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스님─공부속에 비결이 있다

공부속에 비결이 있다

-보성스님-

애써 공부하고자 하라.

그런데 어떤 불자들은 말합니다.

“삼업을 잘 다스리며 순리대로 살고 싶은데, 뜻하지 않는 고난이 너무나 자주 닥쳐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항상 이야기 해 줍니다.

“불교에는 크게 네 가지 수행법이 있다.

경전공부,참선공부, 염불, 주력(呪力)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한 가지를 택하여 부지런히 해보아라.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지혜가 샘솟아, 고난이 저절로 물러가고 순리대로 잘 살수 있게 된다.”

이 네가지 수행법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를 찾는 공부 방법입니다.

이 공부를 꾸준히 하면 업장이 저절로 녹아내려 고난과 장애가 저절로 사라집니다.

네 가지가 하나 같이 ‘나’ 의 그릇을 맑고 크고 튼튼하게 만드는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교를 믿는 우리 불자들은 이 네 가지 중에서 하나 를 택하여 꾸준히 닦아가야 합니다.

하루 한 시간씩만 꾸준히 하게 되면 그 힘이 매우 커져, 이 공부를 하지 않고 선행만 열심히 짓는 공덕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공부들이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나’를 저절로 바르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단, 이 공부에 있어 한가지 주문할 것이 있습니다.

참선이든 경전공부든 염불이든 주력이든, 결코 형식 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몇년 전 나의 맏상좌인 지현스님이 부산 관음사에 아미타부처님 을 봉안하고 백일정진을 하였습니다.

그때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의 손자상좌가 동참하여 부지런히 [아미타경]을 외웠습 니다.

그런데 열흘이 지났을 때 손자상좌가 경을 펴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얘야,너는 왜 경을 보지 않고 게으름을 부리느냐?” “다 외웠습니다.” 다 외웠고 내용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나름대로 한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

다 외웠으면 더욱 부지런히 외워야 한다.

아미타부처님이 함께 하도록 열심히 외워라.

‘부처님 따로 있고 나 따로 있다’는 자세로 하면 백년을 외워도 안된다.” 염불을 할 때면 마땅히 부처님과 함께 한다는 자세로 염불을 해 야 하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하게 되면 관세음보살님과 함께 한다는 자세로 외워야 합니다.

참선을 할 때는 또렷이 화두를 잡고자 노력해야 하고, 독경을 할 때면 그 경에서 가르치는 바를 ‘나’의 것으로 만들고자 애써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가 되고자 하고 애를 쓰고 노력을 하는 것이 공부 이며, 이렇게 하루에 한시간이라도 공부를 하게 되면 업장이 저절로 녹아 내립니다.

간곡히 불교를 믿는 이들에게 당부드리 건데, 어리석게 불교를 믿는 불자가 되지 마십시오.

자기 공부 를 하지 않고 어리석게 불교를 믿게 되면 아무리 오래 믿어도 자기를 살릴 수도 올바로 사랑 할 수도 없습니다.

얼마 전 20여명의 불자들이 한 스님의 인솔하에 송광사 새벽 예불에 참석하고자 왔습니다.

그때 법문을 하게 되었는데 50대 의 여자가 법문 끝에 손을 들었습니다.

“스님, 질문을 해도 됩니까?” “하십시오.” “우리 집에 이러이러한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법문 내용과 전혀 관계가 없을뿐더러 법을 알고자 하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온 사람들도 관심을 갖지 않을 아주 사소한 개인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나도 모르겠소.” 평소에 공부를 한 사람이면 점치는 집에 가서나 할 질문을 절에 와서는 하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경전공부,참선공부,염불,주력 을 잘 닦은 사람은 답을 스스로 알고 잇습니다.

묵은 업장, 곧 숙업(宿業)을 능히 녹이면서 일상 생활의 터전을 잘 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터전을 잘 다지는 사람이 어찌 갈팡질팡 하겠습니까? 부디 불자답게 한 가지 공부를 택하여 그 공부와 함께 일상생활을 익혀 가십시오.

생활 속의 그릇됨을 녹이는 힘이 그 공부 속에 있습니다.

꾸준히 하십시오.

