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근본교리 (7)연기법

④ 명색(名色 namarupa)

명색이란 정신과 물질을 함께 지칭하는 합성어입니다. 명(名)은 오온(五蘊) 가운데 색(色)을 제외한 수(受)·상(想)·행(行)·식(識)을 형성하는 인자(因子)라 할 수 있는 것이고 색(色)은 곧 물질을 이루는 요소인 지(地)·수(水)·화(火)·풍(風)의 사대(四大)로 구성된 객관 경계에 나타나는 물질적 현상입니다. 때로는 육체 와 정신의 양면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식에 의해서 명색이 있게 된다는 것은 거울이 있으니 거울에 물체가 비쳐진다는 논리와 같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있음으로 인식의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관과 객관의 관계설정에 있어 주관이 먼저 서는 차례를 보이는 것입니다. 식이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명색이 있어야 하며 명색은 식을 조건으로 해서 연기되어진다는 것입니다.

⑤ 육입(六入 sadayatana)

육입이란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마음(意)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을 통하여 객관 경계를 인식하면서 주객(主客)이 대응하는 영역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육입이 명색을 조건으로 해서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태어나는 과정에서 볼 때 식이 탁태되어 태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아직 눈, 귀, 코 등의 근(根)이 갖추어지지 아니한 상태를 명색이라 하고 육근이 갖추어진 상태를 육입이라 한 재래적인 해석방식이 있기는 하지만 외계의 사물을 인식하는 차원에서 보면 명색은 인식의 대상인 경계라 할 수 있으므로 이 경우에 있어서는 식과 명색과 육입은 동시에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 것들이 됩니다.

⑥ 촉(觸 sparsa)

촉(觸)이란 신체의 기관을 통해서 외부의 객관 경계를 느끼는 지적(知的)인 힘을 말합니다. 감각을 느끼는 자체가 촉인 것입니다. 이 역시 육입을 조건으로 해서 일어나는데 엄격히 말하면 식(識)과. 명색(名色)과 육입(六入)이 동시에 함께 함으로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만 인간의 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볼 때 육입이 갖춰지고 난 뒤에 촉(觸)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시각(視覺)이나 청각(聽覺)등이 일어나는 상태가 촉으로 육입이 있으므로 육촉이 되는 것입니다.

⑦ 수(受 vedana)

수(受)란 외부의 경계로부터 느낌을 받는 감수(感受)작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즐거운 감정(樂受)과 괴로운 감정(苦受) 그리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감정(不苦不樂受)의 세 가지가 모두 객관 경계로부터 우리들의 마음에 와 닿는 느낌입니다. 마치 거울에 물체의 모양이 투영되어 거울 면에 허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사물을 대할 때 먼저 감수를 통한 인상(印象)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각인(刻印)되는 것입니다. 육근(六根)의 감각기관과 그 대상인 육진(六塵)과 인식작용이 함께 만나면 촉이 일어나면서 동시에 감정의 느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앞의 지(支)인 촉(觸)에 의해서 객관의 경계가 우리의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인 것입니다.

⑧ 애(愛 trsna)

애(愛)란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고 싶어하듯 무엇을 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애욕(愛慾)을 갈애(渴愛)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마음에 드는 것을 만나면 애착심(愛着心)이 생기고 마음에 들지 않는 싫은 것을 만나면 증오심(憎惡心)이 생기는데 이 모두가 애(愛)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 애(愛)는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본능적 욕구이기도 합니다. 오욕락(五慾樂)인 이성간의 성적인 욕구와 음식에 대한 욕구, 수면에 대한 욕구, 재물에 대한 욕구 명예에 대한 욕구가 모두 애(愛)인 것입니다. 고(苦)·낙(樂)등의 감수작용이 심해질수록 거기서 일어나는 애착심 증오심도 강해지면서 다음 지(支)인 취(取)의 집착이 애를 통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안스님강의. 월간반야 2001년 7월 (제8호)

불교의 근본교리 (6)연기법

불교의 본질은 인생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세계는 미혹으로 인한 그릇된 행위가 일어나서 결국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오는 악순환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교리적으로 표현할 때 혹(惑)→업(業)→고(苦)의 순환이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이루었을 때 중생의 고통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며 어떻게 사라질 수 있는가를 관찰하고 그 이법을 이론적으로 전개해 놓은 것이 12인연설입니다. 생멸변화하는 인생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교리로 12연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12가지의 지(支)가 연결된다 하여 12지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이 설은 모든 존재의 기본적 구조를 12가지 항목의 계열을 세워 설명함으로서 생존의 조건이 연결되는 과정과 이 조건이 소멸되었을 때의 경지를 밝혀 놓은 것입니다.

① 무명(無明 avidya)

우리들 존재의 맨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무명이라 합니다. 글자 그대로 밝음이 없는 어둠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무지(無知) 혹은 무지(無智)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모른다’, ‘지혜가 없다’는 뜻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생·노·병·사의 고통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무명에서부터 중생의 업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여실히 진여(眞如)의 법이 하나임을 알지 못하는 상태를 무명이라 한다고 정의를 내려놓았습니다. 우주 만유에 가득한 상주불변하는 본체를 진여라 하는데 이는 우리들의 사상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경지의 진실한 진리 그 자체를 두고 부르는 말입니다. 이 진여를 모르는 상태 곧 깨닫지 못한 상태를 무명이라 합니다. 중생의 경우에 이 무명이 과거세로부터 무한히 이어져 온 것으로 그 시작이 인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합니다. 그래서 흔히 시작을 모른다는 뜻을 붙여 무시무명(無始無明)이라 합니다. 또한 이 무명 때문에 번뇌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마치 땅이 있기 때문에 잡초가 자라듯이 번뇌의 땅이 되는 것이 이 무명입니다. 비유하여 말하자면 캄캄한 어두운 밤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서 동·서·남·북의 방향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무명을 미혹(迷惑)이라 하고 줄여서 한자로 혹(惑)이라고도 합니다.

