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편 대승경전
제6장 마음과 생각
- 분별의 지혜로는 헤아릴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간 왕의 마음을 아시고 다시 몸을 나타내셨다.
왕은 매우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법도 버려야 할 것인데 하물며 법이 아닌 것이랴’하셨습니다. 어째서 법과 비법을 버려야 하며, 또 법과 비법은 무엇을 가리킨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를 들어 말하면, 병은 깨어지는 것이므로 그 실체가 없는 것이오. 그런데 사람들은 병의 실체가 있는 줄로 압니다. 이와 같이 보는 법을 버리지 않으면 안되오. 안으로 자기 마음의 본성을 보면 밖으로 집착할 것이 없소. 이와 같은 바른 견해로 법을 보는 것이 곧 법을 버리는 것이오. 비법이라고 하는 것은 토끼뿔이라든지 돌계집의 자식처럼 사실이 없는 것을 가리키오. 이처럼 집착할 것이 못되기 때문에 버려야 합니다. 여래의 법은 모든 분별과 쓸데없는 논란을 떠나서 있소. 진실한 지혜만이 이것을 증득합니다.
중생들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법을 설하고 차별을 떠난 지혜를 여래라고 합니다. 여래는 진실한 지혜와 하나이기 때문에 분별의 지혜로는 헤아릴 수 없소. 왜냐하면 중생의 마음은 그 대상에 따라 빛깔과 형상을 인식하지만, 여래는 분별을 떠났기 때문에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오. 벽에 걸린 그림 속 사람에게 감각이 없듯이, 중생들도 꼭두각시와 같아 업도 없고 과보도 없는 것이오.
이와 같이 보는 것을 바른 견해라 하고, 이와 같이 달리 보는 것을 분별의 소견이라 합니다. 분별에 의하기 때문에 법과 비법에 집착하는 것이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물에 비치는 자기 얼굴을 보고 혹은 등불이나 달빛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보고 분별을 일으켜 집착하는 것과 같은 것이오. 법이라든가 비법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분별에 지나지 않소. 분별에 의지하기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허망한 것에 팔려 열반을 얻지 못하는 것이오. 열반이란 여래의 장이오,. 그러므로 스스로 지혜의 세계에 들어가 깨달음의 선정을 얻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