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융무애한 진여법계를 체험하기만 하면 공부는 다 마쳐져 더 이상 할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이 일심 안에서 해결되어 괴로움의 문제는 남지 않는다. 선문(禪門)에서는 이를 일대사(一大事) 해결이라고 한다.
그리고 만사휴의(萬事休矣)의 이 경지는 결국 자성을 깨닫는데서 성취되는데, 이것을 위해서 생애를 바치고 사는 수도자의 본분은 분별로 말할 수 없는 일종의 불가사의이다. 이처럼 진여자성으로 돌아가면 운명의 굴레는 없는 것이다.
중봉의 송(頌)에는 이렇게 읊었다.
要問畢時那裏泊(요문필시나리박) 이렇고 이렇고 다시 이렇다는데 묻노니 마칠 때가 어디쯤인가?
埒下重重鐵面皮(날하중중철면피) 겹겹의 쇠가죽만 만지고 있으니
家鄕猶隔三千里(가향유격삼천리) 고향은 아직도 삼천리나 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