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원품 (25) – 중송분 6

<경문>

빠르고 두루한 신통의 힘과 모든 데를 두루 드는 대승의 힘과

지혜로운 행으로 널리 닦는 공덕의 힘과 위엄 있는 신력으로 모두를 덮어주는 큰 자비의 힘과

온갖 것 깨끗이 해 장엄하는 뛰어난 복력과 어디에도 기대지 않는 지혜의 힘과

선정과 지혜 방편의 위신력과 모든 것 쌓아 모은 보리의 힘과

청정한 일체 선업의 힘과 일체 번뇌를 없애버린 힘과

일체 마군을 항복시키는 힘과 보현의 모든 행을 다 이룬 힘으로

널리 모든 국토를 깨끗이 하며 일체 중생을 해탈케 하며

잘 능히 모든 법을 분별하며 능히 깊이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며

널리 능히 모든 행을 청정히 하여 일체 모든 원을 원만히 하고

모든 부처님을 친히 가까이 공양해서 영겁이 지나도록 수행에 게으르지 않으리.

삼세 모든 부처님의 가장 뛰어난 보리의 행원을 내 모두 공양하고 원만히 닦아서 보현행으로써 보리를 깨달으리

<풀이>

생명 현상을 에너지 현상으로 풀이하는 과학의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생명은 힘의 발산이라 할 수 있다. 힘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힘이 ‘영 상태’가 되면 그 생명은 살아 활동하는 것이 중지되고 죽음이 돼버린다. 중생의 세계는 힘을 과시하면서 강자가 약자를 압도하는 역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생물학적인 견지에서 말하는 약육강식도 힘의 논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나쁜 업을 유발하는 차원에서 이야기될 때 문제가 된다. 마찬가지로 수행의 세계나 정진의 세계에서도 엄연히 힘이 통하고 있다. 보현행원의 실천에 있어서도 많은 힘이 투입되어지고 있음이 나타난다. 신통력에서부터 대승의 힘, 공덕의 힘, 대자의 힘, 수승한 복력 지혜의 힘, 위신력, 보리력, 선업력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힘을 쏟아 일체 모든 원을 원만히 한다고 하였다.

사람이 어떤 일을 도모할 때 그 일을 성취하고자 하는 노력하는 힘이 성패를 좌우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보현의 행원은 곧 끝없는 정진력이다. 보살행의 실천을 보통 6바라밀로서 설하고 있으나 화엄경에서는 10바라밀을 설한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여섯에 ‘방편, 원(願), 역(力), 지(智)’를 더한다. 이 중 아홉 번째의 ‘역바라밀’이 수행의 추진력이요, 행원의 실천력이다. 인간의 활동에 있어서 어떤 일에 힘을 얻어야 한다. 힘을 얻지 못하면 활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수행을 완성하는 것도 결국 힘을 얻는 것이다. 선문(禪門)에서는 수행의 궁극 목적인 생사해탈을 ‘생사를 대적하는 힘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에 힘을 얻어야 한다. 일에 능숙해지고 통달되어질 때 그 일의 어려움이나 힘든 괴로움이 없어지는 것이며 이때 힘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보현의 행원 속에는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정신력이 언제나 갖추어져 있고, 또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대승의 최고 경전인 화엄경에서는 10수를 빈번히 사용하고 있다. 품명에 10자가 들어가는 것이 수행의 지위를 나타내는 10주품, 10행품, 10회향품, 10지품, 그리고 십지의 수행을 완성하여 삼매를 얻을 때 얻는 초능력적인 경지를 설명하는 10정품, 10인품, 10통품 등이 있고, 뿐만 아니라 각 품을 설하는 설주가 등장할 때 돌림자를 같이 쓰는 10명의 보살이 동시에 등장하는가 하면, 수행의 종목이나 그 이익을 말할 때도 꼭 10가지씩을 묶어 말한다. 이렇듯 10수 법문이 자주 나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10은 10진법의 완수로 모든 것을 다 채웠다는 만수의 뜻을 가지고 있다. 또 이 10은 언제나 10바라밀은 뜻한다고 중국의 화엄대가 통현 장자는 말했다. 말하자면 화엄경에서는 바라밀 완성의 폭을 더 넓혀 말한다는 것이다. 보살의 원력이 완전히 발휘되고 또 그 공덕이 십분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말이다. “내가 모두 보리의 행원을 원만히 하여 보현의 행으로써 보리를 깨닫겠다.”는 마지막 본문이 행원품의 대의라 할 수 있는 말이다. 이타원력의 동적인 수행을 일으키고 또한 그러한 원력으로써 보리를 얻겠다는 이 말이 기실 화엄경다운 말이다.

예로부터 ‘화엄도리’라는 말을 자주 써왔다. 화엄의 이치에 맞는 어떤 방식을 두고도 화엄도리라고 하였는데, 이 화엄도리가 바로 법계무진연기의 체성을 터득한 융통무애의 원융산림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와 너를 동체로 보고 서로를 일체화시키는 것이 화엄도리이다. 마찬가지로 보현행원이 나와 너를 하나가 되게 하는 통합정신으로 인생을 조화롭게 살고, 세상을 조화로운 세상으로 만들어 가자는 의미이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6년 4월 제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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