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과 기도를 벗 삼아 정진하라 -지광스님- 부처님께서는 항상 “너희들 마음 가운데 부처님이 계시다”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도의 근원이고 공덕의 어머니라 하셨지만, 진실로 그 같은 가르침을 확신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대는 그대의 마음 가운데 부처님 계심을 확신하는가? 부처님께서는 “믿고 의지하는 자의 염원은 반드시 성취된다”고 말씀하셨다. 밤낮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관세음보살님께 호소하며 관세음보살과 자신을 일체시켜야 한다. 왜 부처님과 관세음보살과… 지광스님─경전과 기도를 벗 삼아 정진하라 계속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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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스님─격려하고 칭찬하라 그리고 공양하라
격려하고 칭찬하라 그리고 공양하라
-지광스님-
우리의 현실은 불완전하다.
모두가 불성을 지녔다 하지만 나도 남도 모두 부족하다.
말도 부족하고 생각도 행동도 모두 부족하다.
내가 남에게 하는 말을 생각해 보라.
남을 위한 쓸만한 말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남을 비난하고 비방하고 비판하는 데 너무 익숙하지 않은가? 우리는 좀 더 어른스러워져야 한다.
부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부처님과 가까워지고 부처님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배우면 점차 완전에 가까워진다.
말과 생각과 행동이 법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내 주변이 온통 부족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기에 그들로부터 듣는 말, 그들이 나에 대해 하는 생각 행동 등이 모두 고통이다.
온통 비난이고 이기심에 가득 찬 악행과 그릇된 생각들 투성이다.
내가 성장하면 할수록 그들의 비방은 커지고 나의 능력이 자라면 자랄수록 시기와 질투도 커진다.
흔히들 도가 높으면 마가 성하다는 얘기처럼 정진하면 정진할수록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주변의 저격병들로 인해 고통이 더해진다.
부처님은 어떠하셨는가? 바라문들과 수많은 어리석은 무리들의 비방과 공격을 감내하시면서 중생제도의 길을 가셨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님을 강조하시면서, 무명의 어리석은 무리들을 깨우치시면서 고행의 길을 가셨다.
우리들 역시 자신을 끝없이 승화시키는 길이 결국 부처의 길이요 결국 그 길이 무량중생들의 제도를 위한 길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부처의 길이 깊은 곳에서 나 혼자만 갈고 닦는다고 되는 길인가? 나 자신 갈고 닦는 길이 결국 보살의 길이요 부처의 길이다.
나를 갈고 닦는 길이 따로 있고 중생들을 제도하는 길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부처님께서 6년 고행의 길을 가신 것도 중생을 위한 버림의 길이요 무량중생의 제도를 위해 전법의 길을 떠나신 것도 버림의 길이었다.
결국 모든 수행의 길은 버림을 통해있으며 나 홀로 있을 때는 명상 속에 참선 속에 기도 속에 번뇌를 버리고, 대중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 닦은 마음을 실천을 통해 베푸는 것이다.
모든 불행은 이기심 때문이기에 우리의 삶은 내가 남을 대할 때나 남이 내개 향할 때 한결 같이 아상을 내려놓는 삶이어야 한다.
남을 대할 때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질책하기보다는 그들을 부추겨주고 칭찬하고 공양하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또 남들이 나에게 비난과 질책과 악행을 가하더라도 그를 선물로 알고 나의 이기심을 녹이는 경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상대방과 하나가 되고 무아심이 되는 길은 그 어떤 비난도 웃어넘기고 어떠한 모함에도 감사하는 것이다.
타인의 좁은 마음에 개의치 않는 길, ‘항상 내 잘못이다’, ‘내 책임이다’ 스스로 수용하는 길이 참수행의 길이다.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많은 비판을 감수해야만 하는 정신적 심리적 거인은 모두를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인다.
참다운 수행자는 심리적 도피구를 만들지 않는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 모두가 부족하기 때문임을 잘 알기에 그들을 제도하지 못한 나 자신을 책망할지언정 그들의 싸움을 거부한다.
참수행자는 어떤 비난에 대해서도 웃으며 답하는 사람들이며 스스로의 부족함으로 나에게 원한을 지닌 영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영가들에게도 용서와 참회를 구한다.
어떠한 영가들도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려들지 않기에 ‘나의 무지와 이기심으로 그대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음을 참회 한다’고 기도드리며 용서를 구한다.
참수행자들이여! 우리들은 하루 종일 타인과 살고 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이기심이란 악마를 녹여라.
