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암스님─사판 노장 스님의 깨달음

사판 노장 스님의 깨달음

-혜암스님-

오래전 지리산 천은사 삼일암에서 내가 겪은 일이다.

그 선원은 전국에서 공부 잘 하는 선객들이 구름처럼 모여와서 성황을 이루었다.

그런데 그 당시 천은사 큰절에 나이 70여세나 되는 호은이라는 노장님 한 분이 계셨는데 그는 중노릇 수십 년에 강당이나 염불당, 또 기도처만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런 방면에는 아는 것이 많았으나 한 번도 참선은 해 본 일이 없었다.

이 노장이 결제 전날 삼일암에 와서 다른 스님들과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입승은 “어림도 없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이 사실을 안 성월 조실 스님은 허락하며 “이왕 아주 올라와서 공부하시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는 “돈 빌려 준 문서와 쌀 빌려 준 문서를 지켜야 하고…” 그 당시 나뿐 아니라 50여 대중의 불평도 조실 스님 명령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그 후 노장 스님은 공부하러 절에 오르내리는데 그 시간조차 일정치 않았다.

어떤 날은 한 낮이 되어 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추운 새벽에 수염에다 고드름을 주렁주렁 매달고 오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가 모여 앉은 공부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는 깜깜 절벽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원숭이가 참선하는 흉내만 내고도 천상락을 받았다는데 저런 사람도 무슨 인연이 있을까?”라며 비웃었다.

마침 반 살림이 끝난 어느 날 나는 혜월 스님 회상에서 들은 법문을 조실 스님에게 여쭈었다.

“어떤 젊은 수좌가 혜월 스님께 와서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騎牛覓牛]는데 그것은 어떤 도리입니까?’ 하자 혜월 스님은 그에게 ‘왜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느냐?’ 하셨습니다.

그러니 혜월 스님이 그 젊은 수좌에게 대답하신 말씀이 잘 한 것입니까?” 그러나 성월 조실 스님은 그 젊은 수좌가 혜월 스님께 물은 것과 똑같이 그대가 나에게 물으라고 했다.

나는 가사 장삼을 수하고 큰 절을 세 번 드린 뒤 똑같이 여쭈었다.

조실 스님은 “그대가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니, 그 찾는 소는 그만두고 탄 소나 이리 데리고 오너라.” 나는 말이 막혀 어리둥절하고 앉아 있었고, 여러 공부하던 학인들도 앉아만 있었는데, 늦게 공부를 시작한 호은 스님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둥실둥실 추며 하는 말이 “대중 스님네는 다 몰라도 나는 알겠습니다.”하고 큰소리를 쳤다.

이에 대중들은 모두 비웃었지만 조실 스님은 방으로 불러 불조의 공안에 대해 차근차근 물어보시니 하나도 막힘이 없이 다 대답하니 조실 스님은 그 노장님이 깨달았다고 인가를 하셨다.

참선에는 선후배가 없는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도 조사의 말 한 마디를 듣고 깨달아, 일생 늙도록 공부한 사람의 스승이 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

또 공부하는 사람으로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은 상법(相法)이니, 이 상법이란 내가 제일이다 하고 뽐내는 아만이다.

경전에 “모든 상을 여의면 부처님과 같다”고 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참선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혜암 스님은? 혜암(惠庵, 1886~1985) 스님은 황해도 백천군 해암리가 고향으로 12세에 출가했다.

성월 스님 회상에서 용맹정진 끝에 34세 때 대오했다.

그후 만공, 혜월, 용성, 한암선사 등 당대 선의 거승들로부터 지도받으며 보림했다.

1956년 덕숭산 수덕사 조실로 추대되어 주석하며 눈 푸른 납자들을 지도했고, 1985년 5월 19일 입적했다.

출처:법보신문

혜암스님─부처가 아닌것이 없듯이 화두 아닌것이 없습니다

부처가 아닌것이 없듯이 화두 아닌것이 없습니다 혜암 스님의 법어”팔만대장경을 둘둘 말아서 하나로 줄여 놓으면 마음心자 하나입니다.