비결은 꾸준히 하는데 있습니다.

금강경이나 관음경 한 편이라도 매일 꾸준히 독경하면 숙업이 녹아 내리면서 삶의 터전이 잡힙니다.

삶의 터전이 잡히지 않으면 갈팡질팡하게 되고, 갈팡질팡 하는데 어떻게 ‘나’를 살리고 ‘나’를 올바로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잘 유념하시어 공부를 잘 지어 가시기 바랍니다.

보성스님─간절한 기도로 큰 그릇 되라

간절한 기도로 큰 그릇 되라

-보성스님-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 모두는 ‘올해에는 반드시’로 시작되는 첫 생각, 계획들을 했을 것입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바라는 바이니, 한가지도 같지는 않겠지요.

이러니 이것을 듣고 계신 부처님이 원하는 것들을 다 들어줘야 될 텐데 걱정입니다.

천수천안이 아니라 만수만안도 부족할 테지요.

그러나 여러분들의 바람을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과거와는 다른 더 좋은 환경의 변화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저 앞에 솟아오른 산, 흐르는 물을 보십시오.

변함이 있습니까.

변화가 있는 것 같지만 큰 변화가 없습니다.

최근에 나온 카르마파의 책에 보면 “각자 나를 보세요”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나로서 출발합니다.

외부의 변화를 기대하기 보다는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 봐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로 발원해야 할 것이, 그리고 변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조용히 자신을 관조하면 다들 훌륭한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도 여자도 늙은이도 아기도 아닙니다.

절대 평등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불성입니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 시작됨 알아야 우리가 매년 정월 초하루마다 기도를 하면서 “나는 이런 희망을 가지고 올해 이렇게 노력 하겠다”고 부처님 앞에 소원을 비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자신을 가만히 들여 보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없고 외부에 환경의 변화만을 바라는 기도는 허망한 것입니다.

눈으로 본 것도 귀로 들은 것도 다 제쳐놓고 가만히 관조해 보십시오.

누구든지 부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행동 할 수 있습니다.

‘근심걱정’이라는 이름조차 없는 그 상태로 들어가야 합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입니다.

부처님은 항상 원인을 존중합니다.

원인이 잘못되면 결과도 좋지 못합니다.

처음 출발을 잘 해야 됩니다.

입 딱 다물고 ‘나는 오직 부처님에게 내 뜻을 전달하려고 왔다.’, ‘어떠한 누구한테 칭찬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지’하는 사람은 기도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자라면 아무리 기도를 성취 했다고 떠들어도 그릇이 시원찮아서 담기지 않습니다.

자세도 낮춰야 합니다.

그것을 하심(下心)이라고 합니다.

100년 전 진주에 사는 한 노 보살님이 계셨는데 집이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어떤 음식점에 취직해 밥을 짓는 일을 하며 살았는데 참 정성스럽게 상을 차려 줍니다.

또 손님이 남긴 밥과 반찬은 정갈하게 관리해서 주위의 가난한 이들에게 대접하니, 그 음식점과 노보살에 대한 소문이 여기 저기 퍼졌습니다.

참 자비로운 분이지요.

예전에는 소달구지에 수확물을 싣고 자갈밭을 가다 보면 나락이 많이 떨어집니다.

노보살은 늙은 몸을 이끌고 달밤에 그것들을 쓸어 모읍니다.

티클 모아 태산이라고, 이렇게 한 달을 모으면 가마로 몇 개는 된다고 합니다.

노보살은 그것을 또 가난해서 봄에 뿌릴 씨앗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종자 하라고 주는 일을 10년을 넘게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 해 동안 음식점에서 일을 하고 나중에야 밖에 나가서 음식점을 차렸는데 진주에서 알아주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노보살의 알뜰한 살림 솜씨와 남다른 음식맛에 부자 된 비결이 있었겠지만, 항상 어려운 이들을 잊지 않았던 그 아름다운 마음 씀씀이가 바탕이 됐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바라는 것은 태산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오욕에 찌든 번뇌 망상에 젖어 있다 보니, 법회 시간에 스님이 아무리 목탁을 치며 기도해도 뒤에서는 딴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왜 스님은 목탁을 오래 칩니까.