상대방을 위해 모두를 위해 친절을 더하라.
칭찬을 아끼지 말라.
베풀어라.
그들을 부추겨라.
모두를 존경하고 나로 인해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나아가게 하라.
타인을 격려하고 모두를 위해 나를 불태우는 등불이 되라.
광명이 되라.
그 길 가운데 영원한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 하시리라.
지광스님─감사는 가피의 원천이자 우리 운명이다
감사는 가피의 원천이자 우리 운명이다 –
지광스님
능인선원 원장- 우주는 무량한 은혜에 감싸여있다.
부처님의 은혜가 그러하고 법의 은혜가 그러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무량중생들은 태어남으로부터 은혜로움 한가운데 존재한다.
부모님의 은혜, 조상의 은혜는 물론, 나라의 은혜, 스승의 은혜, 친구의 은혜 등등 많은 은혜로움에 싸여 산다.
그런데 그 같은 은혜로움에 제대로 감사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또 그 같은 은혜로움에 얼마나 보답할까? 여기에 참으로 이해하지 못할 대목이 하나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 때문에 산다고 한다.
실제 아이들에게 모든 걸 걸고 산다.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살면서도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 역시 자신에게 모든 걸 걸고 살다가 떠나가셨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안다 하더라도 애써 외면하는 경우는 없을까? 자식들이 부모의 마음을 몰라 줄 때 얼마나 서운할까? 우리는 부모에게 얼마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경에 보면 처절한 원수가 삼생전에 네 어미임을 알라고 가르친다.
무량한 은혜로움의 대상인 어머니가 왜 처절한 원수가 되고 악령이 되는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큰 원수가 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자식들이 부모의 마음을 모르듯 우리 모두 그렇지 않은가? 부모의 은혜가 하늘같다 하는데 스스로 얼마나 그에 보답하는가? 은혜를 갚는 것을 보은이라 하고 은혜를 등지는 것을 배은망덕이라 한다.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이가 제대로 되겠는가? 경에 보면 우리 모두는 사랑의 열매라 하셨다.
열매는 어디에 달리는가? 튼실한 열매는 나무에 달린다.
나무는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뿌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열매는 제대로 자랄 수 없다.
뿌리는 조상이요 부모다.
그것만으로도 되는 게 아니다.
하늘에서 비가 잘 내리고 바람이 잘 불어주고 햇살이 쨍쨍해야한다.
바람, 비, 햇살은 모두 부처님 영역이다.
결국 부처님과 조상님,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이야말로 튼실한 열매인 자손이 창성하게 되는 첩경이다.
경에 보면 현명한 왕.
지혜로운 왕은 아침 공양 전 부처님과 역대 선조에게 공양을 올린 다음 수라를 든다고 한다.
진실로 부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 재앙의 길에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불효한 자는 지상 최대의 도둑이다.
무서운 재앙을 받는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는 무량중생들이 한없는 은혜에 감싸여 있는 때문에 감사가 우리들의 숙명이라 말한다.
감사는 진실로 우리의 숙명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은혜 부모님의 은혜를 제대로 갚지 못했기에 중생들이 지은 죄와 업장은 산과 바다와 같다고 한다.
그렇기에 참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참회는 우리의 진정한 의무인 것이다.
왜 기도하라 하는가? “기도는 진심으로의 참회요 헌신적인 참회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운명은 감사가 결정한다.
참회가 결정한다.
그래서 감사가 우리의 운명이요 참회가 우리의 의무라 하는 것이다.
진정 감사를 모르면 은혜를 모르면 기본을 모르는 사람처럼 불행에 떨어질 우려가 크다.
은혜를 모르기에 항상 불행한 법이다.
경전에는 오종대은명심불망(五種大恩銘心不忘)이 있다.
부처님의 은혜를 바탕으로 하여 다섯 가지의 중요한 은혜를 말씀하셨다.
나라의 은혜, 부모의 은혜, 친구의 은혜, 스승의 은헤, 시주자의 은혜 등을 일컫는다.
부처님의 진정한 가피는 참된 감사에서 현현한다.
나라에 항상 감사하고 사랑해야 좋은 나라에 태어나고.
부모에 항상 감사해야 좋은 부모 만나며.
항상 친구를 소중히 여길 때 소중한 친구를 만나며, 웃어른을 잘 모셔야 좋은 웃어른을 만난다.
부처님께 항상 감사하고 공양을 올려야 부처님의 가피가 있지 않겠는가? 왜 기도를 강조하는지 알겠는가? [출처:능인선원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