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단순한 진리

단순한 진리 /

달라이라마

삶의 목표는 행복에 있다.

종교를 믿든 안 믿든 우리 모두는 삶에서 더 나은 것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삶의 모든 행위가 행복을 향하고 있다고 믿는다.불행한 사람들이 훨씬 자기 중심적이고 외톨이가 되며, 비판적이고 적대적인 성격을 갖기 쉽다.

행복한 사람들은 친해지기 쉽고 마음이 넓으며 창조적이고 일상에서 좌절을 더 쉽게 극복한다.

어떤 순간에 행복이나 불행을 느끼는 것은 주변 여건과는 거의 관계가 없고 오히려 우리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드리며 자신이 가진 것에 얼마나 만족하는가에 달려있다.지나친 욕망은 결국엔 탐욕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탐욕이란 기대가 지나쳐 생긴 욕망이다.무엇인가를 가지려는 욕망에서 탐욕이 생기지만, 그것을 가진다고 탐욕을 만족시킬 순 없는 것이다.사람은 만족을 얻기 위해 탐욕을 갖지만, 뜻밖에도 바라는 것을 얻은 뒤에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그것이 탐욕의 흥미로운 점이다.

탐욕의 반대는 무욕이 아니라 만족이다.

당신이 큰 만족감을 갖고 있다면, 어떤 것을 소유하는가 아닌가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도 당신은 변함없이 만족할 수 있다우리가 내면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원하는 걸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것을 원하고, 또 그것에 감사한다면 내면의 만족은 계속된다.마음으로 행복을 찾는 또 다른 방법은 자신의 가치를 깨닫는 일이다.진정한 행복은 마음과 가슴에 더 깊은 관계가 있다.

육체적인 쾌락에 의존하는 행복은 어느 날은 그곳에 있지만 다음 날엔 없어 질 수 있는 불안정한 것이다.날마다 우리는 수 많은 결정과 선택을 해야한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한다해도 우리는 종종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지는 못한다.

달라이라마─내가 믿는 소박한 종교

내가 믿는 소박한 종교

-달라이라마-

“나의 철학은 자비로운 친절” 오늘은 친절과 자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달라이 라마나 불자나 티벳인으로서 하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러분도 내 이야기를 들을 때 자신을 미국인, 서양인 등으로 구분하지 말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들어 주었으면 한다.

그런 구분은 2차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러분과 내가 서로 인간으로서 대하면 이러한 근원적인 차원에서 만날 수 있다.

“저는 승려입니다.”, “저는 불자예요.”라고 말할 때 이런 것들은 일시적인 것이다.

인간이 되는 것, 그것이 가장 근원적인 것이다.

일단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 사실은 죽을 때까지 변할 수 없다.

그외의 특성은, 이를테면 우리가 교육을 받았다든지 못 받았다든지, 또는 부자라든지 가난하다든지 등등은 모두 2차적인 문제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어떤 문제들은 인간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사상, 종교, 인종, 경제적 지위 등등으로 인간을 구분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제 좀더 심오한 차원에서, 인간의 차원에서 이런 것들을 숙고해 보고 우리와 남이 같다는 것을,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존중하고 인식해야 할 때가 되었다.

문화적, 철학적, 종교적, 신앙적 차이에 상관없이 상호 신뢰, 이해, 존중, 도움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구축해야 한다.

결국 모든 인간은 살과 뼈, 피로 이루어져 있고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권리가 동등하고, 인간으로서 우리들은 같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커다란 인간 가족에 속한다.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그건 2차적인 이유 때문이고 따라서 이 모든 논쟁, 속임수, 상대를 억압하려는 행동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위기와 두려움이 있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 기술로 인해 물질적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유용한 일이고 또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외적 발전과 내적 발전을 비교할 때 내적 발전이 너무나 부족하다.

테러, 살인 같은 위기 상황이 오랫동안 계속된 나라가 많다.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나날이 범죄가 늘고 있다.

외적으로는 고도로 발달하고 발전을 거듭하지만 내적 성장에 대해서는 소홀히 여겨왔다.

