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스님─열반 그 생멸의 멈춤 그리고 깊은 침묵 생명

☆열반, 그 생멸의 멈춤 그리고 깊은 침묵 생명☆

열반재일 특집 / 강주스님에게 듣는 부처님 열반이야기 저 먼 날 마가다국의 우루벨라 마을에 있는 니란자라 강가의 보리수 아래서 한 구도자가 깨달음의 눈을 떴다.

생명의 본질에 눈 뜬 자, 본질에 머무는 자, 본질을 쓰는 자, 그 분을 사람들은 ‘붓다’라고 불렀다.

깨달음을 성취한 후 붓다는 침묵하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붓다는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 대지를 걸으며 법을 전했다.

아침햇살 아래서도, 노을이 지는 순간에도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걸었다.

그리고 붓다는 생사를 반복하며, 이원(二元)에 떠도는 삶, 무명의 고통 속에 헤매는 삶들에게 말했다.

“귀 있는 자여! 들어라! 눈이 있는 자여! 보라.

여기 해탈의 길이 있다.”

붓다의 사바세계 마지막 길은 마가다국의 수도인 왕사성에서 시작된다.

늙으신 붓다는 더위와 장마를 이기지 못하고 병에 걸려 심한 고통을 겪었다.

장마철이 거의 지나갈 무렵, 병에서 회복한 붓다가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을 때, 아난이 곁에 앉아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아무런 유언도 없으시기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생사의 오고감 자체가 장애는 아니다 ‘법’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해라 자기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아난다야, 교단은 나에게 무엇을 바라느냐? 나는 이미 안팎의 구별 없이 모든 법을 설했다.

아난아, 나의 가르침에는 어떤 것을 숨기는 따위의 비밀스러운 진리는 없다.”

병색이 완연해진 붓다는 언덕에 올라 노을 지는 바이샬리를 바라보며 설했다.

“아난다야! 내가 바이샬리를 보는 것도 마지막이 되리라.”

붓다의 눈빛은 고요 속에 연민으로 가득 차있는 듯했다.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에게 생사의 오고 감 자체가 장애는 아니다.

더구나 연기(緣起)와 무상(無常)의 진리를 체득한 붓다가 ‘생의 마감’을 애통해 할 이유는 없었다.

붓다는 또 다시 걸었다.

히란야와띠(Hiranyavati) 강을 건너 쿠시나가라 근처의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평소처럼 마을사람이 올린 공양을 받았다.

쭌다(cunda, 춘다)가 올린 공양을 드신 붓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극심한 통증을 일으켰다.

“아난다여.

아난다여! 나는 지금 몹시 피곤해 눕고 싶다.

저기 사라수 아래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 깔아다오.

나는 오늘 밤 여기에서 열반에 들겠다.”

부처님 열반성지 인도 쿠시나가라의 열반당.

불교신문 자료사진.

내가 가르친 법과 계율이 너희들의 스승이 되리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해 간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붓다는 맑고 고요한 얼굴로 ‘생멸이 둘이 아님’ 을 시현했다 깨달음의 꽃잎은 떨어졌지만 씨앗은 때를 기다릴 뿐… 사라수 아래 자리를 깔자, 붓다는 옆구리를 아래로 하고 발 위에 발을 포갠 자세로 편히 누웠다.

붓다가 세연(世緣)이 다했음을 알아챈 아난다는 나뭇가지를 붙들고 서럽게 울고 있었다.

스승을 보내야만 하는 순간이 도래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애통해 하는 아난다를 바라보며 붓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난다여.

울지 마라.

누구나 가까운 사람과 언젠가 한번은 헤어지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 이며 인연이다.

그리고 한번 태어난 것은 그 어떤 것이나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

죽지 않고 영원히 목숨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붓다의 가르침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아난다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제자 들과 신도들이 붓다의 주위를 지켰다.

시간이 흐를 수록 숨결이 거칠어 가는 붓다가 주위를 천천히 돌아보며 말했다.

“비구들아, 나의 가르침에 의문이 있으면 물어라.”

대중은 말이 없었다.

침묵만이 흘렀다.

그 때 아난다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수행자 중에는 붓다의 가르침에 의문을 지닌 사람이 없습니다.”

마치 사라질듯 한 불꽃처럼 조용히 눈을 감았다 뜬 붓다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내 가르침을 중심으로 서로 화합하고 공경하며 다투지 마라.

함께 내 교법(敎法)으로 수행하고, 부지런히 힘써 도(道)의 기쁨을 함께 누려라” 수행자들의 원칙으로 가르침, 화합, 공경, 정진을 제시한 것이다.

