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낫한스님─감정을 다스리는 방법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

-틱낫한스님-

폭풍이 다가올 때, 그것은 잠시 머물다 가버린다.

감정 또한 폭풍과 같다.

그것은 잠시 와서 머물다 가버린다.

감정은 단지 감정일 뿐이다.

하나의 감정이 생겨나는 것을 알아차릴 때, 그대가 안정된 자세로 앉거나 편한 자세로 누워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다음, 그대의 배에 주의를 집중하며 깨어 있는 마음으로 호흡을 시작하라.

10분이나 20분 동안 그렇게 호흡을 자각하는 것을 수행하고 나면 그대는 자신이 강해진 것을 알 것이다.

폭풍을 견딜 만큼 충분히 강해졌음을.

그런 자세로 앉거나 누워서, 망망대해에 떠 있는 사람이 구명조끼에 매달리듯 그대의 호흡에 매달리라.

얼마 후 그 감정은 지나갈 것이다.

단 수행을 하기 위해 감정이 강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그대는 지금 이 순간 수행해야 한다.

그대의 기분이 좋고, 아직 감정이 그다지 강력해져 있지 않을 때 수행해야 한다.

이때가 수행을 시작할 적당한 때다.

3주동안 그렇게 하면, 그것은 하나의 습관이 될 것이다.

그러면 화가 나거나 절망감이 엄습할 때마다 그대는 자연스럽게 수행을 기억할 것이다.

수행이 하나의 습관이 되면 그것을 하지 않으면 마치 무엇인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수행은 그대에게 행복과 평화로움과 삶의 안정감을 줄 것이다.

그대의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은 그대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 틱낫한, ‘어디에 있든 자유로우라’ 중에서 –

틱낫한스님─ 멈추는 기술을 배워라

멈추는 기술을 배워라/

틱낫한스님

명상은 문제를 피하는 것이 아니고, 어려운 일에서 달아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달아나기 위해 수행하지 않는다.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고요히 가라앉고, 새로워지고,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멈추는 기술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멈추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더욱 고요히 가라앉고 우리의 마음도 더욱 맑아진다.

진흙이 밑으로 가라앉은 맑은 물처럼 고요히 앉아서 오직 호흡에만 몰두할 때, 우리는 힘과 집중력, 분명한 의식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산처럼 앉아 있으라.

어떤 바람도 산을 넘어뜨릴 수 없다.

30분 동안 앉아 있을 수 있다면, 그 30분 동안 앉아 있는 것을 즐기라.

단지 몇 분 동안만 앉아 있을 수 있다면, 그 몇 분 동안 앉아 있음을 즐기라.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좋은 일이다.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나 자신을 고요한 물이라고 생각한다.

숨을 내쉬면서, 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

산 옆에는 산과 하늘을 본래의 모습 그대로 비추는 맑고 고요한 호수가 있다.

그대도 똑같이 할 수 있다.

고요히 가라앉아 있다면, 산과 푸른 하늘, 그리고 달을 있는 모습 그대로 비출 수 있다.

그대는 자신이 보는 것은 무엇이든 어떤 왜곡도 없이 그대로 비춘다.

모습을 일그러뜨리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본 적이 있는가? 얼굴을 길쭉해지고, 눈은 거대한 괴물 같고, 다리는 너무나 짧다.

그런 거울이 되지 말라.

산 속에 있는 호수의 고요한 물처럼 되라.

우리는 종종 사물을 분명하게 비추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된 인식 때문에 고통받는다.

틱낫한스님─ ‘삶은 이 순간이 가장 아름다워’

‘삶은 이 순간이 가장 아름다워’ 틱낫한 스님 평화와 행복은 꿈이 아닙니다.

일상의 삶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현실로 나타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새해 며칠 동안은 잠시 멈춰 서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좋은 시간입니다.

이 시간만큼은 과거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설계를 잠시 접고, 현재에 대한 불안과 걱정도 거두면서 바로 이 순간에 여러분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을 깊이 들여다보길 바랍니다.

문득 태양의 따스함, 어린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그리고 상쾌한 바람이 느껴집니다.

이 모든 것이 행복과 안녕과 기쁨의 샘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은 평화와 행복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현대사회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길을 잃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잠시 서서 미소를 짓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길거리에 마른 풀이 추운 겨울을 힘겹게 견디고 있음을 매일 봅니다.

그리고 놀이에 빠진 초등학생도 만납니다.