누군가를 적으로 간주할 수는 있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적도 인간이고, 행복을 원하고, 또 행복할 권리도 있다.

히로시마를 보고 그 여파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는 분노와 증오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

분노는 분노로써 극복되어지지 않는다.

어떤 이가 우리에게 화를 내고 내가 그에게 화로 반응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반대로 우리가 화를 참고 자비, 관용, 인내를 보인다면 우리의 평화로움이 깨어지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분노가 서서히 사그라들 것이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도 분노나 증오로 맞받을 수 없다.

이들을 자비, 사랑, 진정한 친절로 대해야 한다.

무기 자체는 전쟁을 시작할 수 없다.

무기의 단추를 조작하는 것은 인간의 손이고 이 손은 사고(思考)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책임은 사고에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깊이 들여다보면 답은 우리 안에서, 마음에서 나온다.

우선 마음을 조절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깊은 명상에서처럼 마음을 조절하라는 게 아니고, 화를 줄이고, 다른 이의 권리를 좀더 존중하고, 다른 이를 더 배려하고, 인간이 같다는 것을 더 분명히 깨닫는 것을 말한다.

분노로 인해 우리는 인간의 최선의 덕을 하나 잃는다.

그것은 판단의 힘이다.

인간은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현재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10년, 20년, 100년까지의 미래를 내다보고 판단할 수 있다.

상식으로도 옳고 그른 것은 판단한다.

어떤 행위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안다.

그러나 마음이 분노로 가득 차게 되면 이런 판단의 힘을 잃게 된다.

일단 판단의 힘을 잃고 나면 슬프게도, 외모는 완전한 인간이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게 된다.

인간의 육체를 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인간으로서 판단의 힘을 잃지 않도록 이를 지켜야 한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든 인류에게 책임이 있다.

다른 사람들을 진정한 형제·자매로 생각하고 그들의 복지를 증진하고 고통을 덜어 주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자신의 이익이나 혜택을 전적으로 희생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다른 이를 염려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좀더 많은 미래에 대해, 모든 인류의 복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분노 같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줄이려고 한다면, 그리고 좀더 친절해지고 다른 이에 대한 자비를 기르려 한다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더 많은 혜택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때로 나는 현명하게 이기적인 사람은 이런 식으로 수행한다고 말하곤 한다.

어리석게 이기적인 사람은 항상 자신의 생각만 하고 그 결과는 부정적이다.

그러나 현명하게 이기적인 사람은 다른 이를 생각하고, 할 수 있는 한 다른 이를 돕는다.

그래서 좋은 결과가 생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믿는 소박한 종교다.

복잡한 종교 철학도 필요 없고 사원조차도 필요 없다.

나의 이성, 나의 마음이 사원이다.

자비로운 친절이 나의 종교 철학이다.

달라이라마─내가 누구를 만나든

내가 누구를 만나든

-달라이라마-

소원을 들어주는 보석(如意寶珠)보다 귀한

생명가진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위해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려는 결심으로 내가 항상 그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가 다른 존재들에 대하여 친절한 마음가짐을 가진다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가 자신보다 덜 행복한 어떤 사람에게 느끼는 일종의 연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연민의 감정에는 우리가 자비심을 가져야 할 대상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으며, 또한 어떤 우월감이 있습니다.

다른 존재에 대하여 친절한 마음가짐을 지닌다는 것은 사실 그 반대입니다.

다른 존재들의 친절과 우리의 영적(靈的)인 진전에서 그들이 얼마나 필요 불가결한가를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의 엄청난 중요성과 의미심장함을 알게 되고, 따라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보다 높은 지위를 부여하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내가 누구를 만나든

나를 가장 낮은 존재로 여기며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그들을 더 나은 자로 받들게 하소서.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 보다 낮게 여기는 마음가짐은 우리 자신을 소홀히 여긴다거나 속수무책의 자괴감으로 오해된다면 곤란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용기 있는 마음상태, 즉 여러분이 다른 존재들과 적극적인 관계를 지닐 수 있으며,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여러분의 능력에 대하여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마음자세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진정한 겸손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의 모든 행동을 스스로 살피게 하고

마음 속에 번뇌가 일어나는 그 순간에

그것이 나와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다면

나는 당당히 맞서 그것을 물리치게 하소서.

