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근득지(歸根得旨)요 수조실종(隨照失宗)이니
(근본에 돌아가면 뜻을 얻지만 비춤을 따르면 종지를 잃는다)
근본에 돌아간다는 것은 경계를 따라가는 식심을 자신의 본성자리로 거두어 들인다는 뜻이다. 선문(禪門)에서는 회광반조(廻光返照)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데, 이것은 객관의 대상을 찾아 불멸을 일으키는 식심(識心)을 쉬게 하고 고요히 내면의 자성을 응시하려는 것이다. 또 <능엄경>에는 반문문성(反聞聞性)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귀가 소리를 듣는 경우에는 이근(耳根)이 성진(聲塵)을 따라가는 것이지만, 성진인 소리를 듣지말고 듣는 주체, 즉 듣는 성품을 듣는다는 것이다.
수조(隨照)란 일어나는 식심(息心)을 따라 객관의 경계를 향하는 번뇌망상의 움직임인데, 이것이 횡행하면 근본을 망각하여 도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수유반조(須臾返照)하면 승각전공(勝却前空)이니라.
(잠깐 돌이켜 비춰보면 앞은 공함보다 뛰어나니라.)
잠깐동안 돌이켜 비춰보면 객관을 향하여 치구(馳求)하던 모든 망경계(망경계)는 사라지고, 주관과 객관의 대(對)가 끊어진 도의 당체를 파악하게 되는데, 여기서는 객관의 경계를 부정하여 말하던 공(空)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즉 현상의 존재를 공화(空化)시켜 객관적으로 나타나는 공의 경계보다 반조하는 찰나에 체득하는 무위(無爲) 의 도가 훨씬 수승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반조(返照)는 사골르 초월한 직관의 세계인 반면, 앞 구절에서 말한 수조(隨照)는 마음이 경계를 따라 움직이는 사고를 말하는 것이다.
지안 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8년 12월 제9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