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편 조사어록
제4장 참선에 대한 경책
- 화두로 병을 물리쳐라
내 나이 스물에 이 일 있음을 알고 서른 둘에 이르도록 열 일고여덟 분의 장로를 찾아가 법문을 듣고 정진했으나 도무지 확실한 뜻을 알지 못했었다.
후에 완산 장로를 뵈오니 ‘무’ 자를 함구하라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물네 시간 동안 생생한 정신으로 정진하되,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 하고 닭이 알을 안듯이 하여 끊임없이 하라. 투철히 깨치지 못했다면 쥐가 나무 궤를 쏠 듯이 결코 화두를 바꾸지 말고 꾸준히 정진하라. 이와 같이 하면 반드시 밝혀 낼 시절이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참구하였더니 십팔 일이 지나서 한 번은 차를 마시다가 문득 부처님이 꽃을 들어 보이시니 카샤파가 미소한 도리를 깨치고 환희를 이기지 못했었다.
서너 명의 장로를 찾아 결택을 구했으나 아무도 말씀이 없더니, 어떤 스님이 말하기를 “다만 해인 삼매로 일관하고 다른 것은 모두 상관하지 마라.” 하시기에 이 말을 그대로 믿고 두 해를 보냈다.
경정 오년 유월에 사천 중경에서 극심한 이질병에 걸려 죽을 지경에 빠졌으나 아무 의지할 힘도 없고 해인 삼매도 소용없었다. 종전에 좀 알았다는 것도 아무 쓸데가 없어, 입도 달싹할 수 없고 손도 꼼짝할 수 없으니 남은 길은 오직 죽음뿐이었다. 업연의 경계가 일시에 나타나 두렵고 떨려 갈팡질팡할 뿐 어찌할 도리가 없고 온갖 고통이 한꺼번에 닥쳐왔었다.
그때 내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어 가족에게 후사를 말하고 행로를 차려 좋고 좌복을 높이 고이고 간신히 일어나 좌정하고 삼보와 천신에게 빌었다. ‘이제까지 모든 착하지 못한 짓을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바라건대 이 몸이 이제 수명이 다하였거든 반야의 힘을 입어 바른 생각대로 태어나 일찍이 출가하여지이다. 혹 병이 낫게 되거든 곧 출가 수행하여 크게 깨쳐서 널리 후학을 제도케 하여지이다.’
이와 같이 하고 ‘무’ 자를 들어 마음을 돌이켜 스스로를 비추고 있으니 얼마 아니하여 장부가 서너 번 꿈틀거렸다. 그대로 두었더니 또 얼마 있다가는 눈까풀이 움직이지 않으며, 또 얼마 있다가는 몸이 없는 듯 보이지 않고 아직 화두만이 끊이지 않았다. 밤늦게 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니 병이 반은 물러간 듯했다. 다시 앉아 삼경 사점에 이르니 모든 병이 씻은 듯이 없어지고 심신이 평안하여 아주 가볍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