② 행(行 samskara)

행이란 곧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형성되는 힘 혹은 만들어지는 힘을 뜻하는 말인데 어떤 원인에서 결과가 나타나기까지의 진행될 힘이 잠재해 있는 것을 말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업(業 karma)이 지어지는 상태, 일어나는 상태가 행으로 몸으로 하는 신행(身行)과 말로 하는 구행(口行)과 생각으로 하는 의행(意行)이 있습니다. 이 삼행(三行)을 삼업(三業)이라고도 하는데 모두 무명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구·의에 따른 행위가 축적되어 사람의 인격의 내용이 결정되고 삼행의 행위에 의해서 형성된 습관력(習慣力) 또한 행인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업을 짓는 자체가 행인데 업을 지으면 그것을 지은 존재의 내부에 반드시 어떤 행을 유발할 잠재적인 힘이 형성되는데 이것이 업력(業力)이며 업력이 있으면 행은 따라 일어나며 이 업력이 바로 앞에서 설명한 무명이 조건이 되어 생기는 것이며 업력이 형성되는 상태 또한 행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③ 식(識 vijnana)

인식작용 또는 분별작용을 식이라 합니다. 여기에 안식(眼識)·이식(耳識)· 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들 주관을 이루는 인식작용의 갈래를 나누어 말하는 것인데 눈·귀·코·혀·몸의 오관에 의해 일어나는 인식과 마음(意根)에서 일어나는 인식까지를 육식(六識)이라 합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유식설(唯識說)에서는 7식·8식을 추가하여 말나(末那 manas)식과 아뢰야(阿賴耶 alaya)을 말하지만 근본불교의 교리인 12인연설에서는 아직 7·8식이 설해지지 않았습니다.

이 식은 반드시 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납니다. 그리고 표면적인 의식 다시 말하면 우리들 머리에 떠오른 의식뿐만 아니라 잠재의식이나 무의식 상태에서도 식은 내재해 있습니다. 가령 꽃을 보고 꽃을 인식할 때에 꽃을 보는 행이 먼저 일어나 경험하는 과정이 있고 난 후 잠재의식이나 직접적인 의식이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식은 시간적으로 과거의 것이나 미래의 것을 생각하는 중추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럴 때 의식의 영역이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무한히 확대되는 것입니다.

지안스님강의. 월간반야 2001년 7월 (제8호)

불교의 근본교리 (5)

(5) 연기법(緣起法)

연기법이란 불교교리의 주축을 이루는 근본 이론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을 이론적으로 명시(明示)한 것이 바로 연기법이라 할 수 있다. 연기란 말은 범어(梵語sanskrit) 쁘라띠따사무뜨빠다(pratityasamutpada)를 번역한 말인데 이는 쁘라띠따(pratitya)와 사무뜨빠다(samutpada)의 합성어로 쁘라띠따는 ‘…때문에’, ‘…말미암아서’, ‘…의해서’라는 뜻이고 사무뜨빠다는 ‘태어나다’, ‘형성되다’, ‘생기다’는 뜻이다. 따라서 연기란 ‘…을 말미암아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모든 존재하는 현상은 그것을 성립시키는 여러 가지 원인이나 조건에 의하여 생겨진다는 의미이다.

잡아함경에는 연기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此起故彼起)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도 사라진다.(此滅故彼滅)

이 말은 모든 존재는 서로 의지하는 상관관계 속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말로 고립 독존적인 존재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연기란 모든 존재의 상호 의존해 있는 관계성을 설명하는 말이다. 부처님 자신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비구들이여, 연기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서로 의지하는 상의성(相依性)이다. 나는 이것을 깨닫고 이해하였다.”

또 아함경에는 연기의 이치를 갈대에 비유하여 설한 이야기가 있다. 맨땅에 갈대를 세울 때 세 개의 갈대를 서로 의지하게 하여야 세워지는 것이며 한 개나 두 개로는 바로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그 존재를 이루는 요소가 있으며 이 요소가 필수적으로 갖추어져야 하는 조건이 충족될 때 존재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어떤 존재를 이루고 있는 A, B, C의 세 가지 요소가 있다 할 때 이들 세 요소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다. A가 원인이 될 때 B와 C는 A의 조건이 되고 B가 원인이 될 때는 A와 C는 B의 조건이 된다. 마찬가지로 C가 원인이 될 때 A와 B는 C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앞의 갈대의 이야기로 다시 말하면 A, B, C라는 세 개의 갈대 가운데 어느 한 갈대가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다른 두 개의 갈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의 원리에서 볼 때 어떠한 존재도 우연히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여러 가지 원인과 조건에 의하여 생겨나 존재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상대적으로 의존하면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연기법은 곧 존재의 이법(理法)이다. 이것은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우주만유(宇宙萬有) 실상의 진리로 동서고금의 차별이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것을 깨닫고 부처가 되어 이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가지가지의 설법을 한 것이다.

지안스님강의. 월간반야 2001년 6월 (제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