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산스님─관음기도는 이렇게

관음기도는 이렇게 이법산 스님(서울 정각원장) 관세음 보살은 세상의 모든 중생의 소리를 듣고 관찰하여 중생들의 괴로움을 소멸케 하고 즐거움을 주는 보살이라는 뜻이다.

관자재 보살이라고도 하는데, 중생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비가 충만하여 자재롭게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다.

범어로는 아발로키테슈와라 보디사트와인데 구마라집 삼장은 관세음이라 하고, 현장 법사는 관자재 보살이라고 번역하였으나 중생의 소리를 듣고 구원하여 열반의 즐거운 반야 언덕에 이르게 하는 것은 같은 의미이다.

관세음 보살은 아미타불의 사무량심(四無量心)인 자비희사(慈悲喜捨) 가운데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상징하는 보살로서 아미타불의 왼쪽에 계시는 협시 보살이다.

관세음 보살은 『천수경』(千手經)에도 있다시피 천수 천안(千手千眼)으로 중생을 두루 살피고 구원한다는 뜻이다.

천이라는 숫자는 제한된 천 개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 어느 곳에나 꽉 차고 원만하여 미치지 못하는 바가 없고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상징적 의미에서 ‘천 개의 손, 천 개의 눈’을 갖추었다는 표현이다.

관세음 보살은 대승 불교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한국·중국·일본의 불자들이 가장 많이 마음에 새기고 입으로 명호를 부르는 보살이다.

마치 어머니와 같이 느껴지는 모습으로 중생의 곁에 다가와 함께 하므로 크게 성스러운 어머니(大聖慈母)라고도 한다.

관세음 보살을 마음에 염하고 입으로 부르면 마치 엄마 품에 안기듯 편안하고 푸근해진다.

어떤 기도보다도 관음 기도가 가장 탈이 없고 편안하다.

한국에서의 관음 기도처로는 남해 보리암을 살아 있는 관음 도량이라 하여 제일로 치고, 다음이 동해의 양양 낙산사 홍련암과 서해의 강화 보문사를 든다.

관음 기도로 가장 영험이 있다는 도량들이다.

관음 기도는 어느 때나 어디서나 쉽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기도이다.

절에 가서 기도를 할 때는 스님들과 같이 예불을 모시고‘나무 대자 대비 구고 구난 관세음 보살’ 하고는 ‘관세음 보살……’을 칭념하고, 오랫동안 서 있어서 다리가 아프거나, 겨울에 몹시 추울 때도 절을 하면서 칭념해도 된다.

집에서 할 때는 향을 하나 사루고, 향이 없다면 편안히 바로 앉아 ‘관세음 보살’을 칭념하면 된다.

시간은 자신이 정해 놓고 할 수도 있고, 숫자를 세고 싶을 때는 염주를 하나씩 돌리면서 ‘관세음 보살’을 부르면 된다.

속도를 빨리 할 수도 늦게 할 수도 있다.

피곤할 때는 누워서 해도 되고, 걸어다니거나 일을 하면서도 입으로는 ‘관세음보살’을 칭념하면 된다.

이렇듯이 관음기도는 행주 좌와 어묵 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 평상시에 언제나 할 수 있는 기도이므로 가장 많이 하는 기도이다.

일정하게 ‘관세음 보살’ 기도를 하다가 마칠 때는 ‘관세음 보살 멸업장 진언(滅業障眞言) 옴 아로늑게 사바하’를 3번 내지 7번, 또 더 많이 해도 좋다.

다음은 관음경(觀音經)에 있는 게송(偈頌)인 ‘구족신통력(具足神通力) 광수지방편(廣修智方便) 시방제국토(十方諸國土) 무찰불현신(無刹不現身) 고아일심귀명정례(故我一心歸命頂禮)’라고 하여 관세음 보살의 위신력을 칭송한다.

이 뜻은 ‘신통력 구족하신 관세음 보살, 지혜와 갖은 방편 널리 닦으사, 시방 세계의 모든 국토에 골고루 두루두루 나타나시네.

그러므로 나는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 받쳐 예배합니다.

’라는 뜻이다.

기도는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자기의 업장을 소멸하고 밝고 맑은 자성 청정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내 스스로 나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 곧 남에게도 밝고 맑은 마음으로 대할 수 있고, 내 마음이 기쁘면 남의 마음도 즐겁게 되는 것이니 기도의 공덕은 곧 남에게 모든 사람에게 회향하여 그 기쁨을 나누고 함께 더불어 즐겨 하는 것이다.

다음은 축원 게송을 외운다.

즉,원멸사생육도(願滅四生六道) 법계유정(法界有情) 다겁생래제업장(多劫生來諸業障) 아금참회계수례(我今懺悔稽首禮) 원제죄장실소제(願諸罪障悉消除) 세세상행보살도(世世常行菩薩道)’를 세 번 외우고 세 번 절한다.

이것을 번역하면 “4생(胎·卵·濕·化)과 6도(地獄·餓鬼·畜生·人道·放生·修羅)와 온 세상 법계에 사는 유정들의 여러 생에 지어온 모든 업장을 소멸하기 원하여, 내가 지금 참회하고 머리 숙여 예배하오니 원하옵건대 모든 죄장(罪障) 모두 소멸되옵고, 세세 생생에 새롭게 태어날 적마다 항상 보살도를 실행하여지이다.”

