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대승경전
제6장 지식과 지혜
- 육바라밀을 성취하려면
대혜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육바라밀을 완전히 성취하면 최상의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육바라밀이며 어떻게 하면 그것을 완전히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바라밀에는 세 가지가 있소. 즉 세간의 바라밀과 출세간의 바라밀과 출세간 최상의 바라밀이오. 세간의 바라밀이란 어리석은 범부가 나와 내 것에 집착하고, 그 두 가지 치우친 소견에 떨어져 훌륭하고 묘한 경계를 얻기 위해 바라밀을 행하고 물질적인 현상과 과보를 구하는 것이오. 어리석은 범부는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 등 여섯 바라밀을 행하여 범천에 나기도 하고 세간의 법인 다섯 가지 신통을 구하기도 하니 이것을 세간의 바라밀이라 합니다.
출세간의 바라밀이란 성문과 독각이 성문과 독각에 알맞은 열반의 마음을 가지고 수행하는 바라밀이오. 어리석은 범부들이 제 몸을 위해 열반의 즐거움을 구하려고 세간의 바라밀을 행하는 것처럼, 성문과 독각도 제 몸을 위해 열반의 즐거움을 구하려고 출세간의 바라밀을 행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구하는 것은 구경의 즐거움이 아니오. 대혜보살, 출세간 최상의 바라밀이란 자기 마음의 허망한 분별로써 바깥 경계가 나타난 것임을 분명히 아는 것이니, 그때에는 오직 그 마음만이 안팎의 법을 나타낸 것임을 여실히 압니다. 왜냐하면, 허망한 분별로 분별하지 않고 안팎의 마음과 물질의 모양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오. 보살은 모든 법을 똑바로 알면서도 일부러 보시바라밀을 행하니, 그것은 일체 중생에게 두려움이 없는 평안한 즐거움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보시(布施)바라밀이라 합니다.
보살은 모든 법을 관찰하여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서도 맑고 시원한 법을 따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지계(持戒)바라밀이라 합니다. 보살은 또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고행을 참으면서 그 경계가 진실이 아님을 분명히 압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인욕(忍慾)바라밀이라 합니다. 보살은 어떻게 정진의 행을 닦는가 하면, 초저녁과 밤중과 새벽을 가리지 않고 항상 부지런히 수행하여 진여의 법을 그대로 따라 온갖 분별을 끊소. 그러므로 그것을 정진(精進)바라밀이라 합니다.
보살은 분별하는 마음을 떠나 저 이교도들의 ‘취할 수 있다’ ‘취할만하다’는 경계의 모양을 따르지 않소. 그러므로 그것을 선정(禪定)바라밀이라 합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지혜바라밀인가 하면, 보살은 제 마음의 분별하는 모양을 분명히 관찰하여 분별하는 마음으로 보지 않으므로 두 가지 치우친 견해에 떨어지지 않소. 진실한 수행에 의해 한 법도 나거나 사라지는 것을 보지 않고 제 마음으로 증득한 거룩한 행을 닦소. 그러므로 그것을 지혜(智慧)바라밀이라 합니다. 바라밀의 이치를 이와 같이 완전히 성취하면 그는 최상의 바라밀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