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의 항변(抗辯)

다양성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나라, 인도.

넓은 국토, 10억이 넘는 인구, 다양한 인종, 복잡한 언어 분포, 이질적인 종교, 극심한 빈부 격차, 교육의 차이, 수천 년을 내려온 사회신분제도 등 그야말로 어느 것을 보고 인도를 말할 수 있을까. 그런 가운데서도 인도인들은 다양성과 이질감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조화를 이루어 가면서 전통을 계승하여 왔고, 그 점에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여기는 인도야!” 라고 큰소리쳐도 서투른 부처님 제자는 ‘아니야! 인도는 변해야 돼! 0.7% 부처님나라로는 안 돼!’라고 항변하고 싶다. 이처럼 거대한 나라의 많은 문제점들이 하루아침에 해소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도 안다. 이러한 현실 여건 속에서도 느리고 힘든 과정이긴 하나 인도가 꾸준히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도 눈으로 확인하였다. 국민 대다수가 아직도 오랜 전통사회의 생활양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바 특히 종교와 카스트제도는 인도인의 생활을 지배하는 가장 큰 요소로서 이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종교 없는 생활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종교가 생활에 밀착되어 있는 것 같다. ‘종교를 위한 삶인지, 삶을 위한 종교인지?’

인도 문화의 원형은 상당부분 아리안족이 인도대륙을 침공하여 정착하면서 이루어진 것 이다. 기원전 2천년에서 1천5백년 사이 아리안은 인더스 유역에 침입하여 드라비다인을 정복하였고, 점차 동쪽으로 갠지스 유역을 따라 기원전 8세기 경에는 벵갈 지역까지 이동하여 정복자로서 ‘카스트’의 상층부를 형성하였다고 한다. 이들 아리안은 지배계층으로서 피지배 원주민과 차등을 강조하면서 피부색ㆍ직업 등에 따라 계층을 나누었고, 또 카스트 안에서도 다시 수많은 ‘sub-caste’가 만들어 졌다고 한다. 이들 ‘카스트(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와 불가촉 천민)’는 ‘마누(Manu)법전’에 명기된 이래 전통적 관습으로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도의 근대화를 제약하는 악습이 되고 만 것이다.

수천 년 간 인도인의 생활을 규율해온 카스트제도는 이미 법적으로 폐지되었고 근대적인 교육의 영향으로 점차 붕괴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많은 인도인의 생활저변에 남아 있다. 문제는 이 악습의 뒤편에 종교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3천여 년 전 인도에 들어와 힌두교와 카스트제도를 만들고, 그 토대 위에서 지배계급으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 아리안들의 비인간적 횡포라고나 할까.

힌두교인들은 신들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고유의 신성을 지닌 채 여러 형상으로 변화되어 나타난다고 믿고 있단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 역시 현세의 육신에 머물지 않고 끝없는 윤회를 반복하면서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들에겐 윤회로부터의 해탈이 최고의 축복이란다. 이러한 믿음은 비인간적인 카스트제도에 대해서도 무비판적인 수용을 초래한 것이다. 이들은 비록 현재의 삶이 누추하고 천한 카스트에 속할지라도 전생의 업보라고 여기고 응전을 포기하는 것이다. 불가촉천민은 어쩌면 다시 천민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의식이 이러니 신분상승이나 평등은 아예 기대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잘못된 제도와 사회적 모순을 뜯어고치지는 못할지언정 종교가 그것을 조장하거나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되겠다. 인도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카스트제도의 완전타파와 긍정적인 내세관은 존중하되 현세관을 재조명하는 방향으로의 종교개혁이 필요하겠다.

