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如來) 어디로부터 오는 곳도 없고 어디로 가는 곳도 없다는 뜻이며, 진리 그대로를 여(如)라고 하고 그것 을 깨친 이를 래(來)라고도 합니다. 즉 여래는 부처님을 말하며, 덕높은신 부처님을 그 덕에 따라 불리는 대표적 열 가지 별호를 말합니다. 응공(應供) 부처님이 행을 원만하게 이루고 복과 지혜가 구족해서 천상이나 인간세에서 존경을 받으며 능히 공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음을 말합니다. 정변지(正遍知) 바르고 완전하게 진리를 깨달아 모르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명행족(明行足) 과거세를 아는 숙명명과 불교의 진리를 알아서 번뇌를 끊어 없애버릴 수 있는 누진명의 지혜를 완 전히 갖추고 있는 이를 말합니다. 선서(善逝) 어두운 세계를 초월해서 또 다시 어리석은 세계에 돌아오지 않고 묘하게 간다는 뜻. 세간해(世間解) 세간이나 출세간의 인과법에 의해서 요해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뜻. 무상사(無上士)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독존(獨尊)이라는 뜻이며, 번뇌가 다 끊어지고 다시 끊을 것이 없는 사 람을 말함. 조어장부(調御丈夫) 여러가지 법을 설해서 일체 중생을 조복하고 제어해서 열반을 얻게 하는 위대한 분이라는 뜻. 천인사(天人師) 천상과 인간의 스승이라는 뜻. 불(佛) 부처님, 또는 깨달은 사람. 스스로 깨달아서 다른 이를 깨닫게 하는 부처님. 세존(世尊) 인간이나 천상이나 모든 사람과 성인의 존경을 받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높은 분이라는 뜻으로 열 가지 덕을 대표하는 명칭
지현스님─심신이 아픈 세상 사람들이여
◆심신이 아픈 세상 사람들이여’보리수,약을 복용해 치유하라◆ – 송광사 율원장 지현 스님 – 지현 스님은 “자등명 법등명에 담긴 부처님 뜻을 마음에 새길 때 진정한 불자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늘은 마음을 다스리는 보약인 무제 대사의 심약방(無際大師 心藥方)을 준비했습니다.
무제 대사는 당나라 석두 희천 스님입니다.
무제 대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집안을 잘 거느리고 나라를 다스리며 도를 배우고 자신을 수양하려는 사람은 모름지기 먼저 내가 처방해주는 열 가지 맛의 미묘한 마음의 약을 복용하여야 바야흐로 뜻을 성취할 수 있다.”
석두 희천 선사의 心藥方(심약방) 첫째는 좋은 창자 한 가닥(好腸一條)이라 했습니다.
남의 어떤 말이나 행동도 비위에 거슬리지 않고 웃으면서 잘 받아 소화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야 불법을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며 집안과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자비심 한 조각.
(慈悲心一片) 나누어지거나 변하지 않는 항상스런 자비심을 말합니다.
셋째는 온유 반냥.
(溫柔半兩) 무골호인(無骨好人) 즉, 강함과 부드러움을 반반씩 갖춰야 합니다.
넷째는 도리 삼푼.
(道理三分) 시비곡직을 따질 때 논리성과 합리성은 30% 정도만 내세우고, 나머지는 인정과 사정 등을 참작하여 관용을 베풀라는 뜻입니다.
다섯째는 요긴한 믿음과 행실.
(信行要緊) 믿음도 바르게 하고 수행도 바른 쪽으로 가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견을 세우는 일입니다.
여섯째는 중용 정직 한 덩어리.
(中直一塊) 자신의 마음과 정신이 중용과 정직으로 한 덩어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일곱째는 효순 십 푼.
(孝順十分) 부모와 웃어른에게 100% 완전하게 효도하고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여덟째는 성실 한 개.
(老實一個) 성실을 여기서는 노실(老實)이라 했습니다.
노(老)라고 하는 말은 늙었다는 의미도 되지만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는 뜻도 있습니다.
아홉째는 음즐은 완전 사용.
(陰 全用) 남모르게 선행을 쌓고 복을 지어, 타고난 운명을 바꾸는데 노력하라는 뜻입니다.
열 번째는 방편은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음.
(方便不拘多少) 여기서 말하는 방편이란 최선의 방법을 이릅니다.
이 열 가지 약을 마음이 넓은 냄비(寬心鍋) 안에 넣어 볶되, 눌거나 태우지도 말고 조급하게 다루지도 말며, 불기운을 삼 푼 정도 제거한 뒤 평등한 사발 안에 넣어 빻아가지고, 세 번 생각함의 가루로 빻아 육바라밀의 알로 제조하되, 보리수 열매만한 크기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보리수 열매만한’이라고 한 것은 ‘깨달음의 열매’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 약을 하루 세 번 복용하는데, 시간은 어느 때고 상관이 없으나, 화기애애한 국물로 마셔 삼키라 했습니다.
자비-중용은 최고의 재료 정말 이와 같이 복용하기만 하면, 치유되지 않을 질병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약을 복용할 때는 금기 사항이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공덕이 안 나타나는 경우, 영험이 안 나타나는 경우는 모두 금기사항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 보시면 틀림 없습니다.
