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원품 (9) – 수희공덕원

<경문>

선남자여, 공덕을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온 법계, 허공계, 시방삼세의 일체 부처님 국토의 작은 티끌 수만큼의 부처님께서 처음 발심하고부터 완전한 지혜를 얻기 위하여 부지런히 복덕을 닦되,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기를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부처님 국토의 작은 티끌 수 겁을 지내고 낱낱 겁마다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부처님 국토의 작은 티끌 수만큼의 머리와 눈과 손발을 버렸느니라. 이와 같은 일체의 행하기 어려운 고행으로 가지가지 바라밀 문을 원만하게 하고 가지가지 보살의 지혜경지에 체험해 들어가 부처님의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고 나아가 열반에 드신 뒤 사리를 분포할 때까지의 있는 선근을 내가 모두 함께 기뻐하며, 저 시방 일체 세계 여섯 갈래의 중생 세계에 네 가지로 태어나는 모든 종류들의 가지고 있는 공덕을 한 티끌만한 것이라도 내가 모두 함께 기뻐하며, 시방 삼세 일체 성문과 벽지불, 그리고 수행의 과정에 있거나 수행의 과정을 마친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공덕을 내가 함께 기뻐하며, 일체 보살들이 닦는 한량없는 행하기 어려운 고행으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구하는데 있는 광대한 공덕을 내가 모두 함께 기뻐하리라 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며,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할지라도 나의 이 함께 기뻐하는 것은 다함이 없이 해서 생각마다 계속하여 끊임이 없어, 몸과 말과 뜻으로 하는 일에 조금도 지치거나 싫증을 내지 않고 하는 것이니라.

<풀이>

‘수희 공덕’이라는 말은 남이 잘되는 일을 내일처럼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인간 상호관계에서 타인의 장점을 발견하여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본받으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미덕이 되는 일이다. 남을 나와 대립되는 관계로 볼 때는 남이 잘되는 것이 상대적으로 나의 열등을 가져오는 것이 되어 스스로의 마음에 불만이 쌓이게 된다. 하지만 남이 잘되는 것이 내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나보다 나은 사람의 덕택을 내가 입게 되는 결과가 오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의 가치를 똑같이 가지며 동시에 수행으로서 삶을 살아야 할 과제를 가지고 있다. 혼자 살 수 없는 공생의 원리에서 볼 때 나와 남은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 보완하여 조화를 이루는 화합의 관계이다.

때문에 서로의 공덕을 함께 닦고 베풀면서 축하하는 마음이 되어야 삶 자체가 성숙될 수 있는 것이다. 경의 본문에서는 부처님 수행과정에서 성취되는 공덕과 성문이나 연각, 보살들의 수행의 공덕을 함께 기뻐한다고 하였다. 이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치를 우선하는 수행의 정신이 발휘될 때 세상은 아름답고 기쁜 세상이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무절제한 욕망이 난무하여 자기의 욕구를 남보다 앞서 이루려고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모함하는 악습은 이 행원, 곧 공덕을 따라 기뻐하는 마음으로 없앨 수 있는 것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 속담은 남이 잘되는 일에 심술이 난다는 뜻으로 인간의 마음씨가 곧잘 고약해지기 쉬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모든 불화가 기실은 서로 대립하여 시기 질투하는 데서 비롯된다. 감사드려야 할 곳에 감사드리지 않고 축하해야 할 일을 축하하지 않아 배은망덕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자신의 공덕을 유실하는 일이고 나쁜 과보를 자초하는 일이다. 공덕이란 인간 공유의 것으로 네 공덕 내 공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진리는 소속이 없다. 하늘의 태양이 어느 나라에 속한 것이 아니듯이 참 이치가 들어 있는 법은 일체의 공덕을 갖췄으되 어느 한쪽에 속하여 자타를 대립시키지 않는다.

‘수희공덕원’의 이 법문은 화목의 원리를 밝혀 놓은 것이다. 증오와 분노를 녹여버리는 대자비의 빛이 함께 공덕을 기뻐하는 마음에서 무한히 비추어져 나오는 것이다. 마치 유쾌한 웃음이 육체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처럼 마음이 밝고 기쁘면 삶의 고단함과 긴장이 풀어지기 마련이다.

불교는 안락을 구하는 종교이다. 뭇 삶의 고통에서 해방되어 안락을 누리고자 수행의 과제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를 세워 오늘의 내 자신을 바로 직시할 때 내가 할 일은 무엇이겠는가? 바로 보현의 행원이다. 행원으로 사는 사람이 있을 때 인간의 인간다운 수준이 나타난다. 또한 함께 기뻐하는 정신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한층 밝고 온화하게 만든다. 밝은 희망을 걸고 너와 내가 화목하는 세상, 그 세상이 바로 부처님 나라이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4년 12월 제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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