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암스님─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서암스님-

나무(南無)란 내 잃어버린 마음을 찾자는 소리입니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은 내 근본 마음입니다.

불생불멸 無量壽의 무량한 광명 無量光입니다.

내 이몸 덩어리는 백년 안쪽에 부서져 없어집니다.

그러나 이생명은 무한히 빛나고.

끝이 없는 불생불멸입니다.

그것이 아미타불입니다.

우리가 망상 없이 일념으로 내 마음 자리를 찾는 그 염불이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우리 마음자리는 참으로 묘한 것입니다.

몇 천만년 전의 굴이나.

금방 만든 굴이나 불을 켜면 곧 바로 밝아집니다.

몇 천만 년 전의 굴이라고 해서 몇달 동안 불을 밝혀야 밝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모질고 독한 사람도 임종시에는 모든 생각이 순수하게 됩니다.

불교를 모르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도 임종시에 “나무아미타불”한번만 지극정성 불러도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간다고 합니다.

순수한 세계는 순수한 마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서암스님─’나’라는 주인공

‘나’라는 주인공

-서암스님-

‘나’라는 주인공, 능히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성내기도 하면서 갖은 조화를 부립니다.

이것은 큰 것인가요? 혹은 작은 것인가요?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니, 크다고 하면 다시 작아지지 못하고 작다고 하면 다시 커지지 못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모난 것도 아니고 둥근 것도 아니며 푸른 것도 붉은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착한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착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모나기도 하고 둥글기도 하니 결국 그 정체가 결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갖은 조화를 부리는 것입니다.

방 안의 허공은 네모난가요? 공 안의 허공은 둥근가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착각을 하여 둥근 허공이니 네모난 허공이니 하지만 실제로 허공 자체는 네모나거나 둥글지 않습니다.

자기가 만들어 낸 분별로 악한 마음을 쓰기도 하고 착한 마음을 쓰기도 하고 큰 마음을 쓰기도 하고, 작은 마음을 쓰기도 하니 스스로 온갖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본래의 자기 마음자리는 한계가 없어 모양도 빛도 없는 대소장단(大小長短) 일체가 끊어진 자리인 것입니다.

서암스님─ 왜 사람은 늘 같은 마음일 수 없을까요

왜 사람은 늘 같은 마음일 수 없을까요?

-서암스님-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변합니다.

한동안은 좋게 생각을 냈다가도 조그만 어긋나면 서로 갈라지고 항상 마음이 변합니다.

그게 바로 중생심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수행을 잘 쌓으면 항상 하는 마음을 씁니다.

수행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한테 이익이오면 좋은 마음을 쓰다가도 조금만 그사람이 해를 끼치면 변심해서 그 항상심이 없어져 버립니다.

우리는 항상심, 한결같은 마음이 정돈되어야 그 생활이 행복해 집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한결같은 마음, 그 사람이 나를 해칠 때나 나를 도와 줄 때나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그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수행하는 마음이 없으면 항상 이해관계나 차별심이 생겨서 변동이 많습니다.

아침에 생각했던 마음이 저녁에 변하고 저녁에 생각 한 마음이 그 이튿날 또 마음이 변하고 자꾸 변합니다.

요새 모든 사람들이 친한 사람과 원수맺고 하는것도 그 변하는 마음때문입니다.

이 변하는 마음은 쓰지말고,한결같은 그 마음을 써보십시오.

그것이 생사를 초월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온갖 망상과 사랑분별을 떨치고 정진에 들어가면 기멸이 없는 마음, 근본 마음을 보게 됩니다.

근본 마음을 놓쳐버리고 사는 중생들은 항상 그런 차별 속에서 시시각각으로 마음이 변합니다.

친한이가 원수로 변하고 원수가 또 친한 이로 변하는 이러한 것은 중생사회입니다.

그래서 중생사회가 혼탁해지고 투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남이 하는 일은 좋아보이는데 자기가 하는 일은 불만스러워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왜 그런지요? 중생사회가.

다 그렇지요.

자기 앞의 콩보다 남의 앞에 있는 콩이 더 곱게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남 하는 것은 다 좋아보입니다.

그러나 불법을 알고 보면 모든 이웃과 내가 둘이 아닙니다.

이웃이 잘되는 것이 내가 잘되는 것이고, 이웃의 불행을 볼 때 내 마음이 괴로운 것입니다.

전체를 하나로 보게 되면 내것이고 네것이고 나눔이 떠나서 내가 하는 일에 행복을 느끼고 그일을 천직으로 충실히 하게 되어 그런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항상 자기 자리와 남을 갈라놓고 보기 때문에 그런 피상적인 인생관을 갖게 됩니다.

근본적인 원리에서 자타가 없는 진리의 눈이 떠 질때 남이 하는 것이 좋아보이고 자기처하는 곳을 불쾌하게 여기는 생각이 사라집니다.

모든것은 우리 마음가짐에 있습니다.

자기 마음의 좋아하고 싫어 하는 그 초점을 돌이켜 보십시오.

어디서 미워하는 생각, 불만스런 생각, 그런생각이 일어났는가? 그것을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수행하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