이런 풍경은 여러분을 미소 짓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미소는 여러분 자신에게 기쁨과 기분전환을 안겨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심지어 작은 풀까지도 여러분의 미소에 힘을 얻을지 모를 일입니다.

푸른 하늘과 울긋불긋한 꽃, 새의 지저귐,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이 모든 것은 불국정토, 즉 신의 왕국에 속하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은 죽어야 신의 왕국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신의 왕국에 들어가려면 매우 치열하게 살아 있어야 합니다.

다만 `정신집중(concentration)`과 `마음다함(mindfulness)`이 전제돼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경이로 가득한 참된 삶을 몸으로 접할 기회를 잡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바로 이 순간에, 바로 여기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면서 내세의 천국을, 신의 왕국을, 혹은 정토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죽음 뒤에나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죠.

그러나 부처님에 따르면, 이 순간에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능합니다.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지금 이 순간에는 행복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미래를 위해 현생을 거부해야 한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삶은 바로 이 순간에 경이롭고, 만약에 여러분도 충분한 자유를 누린다면 이 순간에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평화와 행복을 얻는 방법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먼저, 마음다함이라는 수행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행복의 조건들이 늘 우리 곁에 있구나라고 자각하게 됩니다.

지금 당장 펜을 들고 여러분이 가진 행복의 조건을 적어 보십시오.

행복의 조건들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불교 신자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을 행복하게 할 조건은 아주 많습니다.

여러분이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몸을 열고, 마음을 열면 모든 행복의 조건이 당신의 손에 닿습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마음다함이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마음다함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행복의 조건들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많은 사람은 행복을 돈과 명성·권력·섹스를 기준으로 파악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와 젊은 세대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과 파괴를 안겨줍니까? 마음다함이란 마음이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다함은 항상 뭔가에 마음을 온전히 바친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여러분의 발자국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도 있고, 아직 건강한 몸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를 떠올릴 수도 있지요.

사실, 마음다함은 일상의 모든 활동에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 운전을 하고, 차나 커피를 마실 때도 지극 정성으로 마시고, 심지어 전화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마음다함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정신 집중 또한 행복의 원천입니다.

마음다함이 여러분을 행복으로 안내하지만, 만약에 여러분의 마음이 마음다함의 상태를 놓아버린다면 여러분은 다시 행복을 잃고 맙니다.

마음다함의 지속은 여러분이 정신집중을 계속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 이 순간에 정신집중했다가 그 다음 순간에 놓아버린다면, 여러분은 행복을 계속 지켜갈 수 없습니다.

소극적으로 들리는 행복의 원천이 하나 있습니다.

포기하거나 마음을 비우는 것이지요.

여러분을 행복하지 못하게 막는 유일한 장애는 아마 여러분이 버리거나 비우지 못하고 있는 바로 그것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행복에 대한 어떤 관념을 품고 있다면, 여러분이 행복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바로 그 관념일지 모릅니다.

이런 저런 것은 꼭 가져야 하고, 이런 저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식이죠.

지금까지 당신의 행복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온 것들을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사람일 수도 있고, 주택일 수도 있고, 욕망일 수도 있고, 관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뒤로 버리고, 더 이상 그런 것의 희생이 되지 않는 것이 아마 행복의 진정한 조건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마음을 비우지 못합니다.

그 때문에 지속적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참선 수행의 목적이 뭡니까? 여러분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것입니다.

자유인처럼 앉고, 자유인처럼 걷고, 자유인처럼 호흡해 보세요.

그러면서 여러분 속에 도사리고 있는 노예의 뿌리를 찾아내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의 욕망과 화와 두려움의 노예가 돼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쑥 빠져 나가게 내버려 두십시오.

단순한 삶은 행복의 또 다른 원천입니다.

단순하고, 마음을 다하는 삶의 중요한 양상 하나는 소비 방식입니다.

우리는 매일 뭘 먹습니까? 아이들에게는 뭘 먹이고 있습니까? 심각한 질문입니다.

잠시 그 문제를 곰곰 생각해보세요.

부처님은 모든 존재가 음식으로 살아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현대인의 경우 육체에는 소화 가능한 음식을 공급하고, 정신에는 TV와 음악·빌보드 광고·잡지·영화 등 감각적인 대상들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의 모든 이미지와 소리를 섭취합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모든 것은 우리의 의식과 육체· 마음에 영향을 미칩니다.

