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集)이란 말은 번뇌를 뜻하는 것으로서 초집생기(招集生起)의 의미이다. 본래 없던 것이 불러 모아 생긴 것으로 갈애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번뇌, 이것 때문에 괴로움의 결과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번뇌는 범어의 ‘Klesa’를 번역한 말로 때로는 ‘혹(惑)’이라고도 한다. 중생의 몸이나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고 어지럽히고 미혹하게 하여 몸과 마음을 더럽히는 정신 작용의 총칭이다.
이 번뇌도 그 종류가 많다. 우선 근본번뇌라는 것이 있는데 ‘탐(貪:욕심), 진(瞋:성냄), 치(癡:어리석음), 만(慢:교만), 의(疑:의심), 견(見:악견)’이다. ‘탐·진·치·만·의’의 다섯 가지는 성질이 둔하여 끊기 힘든 것이라 하여 다섯 가지 둔한 번뇌 곧 5둔사(五鈍使)라 하고, 견(見)의 악견에는 신견(身見: 무아의 이치를 모르고 육체를 나라고 집착하는 소견), 변견(邊見: 중도를 모르고 어느 한 쪽의 극단에 치우진 소견), 사견(邪見: 인과의 도리를 부정하는 소견), 견취견(見取見: 잘못된 견해에 집착한 소견), 계금취견(戒禁取見: 잘못된 계율을 옳은 것이라 집착하는 소견)이 있는데 이 다섯 가지는 성질이 예리한 번뇌라 하여 오리사(五利使)라고도 한다. 사(使)는 ‘사역한다, 부린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말로 역시 번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열 가지 번뇌를 근본번뇌라고 하고 이 근본번뇌에 따라 일어나는 수많은 수번뇌(隨煩惱)가 있다고 한다. 또 흔히 말하는 백팔번뇌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번뇌의 수효를 108가지로 말하는 것이다.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이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상대할 때, 즉 다시 말하여 눈이 보고, 귀가 듣고, 코가 냄새를 맡고, 혀가 맛을 보고, 몸이 촉각을 통하여 느끼고, 의식 속의 생각이 다른 생각을 기억할 때 여섯 가지의 감정인 좋고, 싫고,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은 중간과 괴롭고, 즐겁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중간의 여섯 가지를 각각 일으켜 6×6으로 36가지의 번뇌가 되고 이것이 시간적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적인 차별에 따라 다르게 일어나므로 서른여섯 가지를 3배하면 108가지의 번뇌가 된다 하여 ‘백팔번뇌’라 하는 것이다. 어떻든 번뇌가 원인이 되어 괴로움의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고제(苦諦)와 집제(集諦)의 설명이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과 그 주변의 모든 현실을 괴로움으로 해석하는 것이 불교의 입장이다. 그리고 이 괴로움의 결과는 집(集)이다. 다시 말해 번뇌 때문이라고 하였다. 원인에서 일어난 결과는 원인이 소멸될 때 결과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사성제에 있어서 멸성제(滅聖諦)의 논의는 바로 이것이다. 고의 결과와 고의 원인을 알았을 때 고(苦)의 원인을 제거하여 괴롭지 않는 상태가 되자는 것이다.
지안스님강의. 월간반야 2003년 2월 (제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