최근엔 이따금씩 카스트제도에 반대하는 데모도 있다고 하니 하루빨리 이 제도의 늪에서 헤어나야 할 것이다. 그 한 방편으로 룸비니의 ‘대성석가사’나 쉬라바스티의 ‘천축선원’처럼 한국 불교계에서 더 적극적인 인도 포교에 나서서 0.7%에 불과한 불자의 수를 빨리 늘리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인도와 인도인을 위함도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들 부처님 제자들은 한없이 축복 받은 사람들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두 축인’지혜와 자비’는 인간 평등의 바탕 위에 존재하니까.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보현보살’ (끝)

김형춘 香岩 (반야거사회 회장·창원전문대 교수) 글. 월간반야 2008년 4월 제89호

인간을 위한 생태주의

시화호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새만금간척사업과 경인운하는 어떻게 결론지어질 것인가. 북한산과 천성산의 운명은 또 어떻게 될 것인가. 통도사 앞의 초산 유원지 개발을 비롯하여 멀고 가까운 곳에서 개발과 보존과 관리의 문제로 사람과 대지가 온통 몸살을 앓고 있다.

과학기술의 비약적 진보와 인류 사상 유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낳은 20세기. 그러나 이 세기는 전쟁과 혁명, 대량 살상과 인간 소외는 물론 환경 파괴로 얼룩지면서 21세기로 그 역할을 넘겼지만, 성장과 개발중심의 산업사회가 남긴 폐해의 중심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상은 역시 생태주의(Ecology)라고 할 것이다. 환경오염ㆍ기상이변ㆍ굶주림ㆍ자원고갈ㆍ빈부격차ㆍ인종차별ㆍ노사갈등ㆍ전체주의ㆍ전쟁ㆍ여성차별ㆍ문화적 지배와 종속 등.

1979년 독일 출신의 유태계 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책임의 원칙』이라는 저서를 통해 환경윤리학 혹은 생태철학이라 불리는 새로운 사상의 장을 열었다. 이제껏 어떠한 대안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생태계의 파괴, 생태학적 위기의 문제점을 ‘신은 우리를 도울 수 없다. 우리가 신을 도와야 한다. 그것이 우리 자신을 궁극적으로 돕는 길이다’라고 간단히 서술하였다.

지금까지의 독선적인 인간중심주의에 경종을 울리면서 이 시대 중심 화두로 생태주의가 떠오른 것이다. 인간의 이익이 자연에 우선하니 경제적 가치와 공리적 가치를 따져 무관한 부분만 보존하자는 보존파와, 자연자원이 고갈되지 않도록 관리만 하자는 관리파가 주류를 이룬 시대 상황에서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생태중심주의를 주창한 것이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면 자연은 결코 단순한 수단일 수 없고, 그 자체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기술문명과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실제로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있는 힘과 수단을 제공하였지만, 지나친 성공은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파국의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자연은 인간 없이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녕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인간 자신이지 자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하여 자연을 지배하려 하였지만 자연에 대한 지나친 지배는 결국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 마저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 윤리가 오직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한다고 강조할 뿐,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의 의지와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 한 자연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은 자유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자유가 기술을 통해 실현가능하고 기술과 개발에 의한 환경 파괴는 불가피하다는 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결국 자연은 인간에게 보복을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자연에 속해 있는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려면 먼저 자연과 유기적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된다.

19세기말 오토 슈펭글러는 서구의 몰락을 예견하면서 ‘지구의 황혼’을 느꼈기에 환경파괴에 따른 생태위기가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 상황이라고 했다. 인도의 성자 간디 또한 일찌기 서구식 산업주의가 인류 모두에게 최악의 저주가 될 것이라고 경고 하였는데, 벌써 그 경고는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이제 우리 인간의 선택은 자명해졌다. 인간중심주의가 현 위기의 근원이 되어 종(種)으로서의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하였다면, 생물중심주의인 ‘근본생태주의’로 돌아가든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 원인이 권력이나 자본 등이었다면 인간내부에 존재하는 환경파괴의 주범을 없애는 ‘사회생태주의’로 나아가든지 선택을 통해 성장제일주의적 산업문명을 넘어서는 탈 근대적 문명전환운동’을 지향해야만 할 것이다.

김형춘 글 / 월간반야 2003년 8월 (제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