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거스님─원을 이루고 싶거든 금강경을 수지독송해라

원을 이루고 싶거든 금강경을 수지독송해라

-혜거스님-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수지독송하여 남을 위해 설해 준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다 알고 다 보시며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끝이 없고 생각할 수 없는 공덕을 모두 성취하게 되리니 이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사람이 누구냐? 금강경 수지 독송한 사람이다.

누가 옆에서 알아줘 봤자 소용없다.

부처님께서 알아주는 것이 최고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내 모습을 그때서부터 보시게 된다.

이런 원을 이루고 싶거든 금강경을 수지독송해서 외워라! 이런 공덕을 성취하고 나면 나날이 즐거움뿐이다.

그것이 유락무고다.

즐거움만 있고 고통이 없다.

극락세계는 죽은 다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내가 고통이 없이 즐거워진 세계를 만들면 바로 그 세계가 극락세계다.

태산과 화산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쪼갤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다.

실제로 마음 하나에 달려있다.

뭔가를 연구하고 반짝반짝할 때 눈이 파랗다.

세상을 들썩거릴 수 있는 이런 원력들이 있어야 한다.

죽기 전에 그래도 아무개 소리 한번, 뭔가 하나 남기고 죽어야 될 거 아닌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어떻게 죽어요? 분해서.

지금 발심하세요.

걱정도 말고 해요.

팔십 넘어 공부 성취하니까 신문에 나고 난리가 나 버려.

우뢰와 같은 기운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이런 꿈을 품고 살면, 시비가 끊어지고 미워하는 마음을 낼 겨를이 없어요.

그 꿈 때문에.

내 원 이루는데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일편단심, 우리는 한결같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정말로 나를 키우는데 일편단심 해야 한다.

바다처럼 큰 사람이 되고 싶다! 바다처럼 큰 마음을 갖고 싶다! 이것이 일편단심 이 세상 제일 허망한 것이 사람한테 일편단심 한 것이다.

사람은 전부 자기 보는 대로 밖에 못 본다.

사람을 말할 때는 전부 칭찬만을 말해라.

절대 허물을 말하면 안 된다.

아무리 미운 사람도 미운 사람의 단점을 말해서는 안 된다.

말은 장점만 말해야 한다.

아무리 분하고 또 분해도 입 밖으로 말이 나와 버리면 못 주워 담는 것이다.

이것부터 할 줄 알아야 수행이고 금강경 읽는 보람이 있다.

금강경 읽고 다니면서 말 나왔다하면 밤낮 시비만 일으키고 다니면 금강경 읽어서 뭐 하게? 어진이가 보면 어질다 말하고 지혜로운 이가 보면 지혜롭다 말한다.

이렇게 말이라는 것은 자기 속이 나오게 되어 있다.

남을 흉보는 마음은 자기 속에 흉이 꽉 차 있는 사람이다.

내 얼굴에 침 뱉어 놓고는 진짜 속이 시원하다고 한다.

제일 불행한 사람은 영웅도 배우지 않는 사람이다.

나보다 능한 사람, 나보다 잘한 사람을 따라 가지 않는 사람이다.어머니가 준 보배덩어리만 쓰면 무지에서 벗어나 버리는데 그걸 못 쓰고 있다.법화경에서 어머니가 아들한테 집 나갈 때 쓰라고 구슬 하나를 넣어 주었는데, 그걸 쓸 줄 모르고 28년을 거지노릇을 했다.

나중에는 자기 집에까지 거지노릇 하러 왔다.

내가 지니고 있는 이 보배를 쓸 줄 모르고 무지하게 굶어 죽는 노릇을 감수하고 있었다.

그러니 정신 차려야 한다.

작은 법을 탐착해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한 사람이 이렇다는 얘기다.

수보리야, 어느 곳이든지 만일 이 경이 있으면 일체 세간의 천상과 인간과 아수라가 응당히 공양하리니 마땅히 알라.

이곳은 곧 탑이 되나니 모두가 응당히 공경하며 예배하고 에워싸서 여러 가지 꽃과 향으로서 그 곳에 뿌리느니라.

금강경을 읽기만 하면 천상, 인간, 아수라, 온 천지가 응당히 공양을 올릴 것이다.

금강경을 읽는 자리는 탑 모신 자리와 똑같다.