붓다가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법(法)을 등불로 삼고, 진리(眞理)를 의지해라.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해라.”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의 가르침을 유훈(遺訓)으로 전한 것이다.

붓다가 이어 말했다.

“아난다야, 내가 죽은 뒤에는 내가 가르친 법과 계율이 너희들의 스승이 되리라.

비구들아,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해 간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다.”

그리고 붓다는 열반에 들었다.

가르침과 고요한 침묵만을 남긴 채 붓다는 니르바나를 보여주었다.

사바세계의 마지막을 맞이한 쿠시나가라(Kushinagar) 에서 붓다는 맑고 밝고 고요한 얼굴로 생멸(生滅)이 둘이 아님을 시현(示現)했다.

깨달음의 꽃잎은 떨어졌다.

그리고 씨앗은 때를 기다릴 뿐이었다.

[불교신문]

해월스님─아상이 있는 자가 어찌 나를 보리오

아상이 있는 자가 어찌 나를 보리오

-해월스님-

어느 고을에 홀로 된 여자 한 분이 날마다 남의집 품팔이로 방아를 찧어주고는 거기서 나오는 쌀겨를 품삯으로 받아 돌아와 그것으로 밥이라고 해 먹고 살아 갑니다 그렇게 궁색하고 어렵다 보니 그저 입에 풀칠하는 것이 우선일 뿐 그외의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는데 시월 초하루 상달이 되자 마을의 부녀자들이 너도 나도 신곡을 조금씩 장만하여 치성을 들이러 가까운 절에 간다고 분주합니다 이 가난한 여인도 마을 부녀자들을 보며 나도 저 부인들을 따라 절에 한번 가서 부처님 전에 간절한 마음으로 절이라도 해야지 하고 뒤를 따르는데 마을 부녀자들은 어디 거지같은 사람이 우리들 절에 가는데 따라 오느냐 핀잔을 하고 못 따라 오게 하니 이 여인은 하는 수 없이 절에는 못 들어 가고 먼 발치에서 합장하고 부처님께 발원합니다 제가 너무 어렵고 딱한 처지여서 부처님 전에 나아가 공양도 못 올리고 이렇게나마 부처님께 인사 드립니다 하고 흐느끼며 집으로 돌아 옵니다 너무 서러운 나머지 밤을 새워 눈물을 흘리다가 문득 잠이 들었는데 비몽 사몽간에 밖에서 목탁 소리가 들려 옵니다 여인이 나가 보니 어린 동자 스님이 탁발을 나왔는데 동자승의 모습 또한 추레하고 시장해 보이는지라 어서 들어 오시라 하여 쌀겨 가운데 그래도 미음이라도 끓일만한 부분을 골라 죽을 쑤어 한 그릇 대접을 하니 동자스님은 맛있게 잘도 드십니다 동자스님은 마파람에 게눈 감추 듯 다 먹고 나서 상도 물리기 전에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보기에 아주머니의 처지가 나보다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나을게 없는데 어찌 이리 환대를 하십니까 하자 여인은 어제 절에 가다가 있었던 일을 울면서 이야기 하며 전생에 지은 복이 부족해 금생에는 이렇게 어렵게 살지만 다음 생에라도 넉넉한 집에 태어나 부처님과 스님들께 좋은 공양 올리고 불교 공부도 하고 싶다 합니다 동자 스님은 웃으며 마음을 내면 그 즉시에 이루어 진다고 우리 스승님은 늘 말씀 하시는데 아마 곧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고는 작은 걸망에서 솥단지 하나를 꺼내 줍니다 이 솥단지는 조금 특이한 것이어서 물만 붓고 불을 때면 저절로 밥이 될터이니 이제 쌀겨로 밥을 지어 드시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고는 떠나 갑니다 여인은 동자의 말이 하도 신기하여 시키는 대로 하고 솥 뚜껑을 열어 보니 정말로 하얀 쌀밥이 솥 안에 가득하고 그 밥에서 풍기는 향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여인은 우선 밥 한그릇을 떠서 절에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해 공양 올리고 밥을 먹는데 정말로 살다 살다 내게 이같은 날이 오기도 한 것인지 다리를 꼬집어 보아도 분명히 꿈은 아닌 생시입니다 여인은 그 다음부터는 마을 사람들을 청해 함께 밥을 해서 먹는데 아무리 아무리 밥을 해 내도 물만 부은 솥단지는 여전히 흰 쌀밥을 지어 내니 이제 마을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접도 달라 지고 마음에 점점 여유가 생겨 납니다 매일 매일 밥을 지으면 부처님 전 먼저 공양 올리고 하던 여인은 마을 사람들이 장난하는 소리로 만약 물을 붓지 않고 불을 때면 어찌 되는지 시험해보자 하는 소리에 다들 돌아 간 뒤에 정말로 그렇게 해보는데 솥을 열어 보는 순간 솥 안에서 광채가 납니다 솥안 가득 금은 보화가 가득했던 것입니다 여인은 이같은 모든 공덕이 마을 사람들의 은혜라 생각해 함께 나누어 쓰며 가정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을 뵙고 싶어 마음이 한결같이 사무친 여인에게 부처님과 보살님의 가피가 그렇게 나투셨으니 그저 우스개 소리거니 하거나 왜 나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는데 내게는 그같은 일이 없냐 하지 마시고 열심히 기도하고 공부하십시다 인생사 난득이라고 우리가 부처님 법을 만난 인연만 하더라도 백천만겁에 난조우요 맹구우목에 비유되는 크나큰 복과 공덕 아니면 어찌 이같은 공부의 길에 도반이 되어 만나겠습니까 아침에도 감사 점심에도 감사 저녁에도 감사 그저 감사와 공경의 마음으로 정진하고 노력한다면 어느 집엔들 부처님의 가피가 없겠습니까 둥근 만월이 빈부귀천 차별없이 두루 밝게 비추듯이 어디에나 나투시지 않음이 없는데 내가 문을 닫고 빛을 들이려 하지 않는다면 방안은 깜깜 한것이 마치 열심히 불러서 어렵게 찾아 오신 문수 보살을 거렁뱅이 노인이라고 쫓아 보내고 나서 크게 후회하던 자장 율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아상이 있는 자가 어찌 나를 보리요

