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은 추위도 심했지만 눈 또한 무던히도 왔다. 해방후의 그 어려웠던 시기에도 우리는 겨울날씨가 추우면 추운대로 이듬해엔 병충해가 적어 농사가 잘 될 것이라고 했고, 눈이 많이 오면 오는 대로 보리 농사가 잘 될 것이라고 희망적인 예언을 하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 왔다.
그러나 이즈음은 기상예보를 잘못한 기상청을 원망하고, 재해 대책이 허술했다고 정부나 지방자치 단체를 탓하면서 스스로의 잘못이나 자연의 섭리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기야 5년 전쯤의 예상으로는 21세기에 접어드는 현 시점에서는 국민소득이 2만불 시대가 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으나, 1만불에서도 뒷걸음질을 한참 했으니 그 상실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무엇하나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켜 준 것이 없으니 사람들마다 독이 오르고 신경만 머리끝까지 발달한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나고 판을 치는 것들은 온통 현란한 겉보기 문화들이라고나 할까. 현실에서 사이버 세계로의 변화, 컴퓨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인간 군상, 텔레비전을 비롯한 매스컴에 의해 좌우되는 인심 등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현상들이다. 특히 이즈음의 매스컴은 눈이 휘둥그래지고 아찔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짜릿짜릿함이 없이는 시청자를 사로잡지 못한다. 너무 빨리 돌아서 어지럽고, 다양함이 극치를 이루어 핵심이 없다. 지나치게 개성이 강조되어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가 없다. 거기에다 이념적인 것까지 곁들여서 더욱 어지럽다. 시선이 한참 머물 수 있는 곳을 찾기 어렵고 발이 어디에 닫는지 의심스럽다.
비평가들의 말대로라면 정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경제도 비전이 없이 발등의 불끄기에 급급하며, 사회도 안정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제각기 자기집단의 이익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문화도 국적과 민족의 정체성을 잃고는 세계화의 미명아래 방황하고 있으며, 교육은 더욱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정말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우리의 정신이 탁류속에 떠내려가서 실종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대책과 방법은 언제나 하나 뿐이었다. 기본에 충실하고 본질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겉으로 드러난 문화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시류에 지나치게 민감해서도 안된다. 좀더 깊이 생각하자. 인간의 내면으로 눈을 돌려 명상과 사색에 관심을 갖자. 그리하여 보다 중요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과 자비의 문제를 고민하자.
김형춘 글 / 월간반야 2001년 3월 (제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