었고… 구마라집의 역경사업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