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계 재가 신도로서 받아 지녀야 하는 것이 삼귀의 외에 다섯 가지 실천 윤리인 오계(五戒)입니다. 삼보를 나의 영원한 의지처로서 받들 것을 맹세한 이후에 불자로서 첫발을 내딛을 때 손목에 연비를 하면서 수계식(受戒式)을 거행하는데, 거기서 반드시 받아 지녀야 할 것이 오계입니다. 오계란 다섯 가지 계율을 말합니다. 계율은 나와 남이 함께 선업을 쌓아 고통을 극복하고 불세계로 가기 위한 행동의 가치 기준이며 평화와 행복,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깨닫음의 불세계로 들어서기 위한 준비 조건입니다. 그것은 불제자로서의 생활 규범인데, 이러한 윤리 규범과 생활 태도가 올바르지 않은 상태에서 영원한 행복의 길로 간다는 것은 나무 위에서 고기를 구하는 격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다섯 가지 계율을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불살생(不殺生)ㆍ불투도(不偸盜)ㆍ불사음(不邪淫)ㆍ불망어(不妄語)ㆍ불음주(不飮酒)입니다. 1) 불살생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을 파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며 동물들, 그리고 뭇 생명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2) 불투도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주지 않는 것은 빼앗지 않는’ 계입니다. 이는 남에게 속한 사물을 빼앗거나 소유하지 않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재산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현대에 들어 지적 재산권 침해라든가 남이 발견한 발명품을 허락없이 모방하거나 도용하는 것도 이러한 계율을 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불사음 혼인의 순결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혼인의 순결을 지키는 것은 가정을 유지하는 근원이기에 올바른 부부관계가 아닌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부 사이에는 깊은 존경과 보살핌과 사랑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4) 불망어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뛰어넘어 언어 생활의 신중함을 일컫습니다. 생각없이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항상 말하기 전에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며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특히 불가에서는 상대방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악담으로서 악구(惡口)나 이상스러운 말로 남을 현혹시키는 기어(綺語), 서로간에 이간질시키는 양설(兩舌)을 저지르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5) 불음주 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입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사항은 술이라는 음식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취하게 한다는 작용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취한 상태에서는 정신이 혼미해져 사태에 대한 올바른 판단력을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술이나 환각물질, 중독성 물질을 취하지 말라는 것이 불음주계입니다. 자, 이제 이러한 오계를 받았으면 우리는 부처님의 자식인 불제자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며 그에 걸맞는 이름인 법명(法名)을 받습니다. 이러한 불자로서의 삶은 그 이전의 세속적인 삶과는 달라야 합니다. 사찰 및 포교당에서 열리는 법회에 정기적으로 참여하여 부처님 말씀을 가슴 깊게 새기고 수행하며 기도하고, 이 수행과 기도의 힘이 일상생활 속에서 행복한 삶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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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당의 이름과 여러 부처님, 보살님들
2. 법당의 이름과 여러 부처님, 보살님들 이제 법당으로 들어설 차례입니다. 법당이란 법을 설하는 건물이라는 뜻입니다. 예전에 이곳에 황금색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고 해서 금당(金堂)이라 불렀습니다. 법당은 불보살을 모시고 있기에 궁전이라는 뜻의 전(殿)이라 존칭하고 있습니다. 법당은 그곳에 모셔져 있는 불보살님이 어떤 분인가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이름을 갖고 특징지워집니다. 특히 사찰의 정중앙에 자리잡은 법당은 큰법당이라고 합니다. 대웅전(大雄殿)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법당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모든 번뇌를 쓸어버리고 깨달음을 얻었기에 위대한 승리자요 위대한 영웅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대웅(大雄)이라 불렀으며 이 분을 모신 곳을 대웅전이라 이름한 것입니다. 보통 석가모니부처님 좌우에는 협시보살이나 다른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 좌우에 아미타부처님과 약사여래가 자리잡고 있을 경우 그곳은 격을 높여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대적광전(大寂光殿) 화엄경에 등장하는 주존 부처님인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법당입니다. 비로자나부처님이란 태양의 빛이 만물을 비추듯이 우주의 일체를 비추며 일체를 포괄하는 부처님입니다. 진리의 본체라 하여 법신불(法身佛)이라 일컫기도 하지요. 이 법신부처님은 형상도 없고 소리도 없습니다. 그래서 전혀 설법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법신불의 미간 백호에서 광명이 비춰 나와 시방 세계의 모든 나라를 드러냅니다. 이렇게 침묵 속에서 찬란한 진리의 빛을 발한다 하여 이 법신불을 모신 큰법당을 대적광전, 적광전, 대광명전(大光明殿), 보광전(普光殿)이라고도 부릅니다. 비로전(毘盧殿)이라는 명칭도 있습니다. 극락전(極樂殿) 인간과 모든 생명의 한계 상황인 죽음을 물리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법당입니다. 