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언다려(多言多慮)하면 전불상응(轉不相應)이요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더욱더 상응치 못하는 것이요)
도(道)의 진리는 말을 듣고 이해하거나 생각으로 궁리해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갈 곳이 없어진[言語道斷 心行處滅] 경지에서 터득되어지는 것이 도이므로 말과 생각으로써 접근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말과 생각으로써 도에 접근하려 한다면 더욱더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
‘도는 아는 데도 속하지 아니하고 모르는데도 속하지 않는다[道不屬知不知]’라는 말처럼, 알고 모르는 지식의 대상이 아닌 도를 이론적 논의나 사변적 논리로 설명하려는 것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절언절려(絶言絶慮)하면 무처불통(無處不通)이니라
(말과 생각이 끊어지면 통하지 않는 곳이 없느니라)
말길이 끊어지고 또한 생각이 나아갈 곳이 없는 경지에 이르면 도는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식심(識心)의 분별이 사라진 경계에서만 도를 만날 수 있는 것이지, ‘이것이냐 저것이냐’며 기호에 맞추고 비위에 맞추는 취사심(取捨心)에서는 도를 만나지 못한다.
어느 산이든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더 올라갈 길이 없어 사방이 허공으로 트여버리듯이, 이치의 궁극에 이르면 모든 것이 도(道)로 통해진다. 그러므로 ‘대도는 문이 없다[大道無門]’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상대적 차별에서는 말이 필요하며 생각도 일어나지만, 절대의 무분별에서는 말이 없고 생각도 끊어지는 것이다.
요산 지안 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8년 11월 제9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