라는 뜻은, 내가 하는 기도는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고 사생 육도의 모든 법계 중생들의 업장이 소멸하여 모든 이의 마음이 맑고 밝고 깨끗하여 대립과 투쟁 시기와 질투 등 모든 차별과 갈등이 없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함께 더불어 즐겁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참회는 곧 중생의 참회요, 나의 잘못은 곧 중생의 잘못이 되므로 내가 기도하면서 대승 보살도의 정신으로 우리 모두가 때때로 날마다 거듭거듭 기도하여 중생의 고뇌가 다할 때까지 기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으로 무심히 기도하면 병든 사람은 저절로 마음과 몸이 쾌유되어 가며 주변 사람의 걱정 근심을 덜어 주게 되고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이 맑고 밝고 깨끗한 지혜가 더하여 사리를 분명히 판단하고 모든 일을 원만히 처리하여 일마다 만족한 결과를 가져 오게 될 것이다.

관음 기도는 배고픈 아기가 엄마를 찾듯 간절하게 염원하면 보살의 가피력으로 인해 자신이 모르는 어느 사이에 자연히 모든 일이 원만하게 성취되는 참으로 신묘하고 편안한 기도이다.

-출처:월간 정각도량-

선묵스님─향 사루고 부처님께 기도합시다

향 사루고 부처님께 기도합시다

-선묵스님-

아침, 저녁 부처님께 예배드리며 삼보께 귀의하고 사루는 한줄기의 향 이 모든 우주법계를 덮어 청정한 정토가 되게 하옵소서.

어떤 종교이든 기도가 없는 종교가 없으며, 기도는 종교의 생명이며 기도가 있는 곳에 종교가 존재하게 됩니다.

불교에서 기도를 할 때는 반드시 향(香)을 사룹니다.

불교의 수행법은 마음을 맑고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향은 스스로를 태워 그 향긋한 향기로움으로 주변의 잡내음을 없애고 맑고 깨끗하여 서로 한 마음으로 화합하여 더불어 평화로워지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사찰에서 아침, 저녁 예불을 드릴 때, 다섯가지 의미의 향을 피워 올립니다.

계향(戒香), 정향(定香), 혜향(慧香), 해탈향(解脫香),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 즉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가져, 지혜롭게 수행하며 망상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의 지혜광명으로 중생을 모두 해탈의 길로 인도하겠다는 큰 원의 의지를 담은 정성스러운 향을 사루어 온 우주 법계 부처님께 예배드리며 맹세하는 것입니다.

향을 사루고 기도하면 그 큰 원이 향기로운 구름이 되어 온 허공에 채워지고 모든 생명에 함께 하여 세상이 맑고 깨끗하며, 생명이 활기가 넘치고 기쁨으로 가득하여 천당, 극락이 따로 없고, 과거 미래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유마경)에 “상방에 중향(衆香) 세계가 있으니 중생이 이 향기를 듣고 함께 가만히 계율을 지켜 들면 자연히 악(惡)을 멈추고 선(善)이 생겨난다.”고 하였습니다.

향을 사루는 한 마음의 정성이 위로는 부처님과 아래로는 모든 중생에 하나 되어 중생의 악이 없어지게 되면 자연히 선행이 살아나서 세상의 모든 생명이 함께 즐거워 한다는 것입니다.

발원은 허공에 충만…세상 맑혀 생명은 활기가 넘치고 기쁨 가득 향을 공양하면 8가지 공덕과 이익이 있다고 합니다.

과거의 원한을 해제하고, 모든 악업이 없어지며, 공덕을 속히 얻을 수 있고, 풍요로운 결과를 성취하며, 병고가 점차 쾌차하고, 천룡과 지지가 옹호하며, 이르는 곳마다 상서로움이 있고, 속히 깨달음의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향은 자신을 태움으로써 그윽한 향기를 발산합니다.

여러 모양과 빛깔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함께 몸을 태울 때 연기는 하나로 융합되어 모든 사람의 이기심과 아집을 뛰어 넘어 화합을 보여줍니다.

향은 특별히 자신의 모습을 고집하지 않고 연기는 곧 사라져버리나, 주변의 모든 것 속에 분별없이 스며들어 그 향기는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향기는 주거나 받는다는 분별심이 없이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고, 모든 것에 스며들어 그 자체가 됩니다.

향은 어둡고 구석진 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보고 훈훈한 향기를 심어주어 그것 자체의 향기가 됩니다.

이처럼 향은 화합과 자비의 실천을 상징합니다.

여기에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는 삶이 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모습이며, 자신을 태워 주위에 향기을 주는 향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향이 몸을 태워 도움을 주는 일을 본받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힘든 것만도 아닙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최소한 자신의 맡은 부분은 자신이 하는 것, 그럼으로써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편할 때 그만큼 수고한 사람이 있음을 생각하게 되는 마음, 그리고 그가 누구인가를 찾아 감사를 표하는 마음, 바로 이것이 생활 속에서 향을 피우는 자신이 향이 되어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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