화장실 갈 시간도 없습니다.” 이렇게 불평들을 해 댑니다.

그런 분은 절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숫자를 바라지 않습니다.

법당에 앉아 실례를 해도 좋습니다.

올해는 단단히 각오를 합시다.

공양주 보살도 오늘만큼은 공양을 조금만 준비하고 기도하십시오.

공양주가 기도를 잘해야 기도하러 온 사람들이 기도를 성취 하지요.

여러분도 주위를 정돈하고 절도 한 번 더 하고 염불도 더 하십시오.

평소보다 30분만 더 해 보십시오.

이번 일주일은 깐깐하게 해 달라는 말입니다.

시간이 간 줄도 모르고 노력해야지 보통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6년 고행을 하셨습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목동의 풀을 빌려서 풀을 깔고서 내가 이 자리에서 마지막 뜻을 이루지 않으면 일어나지 말아야지 하고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앉았습니다.

잠 잘것 다 자고 먹을것 다 먹고 하지 않습니다.

또 이번 일주일은 말이 적은 것이 좋습니다.

집에 가서도 독경을 하든지 염불을 하든지 하십시오.

염불할 때 누가 와서 욕을 하더라도 아랑 곳 없이 하십시오.

내가 깨끗하면 상대방도 깨끗해집니다.

법당에 오면 망상부터 버려라 열반하신 효봉 스님은 간절하게 노력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위에서 “며칠 밥도 안 먹더라”고 해도 자신에게는 잠깐일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든 참선이든 염불이든 시간 가는 줄 몰라야 됩니다.

반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일주일 동안 바보가 되면 스스로는 큰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담든지 간에 부족함이 없는 그릇이 되어 본다는 말입니다.

어디에 내놓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대장부 기틀을 부처님 앞에서 배워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훌륭한 장부가 되라, 그리고 남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아들, 딸 잘 키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훌륭한 장부의 길을 가고 남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당연히 아들 딸 잘 키우고 부모도 잘 모십니다.

부모가 유언장 안 써도 자녀들이 잘 봐줍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아버지 어머니는 훌륭한 그릇이 되어 있으니 자녀가 그 그릇에 안 담길 수 있겠습니까.

“간절히 남을 따라 찾지 말라.

점점 나하고 멀어져 간다.

지금 내가 스스로 가니 가는 곳마다 만나는구나.” 중국의 동산 스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여.

왜 자꾸 남을 의지하려 하느냐.

너의 일은 네가 스스로 해라.

그리고 나아가서는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되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미안한 말이지만 고급 장애인이 너무 많습니다.

억지로 남의 힘을 빌리려고 합니다.

집도 나라도 망하는 길입니다.

남을 의지하지 마세요.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서 바로 배우고 바로 실천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바로 배우고 실천한 자신의 경험이라야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장애는 욕심에서 비롯 돈도 적당하게 있어야 됩니다.

욕심이 지나쳐서 항상 돈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원효 스님도 욕심 때문에 고생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법상에서 법문한다고 하지만 욕심을 버리라는 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욕심 버리면 바로 보입니다.

기도도 욕심이라는 것을 다 내려놓고 해야 참다운 기도입니다.

이렇게 해 주세요가 아니라 이렇게 하겠습니다가 돼야 합니다.

일단 욕심을 버려 놓고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행해야 되는가를 정해놓으면 무슨 어려움이 있어도 걱정이 없습니다.

결국 고생도 내가 사서 하는 것이지 누가 고생을 갖다 줘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욕심으로 봐서 그렇지 내려놓고 보면 내가 일등 바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큰마음 먹고 기도 한번 멋지게 해 봅시다.

간절한 생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보성스님─ 큰스님 삶의 지혜를 주십시오(2)

큰스님 삶의 지혜를 주십시오(2) – 보성큰스님 – 문:스님께서는 이제까지 선정과 지혜를 중심에 두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제 육바라밀의 나머지 네 덕목인 보시, 지계, 인욕, 정진에 대해 설하여 주십시오.

