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원품 (22) – 중종분 4

<경문>

내 항상 모든 중생들과 사이좋게 미래 일체 겁이 다하도록

언제나 보현의 광대한 행을 닦아 위없는 큰 보리를 원만히 하리

나와 같이 행하는 자 있다면 어느 곳에서든지 함께 모여서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업을 똑같이 하고 일체 행원을 함께 닦아 배우리.

나를 이롭게 하는 선지식이여! 나를 위해 보현행을 보여주시고

항상 나와 함께 모여 만나서 내게 항상 환희심을 내게 하소서

언제나 부처님을 만나 뵈옵고 모든 제자들이 에워싸거든

저들에게 광대한 공양을 일으키고 미래 겁이 다하도록 싫증내지 않으리.

부처님의 미묘한 법 지녀서 일체 보리행을 빛내고

끝내 보현도를 청정히 하여 미래 겁이 다하도록 닦아 익히리.

내 일체 중생들 있는 속에 닦은바 복덕 지혜 다함이 없게 하고

선정·지혜 방편과 해탈로 다함없는 공덕장 얻게 하소서

한 티끌 속에 티끌 수 국토 있으며, 국토마다 생각할 수 없는 부처님 계셔

부처님 처소마다 모여 있는 대중 속에 내 항상 보리행 연설함을 보여주리.

<풀이>

불교는 인간의 화목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긴다. 불·법·승 삼보 가운데 승보의 가치는 화합과 화목에 있다. 원래 ‘승가(僧伽 samgha)’는 ‘화합된 사람들’이란 뜻이다. 다시 말하면, 사이좋게 모여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는 바로 이상적인 인간사회의 한 전형을 말하고 있다. 공동사회의 인간관계가 화목하게 어울려 있는 건 평화와 안녕이 보장되는 낙원이다. 불교의 불국토는 삶의 고통이 없는 이상향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나라는 죄악이 발생하지 않는 곳이고, 동시에 불화가 야기되지 않는 곳이다. 보현의 행원이 이루어지면 자타의 관계가 원만해져 좋은 사이가 유지된다. 내가 남을 이롭게 할 때 우선 나와 남의 사이가 좋아지는 것이고 사이가 좋으면 좋은 일이 생기게 된다. 사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이것보다 우선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모든 반목과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보현의 행원을 갖춘 ‘원의 왕’이 되는 것이다. 보리행 곧 각행을 원만히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삶의 참 가치이므로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세속의 물정을 가지고 참 진리에 대한 변명을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삼세의 인연을 동시에 가지고 산다.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인연이 인과의 법칙에 의해 과보를 가져온다. 때문에 우리들 일상의 업이 인과의 인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여 무엇보다도 좋은 인을 만들려는 노력을 기우려야 한다. 이러한 생활의 정신이 보현의 정신이다. 『납자십게(衲子十偈)』에 나오는 게송에 인과의 이치를 비유하여 설명해 놓은 글이 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그림자는 물체의 모양대로네

삼시(三時)의 업의 과보 거울이 물체 비추듯 하고

스스로지어 스스로 받는 것이라 회피할 수 없거늘

어찌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할 수 있으랴.

인과법칙을 믿을 때 불교의 교리를 받아들여 법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진다. 인과법을 무시하는 것을 오역죄(五逆罪)의 하나로 인식하여, 부처님의 법을 배반한다고 보았다. 사실 인과를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은 바르게 된다. 이 법은 인간의 윤리와 도덕을 낳는 모법이다. 물론 인간 행위의 악이 사람을 상대하는 조건이 되어 외면하거나 소외시키는 배척의 대상으로만 간주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인의 수신에 있어서 인을 과보다 소중히 먼저 생각하는 정신이 있어야 행원이 살아남을 의미한다. 업인이 선인이 될 때 보살행이 닦아지므로 선법의 실천과 인과는 그 궤를 같이하게 된다.

인에 상응하는 과가 나타나는 시기가 다른 것을 두고 ‘삼시업’으로 구분한다. 금생에 지은 업이 금생에 과보를 가져오는 것을 현생업(現生業)이라 하고, 내생에 과보를 가져오는 것을 ‘순생업(順生業)’이라 한다. 그리고 몇 생을 지난 후에 과보가 나타나는 것을 ‘순후업(順後業)’이라 한다. 마치 식물의 종자가 발아에 소요되는 시간이 다른 것처럼 업이 지어지고 그 과보가 도래하는 시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자신의 업종자가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6년 2월 제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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