꽃과 향을 가지고 와서 받들어 모시듯이 그 만큼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중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내가 공경 받을 일을 얼마나 했는가? 그런데 공경 받을 일을 안 해 놓고 공경 받기를 원하고, 남편이 안 알아준다고 그렇게 불만이거든 알아 줄 짓을 했는가? 반조해 봐야 한다.

향기 나는 사향, 아무리 꼭꼭 싸고 또 싸도 향기는 나가 버린다.

자기가 대접받을 일을 해 놓고 아무리 숨기고 숨겨도 밖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

대접 받을 일을 하나도 안 해 놓고 ‘왜 나 대접 안 해 주냐?’이러면 보통 난감한 것이아니다 .

대접 받고 싶거든 대접 받을 일부터 해라.

(금강경 지경공덕분 제 15 강의 中 에서)

우학스님─기도발이 왜 안 받는가

기도발이 왜 안 받는가?/2007,산림기도 회향 법문

-우학스님-

오늘 설판기도 회향에 즈음해서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금강경 ‘능정업장분 제십육 부분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부차수보리 선남자선여인 수지독송차경 약위인경천 시인 선세죄업 응타악도 이금세인 경천고 선세죄업 즉위소멸 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거기까지 보시겠습니다.

설판기도 올리면 드리는 ‘일일명상록’은 다들 받으셨지요? “네” 오늘 양력 3월 12일자의 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남의 단점을 즐겨 비방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기의 단점이 된다.” “아침에 보고 오셨습니까?” “네” 이걸 화장대나 책상 위에 두고 하루에 한 편씩 꼭 명상을 하시기 바랍니다.

참선과 명상을 서양에서는 ‘meditation’이라고 해서 다 같이 씁니다만, 동양쪽에서는 좀 다르게 구분해서 씁니다.

‘참선’은 오로지 화두를 챙기거나 부처님을 열심히 외우는 수행으로 보고 ‘명상’은 자기식대로 여러 번 반복해서 생각해 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건 ‘일일명상록’이니 꼭 하루에 한 편씩 되씹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설판기도’란 일반기도와는 좀 다르고 좀 더 기도를 가일차게 용맹정진 하듯이 한번 해보자 해서 다부지게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기도기간도 길고 또 마음가짐도 좀 달라야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를 하면 백퍼센트 성취되는 것은 분명한데, 성취가 안 될 때도 많고 기도중에 우환이 생기는 수도 또한 많습니다.

그렇다면 기도 성취를 하는 방법들은 많이 얘기를 했는데 기도 성취가 안 되고 오히려 기도중에 가정이 시끄럽거나 또는 일이 참 안 될 경우가 있는데 왜 그런가 역으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기도발이 안 받는가? 첫째, 과거 전생의 업장이 너무 두터워서입니다.

(과거 전생의 문제)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건강의 경우에 있어서도 과거 전생에 지은 업장이 두터워서 건강이 현재에 와서 좋지 못한 사람이 있어요.

과거 전생의 일이었기 때문에 지금 감당하기가 대단히 힘이 듭니다.

어릴 때부터 장애아로 태어난다거나 또 성장해서도 딴 사람들보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늘 조심해야 됩니다.

늘 조심할 수밖에 없어요.

조심하지 않으면 본인이 고통스러운 거지요.

저도 늘 기관지가 약해서 찬물 같은 거 안 마시고 따뜻한 물 마시고, 만일에 조심하지 않으면 금방 기관지가 상하고 감기가 오고 그렇습니다.

제가 쭉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기관지가 약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조심을 하지요.

겨울 같은 때나, 심지어 기온차가 심한 여름 때조차 자면서 마스크를 착용합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참 별스런 사람이다’ 싶을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감기에 걸려서 애를 먹어도 내가 워낙 조심을 하니까 큰 독감 같은 건 잘 안 오고 어쩌다 지나가는 감기 정도는 걸리지요.

그게 바로 제 스스로 늘 조심하고 단속하기 때문에 선천적으로는 좀 약하지만, 가볍게 가볍게 지나가고 크게 아프지는 않더라 그런 얘깁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자기 업장은 자기가 알아요.

대충 나는 복이 어디쯤 되는지…

사는 모양을 보거나, 가족들과 친구들 또는 이웃들이 자기를 대하는 걸 보면 자기가 얼마나 선근종자가 있는지, 과거전생부터 복을 짓고 살았는지 그게 스스로 느껴집니다.