답:보시(布施)는 남에게 주는 것을 넘어서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욕심을 부려 정당하지 않게 돈을 벌게 되면 불현듯 차 사고가 나게 돼서 손해를 보던지, 아내가 빚보증을 서서 뜻밖의 손재(損財)가 생기던지, 무단히 병이라도 생겨 돈이 물밀듯이 빠져나가 버리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러니 욕심을 내 많이 벌면 무엇 하겠습니까? 내양심껏, 능력껏 버는 것이 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울러 남에게 베풀어준 것은 대법계의 창고에 쌓여있다가 언젠가는 큰 힘이 되어 되돌아오게 되어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계(持戒)는 계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이 깊은 사람의 행동은 지계 아닌 것이 없습니다.

마음조심, 말조심을 하면서 남을 해치지 않고, 이 몸 하나 반듯하게 지켜 나가는 것이 계율이라는 것을 알면 능히 지계바라밀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인욕(忍辱)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인내입니다.

같은 일을 두 사람이 할 때, 능력 있는 사람은 이틀 만에 끝내고 능력 없는 사람은 사흘이 걸린다고 합시다.

그 때 능력 없는 사람이 자신의 무능을 탓하거나 성질을 내거나 발버둥 치지 않고, ‘나는 사흘이 걸리더라도 꼭 이 일을 완수 하겠다’는 자세로 노력하는 것이 인욕입니다.

정진(精進)이란 꾸준히 노력한다는 말입니다.

‘내 갈길을 내가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 정진입니다.

문:초심(初心)의 불자들은 수행을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까? 답:수행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숨을 잘 쉬면 됩니다.

살아 있는 자는 모두가 숨을 쉽니다.

만약 들이쉬는 숨도 편안하고, 내쉬는 숨도 편안하면 저절로 마음이 평정되고, 마음이 허둥대지 않고 불안하지 않으면 올바른 의식(意識)을 갖게 됩니다.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불안해하며 살고 있습니다.

왜 불안에 빠지는 것일까요? 원인은 간단합니다.

10만원을 벌면 될 일을 20만원, 30만원, 100만원을 벌려고 하다보니 불안해지고, 불안 속에서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목을 매어 목숨을 끊고 고층 빌딩에서 다이빙을 하는 사태가 비일비재 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의식이 불안하기 때문에 비극적인 결과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편안한 호흡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편안하게 가질 줄 아는 이것이 수행의 시작입니다.

달마대사께서도 “내심무천(內心無喘)하고 외식제연(外息諸緣) 하라”고 하셨습니다.

호흡을 편안하게 하여 바깥의 쓸데없는 반연을 끊어버리고, 안으로 헐떡거리는 마음을 쉬라는 말씀입 니다.

쓸데없는 남의 일이나 바깥일을 간섭하지 말고, 욕심을 부리 지도 말고 자신을 잘 다스리면 수행이 저절로 이루어질 뿐 아니라 만사형통하게 됩니다.

문:남보다 잘 사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답:간단합니다.

남보다 잘 살려면 남보다 성실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학벌이 좋다고 하여 편하게 앉아 펜대만 돌려 정작 노력한 이상의 대우를 바래서는 안 됩니다.

성실하 고 부지런한 사람이라야 늘 한 길로 갈 수 있고, 천천히 조 심해서 가다보면 잘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물 한 방울이라도 아껴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 호주사람이 왔었는데, 그 나라는 정부에서 지하수도 마음대로 못 파게 한답니다.

지하수가 고갈되는 날을 대비하여 미리 예방을 하는 것이겠지요.

우리나라는 좀 잘 살게 되어서인지 너무나 낭비가 심합니다.

내가 이것을 한 순간 아끼면 앞으로 주위사람 누군가가 요긴 하게 쓰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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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도 음식을 먹을 만큼만 만들고, 먹을 때도 각자가 먹을 만큼만 덜어서 깨끗하게 먹으면, 이것이 음식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요, 음식을 만들어주신 부모님을 존경하는 일까 지도 됩니다.

이렇게 성실한 마음으로 한결같이 부지런히 낭비 없이 사는 것이 남들보다 잘 사는 비결이요 신행생활을 잘 하는 지름길 입니다.

많이 아는 것 보다, 알고 있는것을 잘 행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대담 및 정리 손영희 안춘상 -월간 [법공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