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대승경전
제8장 원만한 깨달음
- 헛꽃임을 알라
문수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자비하신 부처님, 여기에 모인 대중들을 위해 부처님께서 처음 닦으신 법다운 수행과, 보살이 청정한 대승의 마음을 내어 중생들의 모든 병을 버리고 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서 대승을 구하는 미래의 중생들이 그릇된 소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나자, 법왕에게 큰 다라니문(陀羅泥門)이 있으니 그 이름이 원각이오. 모든 청정과 진여와 보리와 열반과 바라밀(婆羅密)로써 보살을 가르치며, 모든 여래의 처음 수행은 다 원각을 의지해 무명을 끊고 불도를 성취한 것이오. 무명이란 무엇인가 하면, 중생들이 시작없는 옛적부터 갖가지로 뒤바뀌어 길 잃은 사람이 동서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대를 자기 몸이라 하며 사물을 느끼는 인식을 자기 마음이라 합니다. 마치 병난 눈이 허공에서 헛꽃과 겹친 달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오. 그러나 실로 허공에는 꽃이 없소. 그것은 환자의 잘못된 집착인 것이오. 이 잘못된 집착은 허공 자체를 잘못 알 뿐만 아니라, 다시 저 꽃이 생긴 원인까지도 모르게 되오. 이로 말미암아 그릇되게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니, 이것을 무명이라 합니다. 무명은 실체가 없소. 마치 꿈속에서 가졌던 물건이 깨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허공의 헛꽃도 없어지면 없어진 곳도 알 수가 없소. 그 이유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오. 본래 생이 없건만, 중생들이 잘못 생멸을 보게 되므로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하는 것이오. 여래의 첫 수행 단계에서 원각을 닦는 이가 이 헛꽃을 알면 윤회도 없고 생사를 받을 몸과 마음도 없을 것이오. 없애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라 본래 성품이 없기 때문이오. 이렇게 아는 것도 허공과 같으며, 허공과 같은 줄 아는 것도 곧 헛꽃이오. 그렇다고 아는 성품이 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오. 있고 없음을 함께 버려야 참으로 정각을 수순한다고 말할 수 있소. 왜냐하면 허공과 같은 성질이고 항상 움직이지 않으며, 여래장 가운데서 나고 죽음이 없으며, 지견이 없고 법계의 성품처럼 절대 원만하여 시방세계에 두루하기 때문이오. 이것을 이름하여 초심자의 법다운 수행이라 합니다. 보살은 이것으로써 대승으로 향한 깨끗한 마음을 낼 것이며, 말세 중생들도 여기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그릇된 지견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