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무난(至道無難)이요 유혐간택(唯嫌揀擇)이니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
지극한 도란 깨달음 자체,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흔히 무상정각(無上正覺) 혹은 무상대도(無上大道)라고 말하는 깨달음의 경지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는 말로써 <신심명>은 시작된다.
<열반경>에 말하기를 마음이 있는 자는 누구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마음이 없는 자는 어디 있는가? 그러므로 누구든지 도를 깨달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도(道)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며, 또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간택이란 취하고 버리는 분별의식을 말한다. 이것과 저것의 상대적인 차별 속에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소견을 가질 때 마음에는 집착이 생기며, 또 이 집착은 도를 등지게 한다. ‘무심이 도다(無心是道)’는 말이 있듯이 식심(識心)이 일어나 마음이 출렁거리면 도의 본체에 계합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도를 장애하는 근본요인은 바로 식심분별(識心分別)이므로 이것만 없으면 도는 쉬운 것이라는 말이다.
단막증애(但莫憎愛)하면 통연명백(洞然明白)하리라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는 일 없으면 환하게 명백하느니라.
미워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감정에 움직이는 인간의 의식작용이지만, 이것이 바로 어떤 관념의 고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취하고 버리려는 마음이 있는 것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 때문이다.
도(道)라는 실상의 참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시야가 밝아야 하는데, 증애심이 있으면 정법의 눈을 흐려 도의 당체를 볼 수 없으므로 증애심이 없어지기만 하면 도는 하나도 막힘없이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대주(大珠)스님의 <돈오입도요문(頓悟入道要門)>에서는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두 가지 성품이 공해져 저절로 해탈한다”고 했다.
또한 증애심이란 중생의 번뇌를 일으키는 근본으로 108번뇌설에 나오는 설명처럼, 좋아하고 싫어하는 분별은 번뇌를 야기한은 출발이 된다. 육근(六根)이 육진(六塵)을 대할 때 호(好) 오(惡) 평등(平等)과 고(苦) 락(樂) 삼수(三受)의 분별이 일어나 36가지 갈래가 나눠지며, 여기에 일념의 삼세(三世)가 배대되어 108번뇌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결국 중생은 번뇌 때문에 도를 보지 못하는 것이며, 번뇌가 움직이는 심리는 바로 좋아하고 미워하는데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