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인세계+(堪忍世界)

중생은 온갖 번뇌를 인내해야 하고 또 성자들은 여기서 피곤함을 참고 교화해야 하는 세계. 감인 은 사바를 번역한 말.

정도(正道)와 중도(中道)

2010년 새해가 된 지 한 달이 지났건만 지난해와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고 저 멀리 ‘아이티’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와 대학 졸업을 앞둔 젊은이들의 한숨소리만 들릴 뿐이다. 정치권의 싸움은 도를 더해가고, 정부는 ‘너희끼리 싸워봐라 나는 내 길을 간다’ 는 식이다. 정책의 결정과 추진 과정에서 그릇된 방법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는 데도 이를 부인하든지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는 정부 집권 2년 차를 맞아 나름대로의 개혁에 속도를 낸 한해였지만 정책의 결정과 추진과정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 같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교수신문’에서 한해를 정리하는 ‘올해의 사자성어’에 2009년에는 ‘샛길과 굽은 길’이라는 뜻의 ‘방기곡경(旁岐曲逕)’이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 말의 뜻은 ‘샛길과 굽은 길로서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큰 길이 아니라는 것으로, 일을 처리함에 있어 바른 길을 따라 정당하고 순리를 좇아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억지로 무리하게 처리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조선 중기의 대유학자 ‘율곡(栗谷) 이 이(李 珥)’가 「동호문답」에서 군자와 소인을 가려내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소인배는 ‘제왕의 귀를 막아 제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방기곡경(旁岐曲逕)의 행태를 자행한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은 지난해부터 우리 정치의 중심에 서 있는 미디어 관련법 처리ㆍ4대강 사업ㆍ 세종시법 수정 등을 비롯한 여러 정치적 갈등을 안고 있는 문제를 국민의 동의와 같은 정당한 방법을 거치지 않고 독단으로 처리해 온 일련의 과정을 비유하고, 새해에는 한국의 정치가 떳떳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복귀하길 바라는 이른바 ‘정도(正道)’ 의 정치를 염원하는 바가 들어있는 것 같다.

사자성어의 선정과정에서 거론된 또 하나의 글귀가 ‘중강부중(重剛不中)’이었는데, 솔직히 나더러 가리라면 ‘이중 삼중으로 겹쳐진 강(剛)이 서로 옳음을 주장하지만 중도를 얻지 못한다’는 뜻이 담긴 이 성어를 선택하였을 것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입만 열면 ‘합의ㆍ 타협ㆍ최선이 아니면 차선ㆍ 많은 사람들의 이익ㆍ 국민(시민)을 위한 정치’를 부르짖지만 정작 양보와 타협, 대화를 통한 발전적 결론인 ‘중도(中道)’의 정치를 본 기억은 별로 없었다. 사사건건이 극한적 대립이며, 반대를 위한 반대이며, 다른 정당에서 내놓은 정책에 찬성하는 것은 자기 소속 정당에 대한 해당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타협을 통한 ‘중도’가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새해의 중심화두는 단연코 ‘강구연월(康衢煙月)’이라 했겠다. 좀더 긴 안목으로 진정 국가와 국민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눈앞의 물질적 이익보다 정신적 풍요를 앞세우는 것은 어떨지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강구연월’은 요원할 것이다.

‘강구(큰 길)에 흐르는 안온한 풍경’은 태평한 시대의 평화스런 모습을 희구하는 것인데, 우선되어야 할 것이 ‘방기(旁岐; 샛길 또는 곁길)’나 ‘곡경(曲逕; 굽은 길)’이 아닌 ‘강구(康衢; 대로, 큰길)’에서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밀실에서 몇 사람이 적당히 거래를 통해 도출된 정책이나 추진 절차가 아닌 떳떳하고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 입안되고, 사회적 국민적 합의를 거쳐 추진되어야 한다. 어쩌면 막대한 국력을 쏟아 붓는 국가적 명운이 걸린 사업을 집행함에 있어서 법적 제도적 뒷받침도 해 놓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을 먼저 통과시키는 웃지 못할 해프닝은 말아야 한다. 그리고는 정부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통을 추구하기보다 오히려 국민이나 야당이 자기의 참뜻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야속해 해서도 안 된다.

옛 성인의 말씀대로 정치(政治)는 정치(正治)라야 한다. 정책의 입안과정에서부터 깊이 있고 다양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기 위한 투자도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개발된 정책을 그 선후완급(先後緩急)에 따라 실시할 때도 신뢰를 바탕으로 소통이 이루어진 연후에 절차적 정당성이 꼭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정도(正道)와 중도(中道)를 벗어나지 않으면 ‘강구연월’의 시대는 꼭 도래할 것이다.

김형춘 교수님 글. 월간 반야 2010년 2월 111호

손님이 오자 저녁연기도 잦아들고

客來暝煙集(객래명연집) 손님이 오자 저녁연기도 잦아들고

野寺鐘聲歇(야사종성헐) 들판의 절에서는 종소리도 그쳤네.

倂榻淸凉夜(병탑청량야) 맑고 시원한 밤 나란히 걸상에 앉아

同看松上月(동간송상월) 함께 소나무 위의 달을 바라본다네.

해가 저문 저녁 무렵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인적이 별로 없는 고즈넉한 우거(寓居)에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이라 반갑기 짝이 없다. 초라한 상을 차려 저녁을 함께 먹었는지 모른다. 아래 절간에서 저녁예불을 올리며 치던 종소리도 그치고 어둠이 더 깊어지자 어느 사이 달이 떠 소나무 위에 걸렸다.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걸상에 나란히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얼굴을 들어 소나무 가지 위의 달을 쳐다보다 말이 멈춰졌다. 이것을 유마(維摩)의 불이선(佛二禪)의 경지라 하면 어떨까?

이 시는 추사(秋思)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오언절구라는 시이다. 분위기로 봐서는 외롭게 지내던 시절에 지은 것 같기도 하다 찾아온 사람이 혹 초의선사가 아니었을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해설자의 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