마음을 깨쳐 중생을 제도하자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방편이고 外道法 일뿐입니다.

누구나 내 본심을 모르니 시비와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 “마음이라는 보물이 나한테 있습니다.

내 마음을 잘 쓰면 하느님도 되고, 대통령도 되고, 부처님도 되고, 도인도 되고, 몸뚱이한테서는 하나도 아무 것이 생길 수 없습니다.

” “우리의 원수는 분별심 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善心(선심)을 착한 마음이라고 하지만 진정한 선심이란 착한 마음을 버릴 때 비로서 있는 것입니다.

착한 마음도 나쁜 마음도 둘 다 버려야 극락에 갈 수 있습니다.

” “이 세상에서 제일 수지맞는 일 중의 하나가 공부하다 죽는 일인데 목숨 내놓고 전진하다보면 見性(견성)이 가까워 오고 죽음은 멀어집니다.

” “도시에서 살거나 산에 들어가는 것을 문제로 삼지 마십시오.

공부는 아무 때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공부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어디서나 못하겠습니까?.

“”세상에서 겪게 되는 난관이나 재앙은 불행이 아니라 큰 선물입니다.

실패가 주먹만하면 성공이 주먹만하고 실패가 태산만 하면 태산만한 성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위인들은 모두 죽을 자리에서 살아난 경험을 등불 삼아 큰 성공을 이룬 분들입니다.

” “불법이란 먼 데, 또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大道無門(대도무문)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문이 좁은 법은 없지만 어떤 것이나 도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문이 있다거나 반대로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 ” 인간은 다 죽습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잠시라도 잊지 말고 내 마음을 지키고 내 마음을 닦을 때 내가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 “부처 아닌 것이 없듯이 화두 아닌 것이 없습니다.

♪국악 명상곡- ‘물소리 바람소리’

혜암스님─마음이 곧 부처님이다

마음이 곧 부처님이다

/ 혜암 스님

한량없는 복을 받다

내일은 해인사에서 장경불사가 있는 날입니다.

사실 장경불사는 책에도 없는 불사입니다.

해인사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지만,

해인사 대장경불사는 해인사 빚을 갚으려고

절 살림을 꾸리던 스님이 생각해 낸 불사였습니다.

시작은 그렇지만,

공부를 시켜도 신도들이 하지 않으니

이런 인연이라도 맺어 주려고 한 의도도 있습니다.

장경불사 자체가 그대로 복이 되기 때문이지요.

소 한 마리가 풀을 뜯어먹다가

풀밭에 떨어진 장경 조각을 콧김으로 훅 불었답니다.

그렇게 무심히 장경 조각을 한번 분 공덕으로,

그 소는 천상락을 얻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장경을 머리에 이고 불사를 하는데,

천상락에 가지 않겠습니까.

해인사 대장경불사가 잘 되자

다른 절에서도 장경불사를 하고 있습니다.

수지 맞으려고 신장기도 선전하듯 장경불사를 하는데,

그러면 절도 신도도 복을 받지 못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거지였던 어떤 노파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보광불 부처님이 제자 만 명을 데리고 절에 갔다가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선방을 지어 주면 그보다 더 큰 공덕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능력 없는 노파였지만

스님 한 분이라도

공부할 수 있는 집을 짓겠다는 발원을 세웠습니다.

그 때부터 노파는 손바닥이 다 닿도록 일을 해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곤 부처님에게 가서,

이 보잘 것 없는 토굴에서 공부를 하였답니다.

삼장 법사가 그 곳에서 공부한 공덕으로

노파는 천상으로 올라가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까지 한량없는 복을 받았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어느 날 노파가 부처님께 다음날

사시 공양을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이 허락을 했는데,

마침 그때 왕에게서 다음날 공양을 받으시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러자 천상의 노파와 약속이 있어 안되겠다고 하니까

왕이 물었습니다.

천상 사람이 공양을 올릴 수 있냐는 물음이었어요.