일부 선진국의 어린이들은 매일 TV를 네 시간 이상 시청합니다.

어린이들이 TV를 보면서 어떤 자양분을 섭취하겠습니까.

어린이들이 어떤 감정과 사상을 받아들일까요? 젊은 세대 사이에 폭력과 화·갈망·절망이 팽배합니다.

그들이 소비하는 음식을 보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섭취한다는 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그것이 우리의 신체와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안다는 뜻입니다.

어린이와 이 사회를 보호하려면 우리는 마음을 다 쏟는 소비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매일 섭취하도록 내놓을 수 있는 경이로운 것들이 이 세상에는 아주 많습니다.

자연의 정원은 맛나고 건강한 음식으로 넘쳐납니다.

말하는 방식, 걷는 방식, 정성을 다하여 호흡하는 방식, 그리고 동정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방식,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어린이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음식들입니다.

평화의 이미지, 화해의 이미지, 더욱 커진 이해심의 이미지가 어린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음식입니다.

부디 여러분이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가꿔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린이들을 어떻게 키워가고 있는지를 새해에 다시 한번 돌아봐 주시길 바랍니다.

대신 여러분은 구름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나무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늘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자연의 책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자연은 훌륭한 책이니까요.

꼭 글을 파고들 필요가 없습니다.

독서 못지 않게 자연을 읽는 일 또한 흥미롭습니다.

저는 많은 아이들에게 만물이 서로 얽혀 존재한다는 점을 가르치기 위해 아이스크림 콘과 구름을 깊이 들여다보는 방법을 가르쳐왔습니다.

아이들과 법문을 나누기 전에 저는 차를 마시며 아이들에게 이렇게 묻지요.

‘내가 지금 구름과 비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아니? ‘라고요.

저는 어린이들에게 다음 번에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는 꼭 잊지 말고 아이스크림 속에 들어 있는 구름 냄새를 맡고 구름에 미소를 지어 보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70%가 물입니다.

물을 마실 때 여러분은 몸 속에 구름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만약에 비에서 구름을 볼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부처님의 눈인 지혜를 얻은 것입니다.

지혜는 깊이 들여다보는 행위가 맺는 결실이고, 행복의 또 다른 원천입니다.

여러분은 금방 자신의 삶이 주변의 모든 것과 서로 얽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은 구름과 사슴, 꽃의 새싹과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모든 것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행복은 `인간이란 상호 의존적인 존재`라는 지혜에 크게 좌우됩니다.

그 깨달음을 얻는다면 홀로 있음에 대한 두려움, 죽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단절에 대한 두려움을 쉽게 초월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책을 읽는 것은 매우 즐거운 수행이지요.

오늘날 많은 사람이 TV와 컴퓨터에 파묻혀 삽니다.

이 또한 매우 자연스럽지 못한 일입니다.

물론 매우 교육적인 TV 프로그램도 많고, 컴퓨터 또한 많은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균형을 잡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자연에서 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연에서 위대한 예술작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점점 부풀어 오르는 파도는 자연의 음악입니다.

여러분의 집 앞뒤로 걸린 구름의 모양, 그것은 그대로가 그림입니다.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상설 전시관이지요.

거기 자연에는 예술가가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 펼쳐지는 산과 강·바다, 그것은 매시간 달라지는 그림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수행법 몇 가지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저 자신만 아니라 저 주변의 많은 친구들의 행복에도 꼭 필요한 마음다함과 정신집중,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수행법입니다.

저의 걷기 명상 수행(행선·行禪)부터 이야기 하지요.

중국 당나라의 혜조(慧照)선사는 땅 위를 걷는 것을 기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떻게 그게 기적일 수 있을까요? 자유 때문입니다.

어떤 자유냐고요? 고민과 두려움·외로움, 그리고 계획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러면서 땅과 발의 접촉을 즐깁니다.

그리고 온몸으로 호흡을 즐기지요.

단 한 발자국으로도 우리는 부처님의 정토로, 신의 왕국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단 한 발자국으로 우리는 현 순간을 즐길 수 있습니다.

걸음 걸음이 무척 즐거운 일일 것입니다.

걸음을 옮기면서 호흡을 마음 속으로 따라가고, 부드럽게 미소 짓습니다.

전신을 편안하게 풀어주고, 경쾌하고 신선한 기분을 계속 유지합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매순간 목적지에 닿고 있는 것입니다.