첫째, 말로는 청정한데 행실은 혼탁하게 하는 짓.
(言淸行濁) 둘째는 자기를 이롭게 하며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짓.
(利己損人) 셋째는 은밀한 가운데 화살을 겨누는 짓.
(暗中) 감언이설로 형제처럼 가족처럼 친해졌을 때 배신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넷째는 뱃속에 독을 품는 짓.
(中毒) 겉으로는 좋으면서도 항상 미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웃음 속에 서슬 퍼런 칼을 꽂는 짓.
(笑裏刀) 웃으면서 사람 죽이는 것입니다.
아주 싸늘한 미소, 냉정한 미소가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여섯째는 대가리 둘 달린 뱀 같은 짓.
(兩頭蛇) 여기서는 이 말하고 저기서는 저 말하며 이간질 하는 몹쓸 행동을 뜻합니다.
일곱째는 고요하고 평안한 곳에 갑자기 바람과 물결을 일으키는 짓.
(平地起風波) 이렇게 정답게 차 마시면서 이야기 하는데 누구 한 사람이 들어와서 무슨 짓이냐고 하면서 설친다면 분위기가 삭막해져서 흩어져 버리잖아요.
남 잘 되는 것 배 아파 방해하면 안 됩니다.
이 일곱 가지는 모름지기 한 시 바삐 금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게송으로 이르면 이와 같습니다.
비방절묘합천기 比方絶妙合天機 불용노사편작의 不用盧師扁鵲醫 보권선남병신녀 普勸善男竝信女 급수대치막호의 急須對治莫狐疑 처방은 절묘하게 천기에 부합하니, 노사나 편작 같은 신의도 쓸 필요 없네.
착한 남자와 신심 있는 여자한테 두루 권하노니, 조금도 의심 말고 한 시 바삐 먹어 치료할지어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처님으로서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면서 매일매일 아침 저녁으로 읽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전생의 업으로서 만들어진 사주팔자, 운명에 의해서만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 운명은 우리들의 신, 구, 의 삼업에 의해서 좋은 쪽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나쁜 쪽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매일 부처님이 되겠다는 원을 가지고 부처되는 수행을 한다면 이것은 좋은 쪽으로 원이 성숙해가겠지만 그냥 대충대충 살면 자꾸 미끄러집니다.
이생에서 자기의 복을 까먹을 줄만 알지 다음 생을 위해 복을 저축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찬다면 욕심은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채워도 그 욕망은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밑 빠진 독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무기를 가지고 번뇌와 싸워도 이길 수 없습니다.
다만 번뇌를 이길 수 있는 묘약은 부처님의 가르침뿐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갖고도 안 됩니다.
우리가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법등명’이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내가 수행하면서 내가 성불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은‘자등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등명에 의해서 자등명이 밝혀지는 겁니다.
나쁜 마음 거둬야 효능 있어 태양이 세상을 비추는 것이 법등명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눈을 번쩍 뜬다는 것, 혹은 방문을 활짝 열고 나간다는 것, 또 밖의 밝은 기운이 들어오게 하는 것, 이런 것은 자등명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성불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내 자신이 부처, 즉 자귀의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의해서 내 자귀의가 진실해지면 부처님의 팔만 사천 법문이 법귀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등명 법등명”을 설하셨습니다.
사실은 이런 것을 읽으면 제가 제일 부끄럽습니다.
제가 이렇게 잘 못하기 때문에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순간만이라도 이런 생각을 내게 되고, 또 그러면서 가고 서고 앉고 눕고 할 때 이런 생각들이라도 내니까 계속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향상이 되는 것입니다.
달라이라마─마음 닦는 일이 소중하다
마음 닦는 일이 소중하다
-달라이라마-
우리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많은 것이 이루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마음 수련에서도 즉각적인 변화를 보고자 할 것입니다.
내적 탈바꿈이 단순히 정확한 공식을 얻거나 올바른 만트라를 외는 것의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마음 수행에는 노력을 들여야 하며 고된 작업과 지속적인 헌신이 필요합니다.
마음 수련을 위해 초보자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조건은 수행에 진지하게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헌신이 없다면 시작하지조차 못할 것입니다! 나는 일을 미루는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합니다.
옛날에 어떤 라마승이 있었는데, 그는 자기 제자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제자들을 데리고 소풍을 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러한 동기부여는 기대효과가 있었고, 어린 승려들은 열심히 학업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약속한 소풍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하루 동안 놀게 되리라는 기대를 포기하지 못한 가장 나이 어린 제자가 스승에게 그 약속을 상기시켰습니다.
라마승은 지금은 자신이 너무 바쁘니 잠시 기다리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한번 그 제자는 라마승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그 유명한 소풍을 언제 가나요?” 이번에도 라마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다.
나는 정말 너무 바쁘다.” 어느 날 제자들 사이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라마승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야?” 라마승이 둘러보니 시신 한구가 사원 밖으로 옮겨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가장 어린 그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저기 저 불쌍한 사람은 이제야 소풍을 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앞으로 하겠다고 말한 것을 실제로 하기 위해 시간을 내고 적절히 헌신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언제나 또 다른 의무와 더 긴급한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는 동안 죽음은 어느 때라도 끼어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