해월스님─스님을 보지 말고 법을 보세요

스님을 보지 말고 법을 보세요

-해월스님-

스님들 가운데에는 대단히 존경받을 만한 수행과 원만한 덕성을 지니신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님을 존경하는 불자들이 모여 스님을 스승으로 삼아 공부 방법을 지도 받고 같은 도반들이 모임을 만드는 등 스님의 사후에도 자신들의 스승을 자랑스러워 하며 추모하고 그 뜻을 펴고자 애를 쓰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성향 가운데서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부지불식간에 스님과 우리라는 하나의 관계가 맺어 지다 보면 그것이 공부의 큰 힘을 얻는 계기도 되려니와 오히려 반대의 효과도 나타날수있는 것이어서 부처님조차도 부처를 보려 말고 법을 보라고 제자들에게 간곡히 이르시는 것입니다.

스님을 존경하고 공경하는 것까지는 나무랄것이 없지만 잘못하다 보면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얻어야 하는 깨달음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자기 환상 속에서의 만족에 그치기 쉽다는 말이 됩니다.

부처님 제자 가운데 박칼리라는 나이 많은 제자는 임종에 이르러서도 깨달음은 얻지 못하고 마지막 소원으로 죽기 전에 부처님의 육신을 한번이라도 뵙는게 소원인 제자였답니다.

부처님은 그 말을 듣고 가셔서 위로하시며, “그대가 보고자 하는 부처의 색신인 이몸은 언젠가 소멸되어 가는 허망한 것이라.이 허망한 몸울 보기를 원하기보다 법을 보는 것을 원하는 것이 더 좋으리라.

나를 보려면 법을 볼것이요.법을 보는 자는 곧 나를 본것이니라.”하고 간곡히 이르시는 가르침을 듣고 박칼리는 마침내 그동안 이르지 못했던 마지막 깨달음의 관문을 넘어 섭니다.

부처님처럼 위대한 스승께서도 당신의 몸을 보려는 자는 법을 보라는 말씀으로 완곡하게 부정하신 스승의 몸이신데, 후대로 이르러 우리는 법을 보는 것보다 색신으로나 음성으로의 부처와 스승을 구하는 경향이 많아진 것이 사실상의 현실입니다.

그렇다 보니 내 스승 우리 스승 내절 우리 절이라는 구분이 없어도 안될것이지만 굳이 법을 보는데는 그다지 도움이 안되는 분리된 의식 속에서 법을 따라 배우려는 노력과 공부보다는 모습과 무늬만 불자인 경우가 늘어만 갑니다.

이것은 스님들도 만찬가지 경향입니다.