플럼 빌리지(틱스님이 이끄는 영성 수행공동체)에서 우리는 마음다함의 수행을 고무하기 위해 시를 즐겨 활용합니다.

‘나는 이미 도착했다/나는 고향집에 왔다/바로 여기 이곳에서/바로 지금 이 순간/나는 바위처럼 굳건하다/나는 바람처럼 자유롭다/궁극의 그곳 대자유에/나는 언제나 거하노라’라는 시입니다.

도시에서는 숨을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 서너 걸음을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부드럽게, 차분하게, 편안하게 걷지요.

여러분이 걷기 수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평화와 기쁨을 발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다함과 정신집중을 얻으려면 느릿느릿 걷는 게 좋습니다.

걸음걸이를 늦추면 여러분은 매 순간 하고 있는 일을 더 절실히 의식할 수 있습니다.

잠시 자신의 호흡을 즐겨 보세요.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느껴질 것입니다.

어느 때나 실천할 수 있는 매우 간단한 운동이지요.

손을 복부에 대고, 배가 올라오고 내려가는 것을 느껴 보세요.

호흡을 가볍고 자연스레 해 보세요.

호흡을 고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마음으로 호흡을 따라 가 보세요.

육체와 정신이 다시 살아나면서 차분함과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집니다.

마음을 다하는 호흡은 가장 기본적인 선(禪)수행입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두려움과 화·욕망 같은 강렬한 감정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런 호흡을 생활화하면 동정심과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게 되지요.

불교에서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고 바른 말을 골라 하는 수행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동정심으로 듣고 사랑으로 말하는 것은 연인과 연인,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국가와 국가 사이의 의사소통을 회복하는 경이로운 방법입니다.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려면 온몸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 상대방은 아내일 수도 있고, 남편일 수도 있고, 아들이나 딸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내면에 너무 많은 화와 폭력을 가두고 있기 때문에 정성으로 들을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말을 다정하게 할 줄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들은 항상 상대방을 비난하고 비판하려 들지요.

그리고 그들의 언어는 매우 거칠고 비뚤어져 있습니다.

그런 언어는 언제나 우리 안에 화와 짜증을 키우고, 측은지심으로 남의 말에 귀기울이지 못하게 합니다.

행복과 자유의 중요성을 잘 말해주는 작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사공이 물길을 거슬러 힘겹게 노를 젓고 있는데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배가 하나 있었답니다.

곧 충돌하고 말 것 같은데 저 쪽 배에서는 아무런 노력이 없었습니다.

급기야 두 배는 안개가 자욱한 강에서 충돌했고, 사공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런데 사공이 정신을 차려 상대방 배를 보니 빈 배가 아니겠습니까.

일순간 그 사공의 화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화를 내겠습니까, 아니면 담담해지겠습니까.

이렇듯 화를 내고 안 내고는 여러분 자신에게 달린 것이지, 나 아닌 다른 데 달린 것이 아닙니다.

이해심과 동정심을 키워가면 그 첫 수혜자는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마음다함과 정신집중·통찰력을 확보하면 동정심을 쉽게 가꿀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우리 모두는 가족과 사회, 더 나아가 이 세상에 대단히 중요한 존재가 됩니다.

평화로운 발걸음과 정성을 다 쏟는 호흡, 사려 깊은 소비, 혼이 담긴 시선, 측은지심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이 있다면 우리 모두는 자신과 타인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고통과 아픔을 누그러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바로 이 순간에 잡을 수 있는 행복과 평화에 이르는 아름다운 길이 펼쳐집니다.

한번 노력해보십시오.

번역=정명진 기자myungjin@joongang.

co.

kr 16세에 베트남에서 출가한 틱낫한(釋一行·76)스님은 1980년대 초 프랑스로 망명한 후 1982년 보르도 지방에 명상수련센터 `플럼 빌리지`를 세워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틱낫한은 3월 두번째 방한에 앞서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새해 편지를 보내왔다.

첫회분은 3일자 8면에 실렸다.

행복해지려는 사람들에게 매일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깊이 성찰해 보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처한 현실의 개선을 위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연스럽지 못한 삶의 방식을 많이 익혀 왔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책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을 쏟습니다.

물론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요.

하지만 독서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으면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출처: 중앙일보 게재일: 2003년 01월 03일 [8면] / 01월 04일 [15면] 합본.

기고자 : 번역=정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