우리 자신 속에 자라나는 나쁜 생각이나 감정은 그것에 익숙해지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여러분은 그것을 점점 더 원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나쁜 성향들이 근절되지 않고 지속되는 비밀입니다.

따라서 나쁜 성향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나쁜 감정이 일어날 때마다 여러분은 이에 맞서 그것을 즉각 막아야 합니다.

일상 생활을 통하여 항상 자신을 점검하는 것, 심지어 꿈 속에서도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점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늘 깨어있는 마음가짐을 적용하는 훈련을 거듭함에 따라, 여러분은 점차 그것을 점점 더 규칙적이고 조화롭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늘진 마음과 고통에 억눌린 버림받고 외로운 자들을 볼 때,

나는 마치 금은보화를 발견한 듯이 그들을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 대개 자신의 옳지 못한 행동이나 결함있는 신체조건 혹은 궁핍때문에, 또는 어떤 질병 때문에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 그와 같은 모범이 되는 좋은 사례는 이제 고인이 된 마더 테레사의 삶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일생을 바친 그 녀의 삶은 위의 시편에 묘사된 이상이 구현된 단적인 예입니다.

보리심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들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지니고 마치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대하며 적극적인 상호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누군가 시기하는 마음 때문에 나를 욕하고 비난하며 부당하게 대할 때

나는 스스로 패배를 떠 맡으며 승리는 그들의 것이 되게 하소서.

다른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또는 부당하게 여러분을 비난할 때, 부정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이타를 행하는 참다운 수행자로서 여러분은 그들에게 관용을 보여야 합니다.

아래 시편에서는 우리가 그런 사람들에게 관용을 보여야 할 뿐만 아니라, 사실 그들을 우리들의 정신적인 스승들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도움을 주었거나 큰 희망을 심어 주었던 자가

나에게 상처를 주어 마음을 아프게 하여도

여전히 그를 나의 귀한 친구로 여기게 하소서.

직접, 간접으로 나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은혜와 기쁨 베풀게 하시고 내가 또한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은밀히 짊어지게 하소서.

우리는 이른바 ‘자아’를 우리 존재의 중심에 있는 핵심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으며, 심지어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기꺼이 무시하면서까지 돌볼 가치가 있는 어떤 것으로 여깁니다.

이에 비하여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냉담 그 자체이며, 설사 그들에 대하여 약간의 관심을 가진다 해도 그것조차도 단지 생각이나 감정의 차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무관심하며 그것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습니다.

다른 존재들에 대한 ‘떠맡기와 나누어주기’의 실천은 애정어린 친절과 자비의 실천을 강조합니다.

여덟 가지 세속적인 관심에 물들지 않아 모든 것이 때묻지 않게 하시고,

또한 이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깨달은 나는 집착을 떨쳐 버리고 모든 얽매임에서 자유롭게 하소서.

세속적인 여덟 가지 관심이란,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칭찬할 때 우쭐해지는 것,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욕하거나 얕잡아볼 때 의기소침해지는 것, 여러분이 성공을 경험할 때 행복을 느끼는 것, 여러분이 실패를 경험할 때 우울해지는 것, 여러분이 부(富)를 얻을 때 즐거운 것, 여러분이 가난해질 때 낙담하는 것, 여러분이 명예를 얻을 때 즐거워하는 것, 여러분이 명성을 잃을 때 우울해 하는 것입니다.

존재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함양하는 실천방법으로 실재의 환영같은 본질을 바로 인식하기를 마지막 두 구절은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중생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며 내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나는 항상 부처님과 불법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지혜와 자비에 감화되어 오늘 나는 부처님 앞에 엎드려

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고자 합니다

우주가 지속되는 한 모든 생명가진 존재들이 남아 있는 한

나 또한 여기에 남아 세상의 모든 불행을 물리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