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역경사업 해야지” 6.25한국전쟁 후 운허 스님은 경기도 양주의 봉선사 주지 발령을 받아 봉선사로 돌아왔다. 봉선사를 떠난 지 10년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봉선사는 옛날의 그 봉선사가 아니었다. 6.25한국전쟁 통에 대웅전은 불타버렸고 절 모습은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교사들 먹이려고 양식 탁발 그 뿐만이 아니었다. 운허 스님이 심혈을 기울여 설립했던 광동중학교 역시 전쟁중에 폭격을 맞아 학교건물은 폐허로… “다시 태어나도 역경사업 해야지” 계속 읽기
[월:] 2015년 02월
틈만 나면 역경…돈만 보면 출판
틈만 나면 역경…돈만 보면 출판 운허 스님이 통도사에 머물며 후학들에게 교학을 가르치고 있을 무렵, 이 나라 불교계에서는 ‘왜색불교를 몰아내자’는 ‘불교정화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불교정화운동은 청담, 효봉, 동산, 금오 등 기라성 같은 수좌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 ‘청정비구가 이끄는 불교’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 때 불교정화운동의 중심이었던 서울 안국동 선학원으로부터 운허 스님에게 연락이… 틈만 나면 역경…돈만 보면 출판 계속 읽기
한글경전 시대를 열어준 스님
한글경전 시대를 열어준 스님 부처님 가르침이 이 땅에 전해진지 어언 1600여년이 지났건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해 놓은 ‘팔만사첨 법문’은 ‘팔만대장경’이라는 한자(漢字)의 감옥에 갇혀 지내왔다. 우리말 우리글이 있으되 부처님의 경전이 한자의 감옥 속에 갇혀 있으니, 자연 불경은 물론 민초들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탓에 불교는 ‘배우기 어렵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한문투성이’로만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大雄殿’… 한글경전 시대를 열어준 스님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