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시카왕의 불교사업

카니시카왕의 불교사업 월씨국 귀상왕조의 제 3세대인 카니시카왕은 서력 2세기 초에 즉위했는데 그 후에 중인도로 진군하여 화씨성을 공락하고 안식국(安息國)과 그 다음 후한(後漢) 영토였던 소륵(疏勒)과 사거(莎車) 등지를 정벌했다. 그래서 왕은 왕도를 건타라국의 포루사 포라성에 정하고 또 카니시카성을 특히 가습미라국에 건설했다. 왕은 이렇게 원정을 행함과 동시에 선정을 국내에 폈다. 그러므로 간타라국은 동서 문화의 교차지가 되어서 특유한 간다라 문명을… 카니시카왕의 불교사업 계속 읽기

굽다왕조의 불교보호정책

굽다왕조의 불교보호정책 종래의 인도의 많은 임금들은, 자기가 불교와 바라문교의 어떠한 종교를 신봉하든지간에 이 양 종교를 평등히 보호하는 것이 통례였으므로 굽다왕조의 여러 왕들도 또한 바라문교를 신봉함과 동시에 불교도잘 보호했었다. 그러므로 전타라굽다 2세, 즉 월호2세는 카-카나다보타(Kakanadabota)사에 장원을 기부하고 익호왕은 그의 각문(刻戈)위에 불타의 좌형을 새겨 넣었다. 특히 세친전에 의하면 이 두 왕은 세친을 돈독히 존경 공양했고 동호왕은 모후,… 굽다왕조의 불교보호정책 계속 읽기

계일왕조의 자선사업

계일왕조의 자선사업 굽다왕조는 전타라굽다 2세(월호2세)가 왕도를 아유타에 옮긴 후 서력 41년에 그가 죽고 그의 아들인 구마라굽다(童護)가 즉위한다. 그러나 그의 말년, 즉 서력 5세기 중경에 이르러서는 북인도내에 있어서 흉노의침략적 세력이 심히 강성하였었다. 이로 말미암아 번영이 극하던 굽다 왕조도 점차로 최운의 길로 향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제 6세기 반경에 이르러서는 중인도의 카라궁도국(Kanyakudja)세력이 점차 강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나라… 계일왕조의 자선사업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