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인 대(堪 忍 待) 이야기

옛날 어느 마을에 순박한 농부가 한 사람 살고 있었다. 결혼을 하였으나 아직 자녀가 생기지 않았고 가난하였지만 부부가 둘이서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마침 농한기가 되어 일손이 바쁘지 않을 때 남편 되는 농부가 혼자 마을 뒤 산속에 있는 절을 찾아가게 되었다. 날씨가 제법 더운 여름날이었다. 절에 가서 마당을 돌며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그 절에 계시는 노스님께서 문을 열어 놓고 지․ 필․ 묵을 챙겨 글씨를 쓰고 계셨다. 밖에서 글씨 쓰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농부는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글씨 한 점을 얻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 염치불구하고 스님께 부탁을 드렸다. 평생 자기가 좌우명을 삼고 살아갈 가르침을 하나 써 주실 수 없느냐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스님께서 감(堪), 인(忍), 대(待)란 세 글자가 적힌 글씨 한 폭을 주면서 이 농부에게 간단한 법문을 해 주었다.

“중생이 사는 사바세계는 견디고 참고 기다리면서 사는 세상이니 힘든 것을 잘 견디고, 화나는 것을 잘 참고, 희망을 갖고 미래를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라 말해 주었다.

농부는 스님께 감사드리고 그 글씨를 받아 집으로 내려왔다.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그는 받아온 글씨를 안방 벽에 붙였다. 그리고 이 글씨에 적힌 세 글자를 그대로 보고 따라 베껴 여래 개의 글씨를 집안 곳곳에 붙이기 시작했다. 초라한 시골집인 초가집 안팎이 온통 여기저기 감․ 인․ 대라는 글이 붙은 집이 되어버렸다.

얼마 후에 이 농부는 먼 곳으로 출타를 할 일이 생겼다. 집을 떠나 다음날이나 돌아올 수 있는 원거리의 출행을 하게 된 것이다. 밤에 부인 혼자를 두고 가게된 것이 마음에 걸려 생각다 못한 농부는 다음날 오겠다고 말하고 집을 떠났음에도 밤에 마라톤을 하여 한 밤중에 자기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 이었다 희미한 달빛에 신발 벗어 놓는 댓돌 위에 낯선 남자 신발 하나가 눈에 띄었다. 자기 부인 신발 뿐이어야 할 방문 앞에 웬 신발이 놓여 있는 것일까? 농부는 수상쩍은 생각이 들어 초가집 뒤쪽으로 돌아가 봉창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고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희미한 달빛이 봉창에 비쳐와 방안의 이불이 어렴풋이 보이고 이불 밖으로 두 사람의 머리가 보이는 것이었다. 순간 농부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 가슴을 때렸다. 필시 이것은 자기 부인이 외간 남자와 동침을 하는 불륜의 현장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농부는 치를 떨었다. 이럴 수가…. 농부는 솟구치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부엌에 들어가 식칼을 움켜쥐었다.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방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가 두 사람의 가슴팍을 내리 찌를 참으로, 부엌문을 밀치고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 때 부엌문 위에 써 붙여 두었던 감․ 인․ 대 글씨 쓴 종이가 떨어졌다. 순간 농부는 칼을 쥐고 방안으로 들어가려던 동작이 한 박자 멈춰지면서 견디고 참고 기다리라던 감․ 인․ 대를 써 준 스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방문 앞 위에도 붙여둔 감․ 인․ 대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다시 감․ 인․ 대를 생각하면서 방 문고리를 잡으려던 손길이 또 한 박자 멈춰졌다. 울화가 치밀어 숨소리만 여전히 씩씩거렸다.

이때였다. 방안에서 “누구요?” 하는 부인의 음성이 들리더니 인기척을 느꼈는지 부인이 방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었다. 손에 칼을 쥐고 있는 농부를 본 부인은 “자고 온다더니 언제 돌아왔어요? 왜 칼을 쥐고 있어요?” 태연하게 묻는 것이었다. 방안에 불이 켜이고 또한 사람 비구니스님이 나왔다. 농부는 자기의 의심과 행동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처가의 집안에 여성으로 출가한 스님이 있어 만행 도중에 우연히 자기 집에 들렀던 것을 농부의 부인이 혼자 있으니 하룻밤 같이 지내고 가 달라고 사정을 하여 묵게 된 것이었다. 농부는 아찔했다. 행여나 사람을 죽이려던 큰 사고를 감․ 인․ 대 덕분에 모면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사람의 오해가 엄청난 죄악을 부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이야기다. 근본적으로 볼 때 인간의 번뇌를 조장하는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오해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도(道)를 알지 못하고 법(法)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많은 오해를 유발하고 사는 것이 중생이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이야말로 나중에 후회할 일이고 자기 인생을 손해나게 하는 것이다. 또 모르고 나쁜 업을 짓는 것이 알고 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말도 있다. 불덩이를 잡을 때 모르고 잡는 것 보다 알고 잡는 것이 화상을 덜 입는다고 했다. 오해 없이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오해는 차라리 모르는 것만 못하다.

요산 지안 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8년 8월 제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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