그럴 수 있다는 대답을 들은

왕은 잠도 이루지 못하고 다음 날을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다음날 시간이 되자

노파는 방광을 하며 풍악을 울리고,

향기를 풍기며 인간 세계로 내려왔습니다.

“세존이시여, 공양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알려 주십시오”하고

손수건을 좌우로 흔드니,

천 이백 명의 대중이 들어 갈 집이 지어지고,

좌복이 쭉 펴졌습니다.

다시 수건을 빙빙 돌리니 맛있는 음식이 바릿 대를 채웠습니다.

부처님은 이를 맛있게 드셨답니다.

이를 지켜보던 왕이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가 제일 중한 줄 알았는데,

천상 사람은 무슨 복을 지어

천상락을 얻었으며 손만 흔들어도 음식이 나옵니까.

?”

“인과법을 들어봐라.

저 이는 전생에 인간 세상에 태어나 평생 거지 노릇을 했는데,

보광불 부처님 당시, 법문을 한번 듣고

토굴을 하나 지어준 적이 있다.

그 공덕으로 손가락 하나에 받을 복이 한량없이 있게 된 것이다.”

마음이 곧 부처님이다

극락세계가 아니더라도 천상의 복 또한 이렇게 많습니다.

봄이 되니 새싹이 나오다

인간 세상에 ‘웃다나’ 라는 섬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쌀알이 한 자 두 치랍니다.

농사를 짓는데도

씨앗을 뿌리고 나락을 베지 않아도 알이 영글었답니다.

복이 얼마나 많은지 신통으로 살았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신통한 제자들이

먹을 것이 없을 때 그리로 날아가 밥을 먹곤 했답니다.

사주책을 보면, 말로 복을 지어 입으로 복을 받을 사람이 있고 ,

손으로 남에게 집어 주고

가려운데 긁어 주고 병을 낫게 해 주어

복을 지은 사람이 있습니다.

눈으로, 귀로, 발로 복을 지은 사람이 있습니다.

발로 복을 지은 사람은 가는 곳마다 좋은 사람 만나고,

절에 가도 좋은 법문을 듣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 복 짓는 데로 갑니다.

그러니 공짜 좋아하지 마세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꾀로만 살려고 해요.

스님이 되어 지고도 그러니 안타깝습니다.

마음 하나 잘 써서 손으로,귀로,

발로 복을 지으면 저금통장에 저금하듯 복을 쌓는데,

자기 저금통장을 누가 가져갑니까.

자신이 찾아 먹는 겁니다.

이런 법문을 듣고 배운 사람은 멋지게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 법을 듣지 않아 인과법을 모르면

남에게 욕심을 내고, 괜히 기분이 나쁩니다.

그러나 이러한 법을 알면 공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언짢은 일,

나쁜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제 복으로 제가 살고,

내 복으로 내가 사는 것이니 남을 부러워할 것 없습니다.

얼굴 잘 생기고 부자인 사람들 부러워할 것 없습니다.

복 많이 짓고 안으로 공부하면

나도 잘 살 수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더럽고 어려운 일 일수록 공덕이 많습니다

화장실에 부처님 한 분이 계신데,

그 분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일을 해야겠다고 원을 세운 분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에 가면

화장실 가는 곳에 그 분을 모셔 놓았습니다.

오며 가며 그 분의 뜻을 배우라는 거지요.

일본과 중국에선 중노릇을 하려면

어떤 사람이라도 화장실 청소하는 것부터 가르칩니다.

그런데 중 되고 나면 꾀를 내어 놀려고만 해요.

죽을 짓인지도 모르고, 불쌍하고 답답해서 못 보겠어요.

어찌 죽을 짓거리만 하느냐 말입니까.

불법을 만나고 사람 인연 얻기 힘든데,

한번 어려운 길에 들었으면 죽더라도

이 일을 해야겠다 덤벼들어야지 중 된 보람도 있는 겁니다.

봄이 되니 새싹이 나오지 않습니까.

짓말하고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