처음에는 공부를 탁마하는 문중이나 도반으로서의 친목을 겸한 모임이 시간이 지나면서 애초의 목적한 바는 외면한 채 세력을 형성하거나 무슨 무슨 단체로 형질 변경을 하여 마침내는 돌이키기 어려운 정황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조금 지나친 말로 열반당 도깨비라는 말이 있는데 절집의 언저리에서나 큰 스님의 주위를 맴돌며 주워 듣고 보고 아는 것은 적지 않아서 사중의 일이든 대중의 일이든 자리만 있으면 옳은 소리는 혼자 다 하면서도 마음 속 어둠은 제거하지 못해 오히려 대중의 화합을 방해하고 자기 공부는 뒷전이면서 그 입에 오르내리는 바른 신심을 가진 불자나 스님들은 온전히 몸을 보전하기 힘들 정도로 입심은 대단합니다.

부처님이 나를 보려거든 법을 보라하신 말씀도 만약 박칼리의 요청에 부처님이 시간이 안되어서라거나,멀리 게신 까닭에 찾아 위로하지 못하였을 경우에 박칼리는 잘못된 생각에 자신을 찾아 주시지 않은 부처님에 대한 서운함으로 돌아 간다면 박칼리에게 금생 혹은 다음 생에의 공부에 막대한 지장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기에 부처님은 애써 박칼리에게 말씀 하시는 것을 빌어 오늘날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보려 말고 법을 보거나 법을 보려 노력하는 삶을 살라 하신것입니다.

믿음이란 참으로 삶의 이정표 같은 것이어서 바른 믿음을 이루어야만 자신과 상대를 이롭게 하는 것이니 우리 자신의 믿음을 한번 정도 되돌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불법佛法입니다.

스님들은 다만 불법이라는 보물이 있는 곳을 가리켜 주는 이정표에 불과하다고 스님들을 생각하면서 그 수고에 감사하고 공경하는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요즘처럼 스님들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마음 속에 깊은 신심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이 이미 부처님과 박칼리와의 만남 속에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이정표를 감싸 안고 고마워하며 목표를 설정하는 지도가 아무리 감사해도 그것만 안고 있다가는 모두 헛일입니다.

이 말에 조금은 어패가 있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우리는 승가를 삼보의 하나로 여겨 귀의의 대상으로 삼고 부처님과 법과 승가를 동일선상에 놓는데 주저하지 않는데, 지금 스님의 말은 스님들을 믿음과 귀의의 대사에서 제외하란 말인가 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는데, 다만 귀의의 대상이 될수 있는 승가가 아닌 무늬와 모양이 스님인 스님들의모습 때문에 자칫 법을 보아야 할 신심있는 대중들의 마음에 상처가 생김을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공부에는 출가와 재가가 없습니다.

또한 승가라는 말도 출가 승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재가 대중들도 승가의 중요한 일원입니다.

그런데 승가의 일원인 재가 대중들은 자신의 가정이나 가족 직장들을 경영하면서 수행이라는 과정을 복수적으로 실천해야 하니 일반 사람보다는 두배 세배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여간해서는 목적을 이루기 쉽지 않지만 일단 한 고비를 넘으면 이사무애하고 이사겸전한 도리로 두가지를 두루 완수 할수 있는 기회가 뒤따릅니다.

스님을 보지 말고 법을 보십시요.

이렇게 말할수밖에 없는 현실이 조금 슬퍼지만 그래도 법을 아는 사람은 사람의 모습에 있어서 불편한 점이 보이더라도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자칫 스님은 절대적으로 믿고 정작 법을 구하는 일은 소홀히 하다가는 우리 아난 존자처럼 사십여년을 모시면서 부처님의 그림자와 같이 머무르고 되새겨 말씀 하시는 녹음기는 될지언정 법을 깨달음은 요원할수 있습니다.

아마 아난 존자는 부처님을 향한 지극한 사랑과 공경같은 해바라기가 오히려 장애가 되어 깨달음을 부처님 열반 후에 증득하셨다 전하는것도 우리에겐 진정한 공부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가르치시려는 선사 스님들의 방편과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절에 평생을 살거나 다닌다해도 법을 깨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도량내에 평생을 뿌리내려 사는 나무와 바위에 다름없음을 생각해 시비에 휘말리지 말고 모양 만드느라 애쓰지 말며 다른 사람의 삶에 호오好惡를 논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바로 보고 법을 깨닫도록 정진하여 가십시다.

매초롬하니 법복 곱게 빼어 입어 외양은 아름다운 보살인데 속 마음은 야차 나찰과 진배없다면 법복이 아깝다 소릴 듣지 않겠습니까.

부처를 보려거든 법을 보라 법을 보는 이가 부처를 본것이라 하시는 부 처님 말씀을 머리에 새기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