이 부처님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주불이기 때문에 이분을 모신 법당을 극락전이라 한 것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은 또한 무한한 빛이요 생명의 부처님이어서 무량광불(無量光佛), 혹은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 불리기에 극락전은 무량수전, 무량광전으로도 일컬어집니다. 이 밖에 아미타전, 미타전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습니다. 정토세계의 주불(主佛) 아미타부처님의 협시보살로서 좌측에 있는 분이 관세음보살이고 우측에 있는 분이 대세지보살입니다. 여기서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대세지보살은 지혜를 각각 상징합니다. 미륵전(彌勒殿) 미래에 이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들을 구원할 구원의 부처님, 당래불(當來佛)이 미륵부처님이고 이 분을 모신 법당이 미륵전입니다. 이 법당은 미륵부처님에 의해 정화되고 펼쳐지는 새로운 불국토인 용화세계를 상징한다고도 하여 용화전(龍華殿)이라고도 부릅니다. 약사전(藥師殿) 병든 사람과 생명들을 고치고자 하는 원력을 세운 부처님이 약사여래요 이 분을 모신 전각이 약사전입니다. 약사여래는 의왕여래(醫王如來) 또는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 이름했고 동방 정유리세계(淨琉璃世界)의 주불이므로 약사유리광여래(藥師琉璃光如來)라고도 불립니다. 그래서 유리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약사여래의 좌협시 보살이 일광보살(日光菩薩), 우협시 보살이 월광보살(月光菩薩)입니다. 한편 이러한 큰법당 주변에는 여러 부처님과 보살님들을 모신 법당 또한 자리잡고 있습니다. 원통전ㆍ관음전ㆍ지장전 등이 그것입니다. 원통전(圓通殿) 관세음보살님을 모신 법당이기에 관음전(觀音殿)이라고도 합니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고통스러운 음성이나 바램을 관찰하여 그들을 구해내는 자비로운 보살님입니다. 그래서 이 분을 일러 대비성자(大悲聖者), 구제대비자(求世大悲者)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리고 원통대사(圓通大士)라는 말도 있는데, 이것은 관세음보살의 능력이 두루 미치지 못하는 바가 없음을 의미하는 말 입니다. 원통전은 이 관세음보살의 원통대사로서의 능력을 강조한 명칭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장전(地藏殿) 온갖 죄악으로 죽어서 육도 윤회를 거듭하는 중생, 특히 처참한 살풍경이 벌어지는 지옥 중생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내 그곳에서 그들을 구원해 내는 분이 지장보살님입니다. 이 지장보살님을 모신 법당을 지장전이라 합니다. 한편 지장보살은 지옥중생을 구제하기 때문에 지옥의 세계인 명부세계 주존으로 모셔져 있습니다. 그래서 지장전은 명부전(冥府殿)이라 일컫기도 합니다. 그리고 명부전에는 망자를 심판하는 열명의 심판관이 들어서 있으므로 시왕전(十王殿)이라 지칭하기도 합니다. 나한전 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로서 아라한의 지위에 오른 나한님들을 모신 전각입니다. 아라한은 번뇌를 남김없이 끊어버린 분들로서 진리와 합치하기 때문에 응진(應眞)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응진전은 나한전의 또다른 이름으로 사용됩니다. 또한 나한전은 영산회상의 모습을 재현했다 해서 영산전(靈山殿)으로도 불립니다.
2. 대승불교의 정신과 발자취
2.대승불교의 정신과 발자취 이 대승불교 운동의 여명은 보살(菩薩)이라 불리는 새로운 불교 개혁 세력에 의해서 전개됩니다. 보살이란 진리의 길로 들어서 자각적 존재로서 구도자(求道者)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보살을 여성불자를 지칭하는 말로 이해하는 것은 올바른 보살의 의미가 아닙니다. 자각적 존재로서의 보살은 한편으로는 진리를 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체득하여 그들을 그 고통의 질곡에서 구제하기 위해 애씁니다. 아파하는 이웃들과 함께 깨달음의 길로 나서고자 하는 보살의 이상을 상구보리(上求菩堤)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 합니다. 보살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여섯 가지 피안에 이르는 길인 육바라밀(六波羅密)이 요청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반야(般若)바라밀입니다. 반야란 초월적인 지혜를 일컫습니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아는 지식이 아니라 그 사물과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직관적 지혜인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 마음을 잘 다루고 관리해 행복은 물론 일체로부터 자유로운 해탈의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다루고 깨우치기까지는 스스로의 주체적인 행위가 요구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불교를 자력불교(自力佛敎)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고통에도 굴하지 않고 깨달음의 세계, 천당이며 극락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태어나면서부터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나약한 사람도 많습니다. 이렇게 생존 자체마저 위협받는, 그래서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나약한 의지의 소유자에게 불교는 부처님의 가피력에 몸과 마음을 의지하는 타력(他力)신앙을 내겁니다. 이들에게 자력으로 해탈의 세계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타력신앙에서 그 믿음의 대상은 아미타부처님이며,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곳은 안락세계인 극락정토(極樂淨土)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은 수명이 무한하여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고도 부릅니다.『법화경』에서도 부처님을 굳건히 믿고 예배하는 신앙을 통하여 성불에 이르는 길을 잘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승불교는 이렇게 반야의 지혜를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도도한 불교사의 맥을 형성하게 됩니다. 중관학파와 유식학파를 태동시켰으며 정토 타력신앙도 꽃피웠습니다. 이러한 인도의 불교는 중국으로 전해져 동북아시아 대륙에 전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