자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스스로 생각했을 때 ‘내가 과거 업장이 좀 두텁구나’ 이런 생각이 들거든 기도를 다부지게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보면 잘 안 해요.

잘 안 할 뿐만 아니라 보면 ‘팔자대로 살지 뭐’ 하면서 숫제 안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팔자대로 살 것 같으면 나는 이미 호흡기가 망가져서 벌써 죽었을 겁니다.

그것처럼 그냥 막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 업장이 두텁다 싶으면 열심히 기도를 해야 돼요.

아까 읽으셨던 ‘능정업장’ 이라고 하는 금강경 제십육분은 ‘업장을 능히 맑히는 대목’인데 제가 한글로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수보리야, 선남자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니며 읽고 외우는데도 만약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면 이 사람은 전생에 지은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생의 사람들이 업신여김으로써 전생의 죄업이 모두 소멸되고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바로 여기까지 아까 보셨습니다.

“내가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열심히 수행을 하는데도 왜 내가 사람관계가 힘들고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드냐?” 그나마 기도하니까 이 정도로 그쳤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벌써 악도(惡道)에 떨어질 것이었다, 그런 얘기를 하고 있어요.

내가 기도를 하는 중에 자꾸 어려운 일이 닥치면 ‘아, 내가 기도를 함으로써 그래도 이나마 다행이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셔야 돼요.

설령 그것이 죽는 순간이라 할지라도 ‘아, 내가 기도를 하니까 내가 이 정도로 그냥 죽는구나.’이렇게 생각을 해야 됩니다.

둘째, 기도의 양보다 현재에 짓는 업이 너무 커서 그럴 때가 있습니다.(현재의 문제) 제가 잘 아는, 타지에 사는 인격이 훌륭한 어느 보살님이 계십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에게 많은 돈을 떼였고 결국 그 사람은 감옥에 가게 됐습니다.

교도소에 면회를 가서 분하고 화가 안 풀려 면회 중에 “너는 정말 나쁜 여자다.

어떻게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의 돈을 가로채서 고통을 줄 수가 있느냐?” 고 했답니다.

보살님이 다른 종교를 믿는 그 사람에게 “너는 거기 가서 기도 할 때 남 돈을 떼어 먹을 그런 기도를 했느냐?” 고 화가 나서 퍼부었단 겁니다.

현재의 큰 악업(남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은 악업이지요)의 무게가 너무 커서 현재의 기도가 감당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우리는 늘 생각해야 합니다.

즉, 현재에 내가 하는 기도의 양보다 현재의 업이 너무 두터워서 어려운 일이 자꾸 닥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셋째, 기도하는 것이 시원찮아서 그렇습니다.

즉 기도 방법이 바르지 못하거나, 기도도량이 바르지 못하거나, 기도를 처삼촌 벌초 하듯이 다부지게 하지 않아서 기도발이 잘 안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게 전생의 문제가 되었든지, 현재의 문제가 되었든지, 또는 기도를 다부지게 안 해서 그렇든지 간에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즉 어떻게 하면 현재 기도발이 잘 받아서 행복된 삶을 살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 현재의 내가 바로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현재 열심히 다부지게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것 밖에 다른 대안이 없어요.

하여튼 아까 세 가지로 인해서 일어난 문제는 다른 방법이 없고, 현재 숨 붙어 있는 순간까지, 다음 생까지라도 열심히 기도정진 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 됩니다.

오늘 설판기도 회향이라 했는데 21일 기도를 함에도 불구하고 일이 잘 안된다면 아까 말씀 드린 세 가지 이유 중의 하나 때문입니다.

일 년 내내 기도를 할 생각을 해야 돼요, 일 년 내내.

그러면 오히려 조금씩 있는 가정사의 어려움 정도는 기도가 있음으로써 자기 마음 닦는 수행이 같이 되는 거니까 오히려 마장인 그것이 약이 돼요.

절대 그것을 “내가 기도하는데도 왜 이렇게 어렵나?” 그런 생각을 절대 하시지 말고, “이게 나한테 주어진 기도의 소재다, 기도 숙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하신다면 살면서 부딪치는 조금의 난관은 절대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제가 기관지가 안 좋고 위가 안 좋을 때도 있기 때문에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먹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건강한 측면이 있어요.

만약 너무 건강하면 ‘막행막식’하기 쉽고, 그런 사람의 건강이 부서질 때는 한꺼번에 부서집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복도 그와 같습니다.

