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베라냐에서 생긴 일

부처님게서는 오백 명의 비구들과 함께 사밧티를 떠나 베라냐 마을에 이르셨다. 네란자라 강변의
만다라바 나무 아래 쉬고 계실 때 그 곳 사람들은 부처님 일행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문안을 드리려고
모여 들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설법하여 그들을 즐겁게 하셨다.
마을의 어른인 베라냐 바라문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기뻐한 나머지, 부처님께 석 달 동안의 안거를
여기를 지내달라고 간청하였다. 부처님은 잠잠히 그의 청을 받아들이셔 베라냐에서 여름철을
지내시기로 하였다. 베라냐 바라문은 올릴 공양거리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마군의 심술로 그는 갑자기
정신이 흐려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부처님과 오백 명 비구들은 공양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몹시 곤란했다. 거기에다 흉년까지 겹쳐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형편이었다.
그때 마침 팔리국의 말장수가 오백 마리의 말을 몰고 지나가다가 이 마을 가까운 곳에서 우기를
지내고 갈 양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비구들은 하는 수 없이 그에게 가서 먹을 것을 빌었다.
말에게 먹일 보리를 얻어다 부처님과 비구들이 끼니를 이어갔다.
목갈라나는 생각 끝에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요즘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 주는 형편이라 걸식하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비구들은
얼굴이 마르고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신통력 있는 비구들에게 웃다라쿠루
같은 데에 가서 자연산의 쌀을 가져와도 좋다고 하신다면 곧 가겠습니다.”
“신통력 있는 비구들은 그 곳에 가서 쌀을 가져올 수 있겠지만, 신통력이 없는 비구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신통력이 있는 비구들은 자기 마음대로 가고, 신통력이 없는 비구들은 제가 신통력을 써서 데리고
가겠습니다.”
“아서라. 그만 두어라. 지금 너희들 가운데 신통을 얻은 비구는 그럴 수 있겠지만, 미래의 비구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비구에게는 생각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이 있다. 생각해야 하고 행동해야 할
일을 하면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게 될 것이고, 생각해서는 안 될 일과 행동해서는 안될 일을
하면 바른법이 오래 머물 수 없다.”
이때 사리풋타는 조용한 숲속에서 선정에 들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떤 인연으로 불법이 이 세상에 오래갈 수 있고, 혹은 오래갈 수 없게 되는 것일까’
그는 부처님 앞에 나아가 이 뜻을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과거 모든 여래의 가르침을 보면 어떤 것은 오래 갔고 어떤 것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 가르침이
오래 존속된 부처님은 반드시 계율을 제정하여 제자들에게 실천하도록 가르쳤다. 계율을 받아
지님으로써 바른 법을 수행하는 데에 게으른 생각이 나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
‘이 일은 하고 이 일은 하지 마라. 이것은 끊고 이것은 마땅히 갖추어 지켜라.’ 이와 같이 분별해
가르치지 않았어도 부처님과 제자들이 살아 있을 동안은 잘못됨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입멸한 후에는 갖가지 이름과 서로 다른 성과 온갖 집안에서 출가하여 저마다 제
성질을 부리게 되니, 바른 법이 빨리 멸하여 오래 머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을 높은 탁상에 올려만 놓고 붙들어 매는 끈이 없으면 머지 않아 바람에 불려 흩어져
버리는 것과 같다.
사리풋타여, 여래의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려면 반드시 엄격한 계율이 있어야 한다.
이 계율로써 모든 제자들을 잘 가두어 그릇된 행동을 미리 막아야 할 것이다. 잘 정돈되어 흩어지지
않는 꽃다발은 끈으로 묶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들은 사리풋타는 크게 감동하여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일찍이 듣지 못했던 말씀입니다. 그러시다면 그 계율을 지금 곧 제정해 주십시요.
모든 비구들에게 청정한 수행으로 바른 법이 오래 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요.”
“사리풋타여, 아직 가만 있거라. 여래는 그 때를 알고 있다. 앞으로 비구들이 명예나 이해 관계에
얽히게 되면 허물을 범하게 될 것이다. 그때 그것을 막기 위해 비구들에게 계율을 제정하여 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잘못된 일이 없으므로 그럴 필요가 없다. 해지지 않은 새옷을 미리 기울 것은
없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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