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게강의 (2) 법성게를 짓게된 동기

화엄일승법계도(약칭 법계도)는 맨 가운데의 법(法)자로부터 왼쪽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각을 지어 돌아가게 되어 있다. 4면으로 4각을 이루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모두 54각이 있다. 이처럼 화엄일승법계도의 4면 4각은 보살 수행의 중요한 덕목인 4섭법(四攝法)과 4무량심(四無量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4섭법(四攝法)이란 보살이 중생을 교화할 때 쓰는 네 가지 방법을 말한다. 즉, 보시를 함으로써 사람을 포섭하는 보시섭(布施㒤)과, 남에게 도움을 주어 이익되는 행동을 하는 이행섭(利行攝)과, 부드럽고 상냥한 말로써 대하는 애어섭(愛語攝), 그리고 상대방과 같은 처지가 되어 함께 일하면서 끌어들이는 동사섭(同事攝)이 있다.

4무량심(四無量心)이란 네 가지의 한량없는 큰 마음이라는 뜻으로, 자(慈), 비(悲), 희(喜), 사(捨)를 의미한다. 자비의 자(慈)는 나(吾)로 인하여 남이 즐거워지도록 하는 것으로 곧 기쁨을 주는 것이고, 비(悲)는 남의 슬픔을 덜어 주는 것으로서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풀이된다. 희(喜)는 시기와 질투를 하지 않고 남이 잘되는 것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것이요, 사(捨)는 쓸데없는 고집이나 집착을 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인 평등한 마음을 쓰는 것이다.

이처럼 4섭법과 4무량심은 화엄경에서 설한 보살도(菩薩道) 실천의 근본정신으로 6바라밀 혹은 10바라밀과 함께 보살행원의 핵심내용을 이루는 것이다.

법계도는 일명 해인도(海印圖)라고도 하는데, 화엄경을 해인삼매(海印三昧) 속에서 설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글자 사이에 그어진 선(線)은 영어의 대쉬(Dash)와 같은 것으로 원래는 붉은 획(劃)이었던 것이데, 글자를 빼고 이것만을 연결하여 해인도라고도 하며, 해인삼매 혹은 화엄사상을 상징하는 마크(Mark)로 쓰여 마치 도장처럼 찍어 쓰는 경우도 있다. 본래 붙여진 이름도 화엄일승법계도장이라 하여 도장이란 말을 붙여 썼는데, 법계도서인(法界圖書印) 이라 고도 불렀다. 그 외에 법성도라고 하는 이름도 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법계도는, 의상 스님이 지은 반시(般時)라고 하는 7언 30송의 시를 하얀 백지 위에 검은 글자를 배열하고 글자 사이에 붉은획을 그어 글자와 글자가 연결되게 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한 것에도 의미가 있는데, 이는 바로 화엄경에서 말하는 3종(種)의 세간(世間)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백지는 기세간(器世間), 검은 글자는 중생세간(衆生世間), 붉은 획은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을 나타낸다.

여기의 기세간이란 중생들이 의지해 사는 산하대지의 환경을 말하며, 지정각세간이란 부처님의 깨달은 세계를 가리키는 말인데, 세간의 세(世)는 시간을 뜻하고, 간(間)이란 공간을 뜻하는 말이다. 즉 현상계란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상황 속에서 전개되는 일체 현상을 말하는 것이므로 시간과 공간의 카테고리(Cartegory)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불교의 교리는 이 두 가지를 주축으로 설해지는데, 시간적인 관찰에서 설해지는 것을 연기론(緣起론)이라 하고, 공간적인 관찰에서 설해지는 것을 실상론(實相論)이라고 한다.

요산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2월 제75호

법성게강의 (1) 의상스님이 지은 법성게

불교의 심오한 철학과 우주 만유의 현상을 가장 고차원적인 이론으로 설하고 있는 경전은 『대방광불화엄경』이다. 대승경전의 최고봉으로 알려진 이 경전은 우선 경문의 서술이 호한무비(浩瀚無比)하다. 즉 부처님의 정각의 경계를 장엄하게 묘사하여 서사적으로 표현한 전체의 경문이 드라마를 형성하고 있으면서 수많은 보살들을 등장시켜 갖가지 법문을 설한다.

또한 『잡화경(雜華經)』이라고 불리듯이 온갖 내용이 매우 복합적으로 설해져 있으며, 중생들의 근기와 상관없이, 그리고 수준의 높고 낮음에 맞추지 않고 설했다고 하여 여증이설(如證而說 : 깨달은 그대로 설함)이라고 말하여 왔다. 이 화엄경을 근본으로 한 체계화된 교법상의 이론을 화엄사상이라고 하는데, 교학적인 차원에서 볼 때 화엄사상의 비중은 대단히 높았다. 화엄사상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불교의 역사적인 흐름 속에 불교 일반의 보편적인 사상으로 널리 퍼졌다.

수많은 경론 가운데 특히 화엄사상이 미친 영향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의 불교이다. 이처럼 한국불교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 화엄사상인 것이다. 화엄사상은 일찍이 신라시대의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에 의하여 선양됨으로써 불교의 중심사상으로 발달되어 현대불교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사실 화엄불교는 모든 종파의 사상을 종합적으로 회통시키는 통불교적인 성격을 그대로 가짐으로써 모든 사상을 융합하고 있다. 이미 원교라는 교상판석(敎相判釋)이 내려졌듯이, 모든 지상의 강물을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제교(諸敎)의 사상을 원융하게 수용하고 있는 것이 화엄사상인 것이다. 그러한 화엄사상 중에서 그 핵심요체를 가장 잘 함축하여 나타내 놓은 것은 『법성게(法性偈)』이다. 법성게는 의상(義湘)스님이 중국에 들어가 화엄종의 2조(祖)인 지엄(智儼)스님 문하에서 지은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신라의 두 천재적인 고승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은 당나라로 유학을 결심하고 함께 길을 떠났다. 도중에 노숙을 하다가 한 밤중에 갈증이 난 원효스님은 해골이 담긴 썩은 물을 모르고 마셨다. 이튿날 아침 그 사실을 안 뒤 속이 메스꺼워 구토증을 느끼던 순간, 원효스님은 ‘마음이 생기니 갖가지 법이 생기고 (心生卽種種法生), 마음이 없어지니 갖가지 법이 없어진다 (心滅卽種種法滅)’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도리를 깨닫고, 달리 법을 구할 것이 없다고 여겨 당나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오고 만다. 그리하여 의상스님 혼자 당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이 때가 서기 661년, 스님의 나이 37세의 일이다.

의상스님은 당나라에 머물며 지엄스님의 문하에서 8년간에 걸쳐 화엄학을 공부하였다. 10년의 당나라 체류기간 중 8년 세월을 화엄공부에 바친 것이다. 의상스님은 47세가 되던 671년 귀국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법성게를 지은 것은 668년인 445세 때라고 한다.

법성게의 원래 이름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이다. 즉 7언 송구(頌句) 30송인 도합 210자의 글자를 도인(圖印)으로 배치하였던 것이다.

요산 지안 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1월 제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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