늘 기도하면서 조심하면서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설령 과거 전생에 지은 복이 없다 하더라도 지금 나의 기도의 힘, 나의 조심하는 삶의 정성들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나은, 행복된 삶을 살게 하는 하나의 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설판기도 회향을 하면서 그동안 기도는 열심히 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21일 기도에서 끝내지 말고 꾸준히 일 년 내내 기도를 하시고, 일 년 끝나면 또 일 년 닥치니까 또 기도하고 이렇게 해서 우리 남은 생 동안 열심히 기도하는 삶 되시길 바랍니다.

관세음보살

달라이라마─인욕은 오직 적에게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인욕은 오직 적에게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달라이라마-

인욕은 가장 중요한 수행 중의 하나입니다.

인욕은 오직 적에게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스승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당신에게 해를 끼치는 적을 만난 그 순간 인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샹티데바는 이에 관해 좋은 설명을 했습니다.

” 적은 실질적으로 훌륭한 정신적 지도자이다.

적을 통해 인욕을 수행하고 인욕에 의지하여 가장 커다란 공덕의 힘을 쌓을 수 있다.”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적이 화를 내는 것은 당신이 공덕을 쌓는 수행을 돕기 위해 화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샹티데바는 자기 자신의 내적인 번뇌를

밖으로 드러내어 자신의 논쟁 상대로 삼고 논증을 계속합니다.

그 반대자는 “그것은 그렇지 않다.

적들은 나를 도우려는 의도가 없다.

그래서 적들에게는 내가 잘되기를

바랄 이유가 없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샹티데바는 “돕기 위해서는 도우려는 의도를

반드시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우리는 신심을 갖고, 멸제와 멸제를 실현하는 방편인

도제를 간절하게 바란다.

그러나 그들은 도우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우리를 돕기 때문에 그들을 존경해야 한다.” 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스스로의 번뇌를 드러내다가 이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다가는

또다시 다른 반대를 합니다.

“적들은 멸제와 도제와 달리 해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멸제와 도제에는 남을 도우려는

의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을 해치려는 의도 또한 없다.

나는 적들을 존경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샹티데바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들이 해치려는 의도를 지녔기 때문에 그들을 가해자 또는 적이라고 부른다.

만일 그들이 해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가해자나 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당신의 병을 고쳐 주는

의사와 같은 사람이라면 당신은 마음을 상하지 않고 인욕을

수행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적들은 인욕 수행에 반드시 있어야 하고 해치려는 의도가 필요한 사람에게 적이 되는

적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적에게 분노하는 것은 좋

은 일이 아니다.

화를 내기보다는 존경하라.” 또한 누군가 우리를 때리려고 할 때 우리는 즉시 그 사람에게 화를 냅니다.

그러나 샹티데바는 다른 견해를 제시합니다.

“당신에게 실제로 고통을 주는 것을 따져 본다면, 실제로 고통을 주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무기, 지팡이, 그 사람의 주먹 등이다.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주요 원인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정신에 있는 번뇌이다.

그러므로 화를 내려면 그 무기 또는 해를 입히는 동기에 대해

화를 내야 하고 그 사람 자체에 대해 화를 내서는 안된다.” 이것은 진실입니다.

무기가

실질적인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때때로 고통을 주는 대상에 부딪쳤을 때 어리석게도 무기에 화를 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화를 냅니다.

화를 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은

당신을 때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분노 때문에 업을 짓습니다.

문제의 근원은 분노입니다.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있는 번뇌입니다.

또한 샹티데바는 누군가 화를 내고 있을 때 화를 내는 것이 그 사람의 본성인가 아니면 우발적으로 나타난 일시적인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본성이라면 불이 우리의 손을 태우더라도 불에

화를 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태우는 것이 불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에게 화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발적으로 화를 냈거나 또는 화를 내는 것이 본성이 아니라면, 구름이 태양을 가릴 때 태양에 화를 내지 않고 구름이 문제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번뇌에 화를 내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몸의 본질이 고통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무기의 본질이 고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몸과 무기가 서로 부딪칠 때

고통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못의 절반은 스스로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낸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것입니다.

샹티데바의 책을 읽어본다면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책들은 자아 수행과 자아 인식에

대단히 유용합니다.

저는 샹티데바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합니다.

많은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