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어느날 밤, 싯다르타는 왕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마지막 밤이나마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아쇼다라와 함께 궁녀들의 노래와 춤을 즐거운 듯 구경했다.
그리고 밤이 깊었을 때 싯다르타는 평화스럽게 잠든 아내 아쇼다라와 어린 아기를 번갈아 보았다.
이 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평화가 어머니와 아기의 잠든 얼굴에 깃들어 잇었다. 싯다르타는 속으로 그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모든 사람들이 깊이 잠든 한밤중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밤에 그토록 법석이던 궁중이 이제는 무덤처럼 적막했다. 드넓은 대청마루에서는 지난밤 노래하고 춤추던 궁녀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자고 있었다. 어떤 궁녀는 이를 갈면서 자는가 하면 입을 벌린채 침을 흘리는 여자도 있었다.
그리고 또 어떤 궁녀는 이불을 걷어차 버리고 추한 모양으로 자고 있었다. 피로에 지쳐 곯아 떨어진 궁녀들의 몰골은 아릅답게 치장하고 있을 때와는 너무도 달랐다. 이광경을 본 싯다르타는 그들이 가엾었다. 또한 인간의 꾸밈없는 모습을 거기서 본 듯했다.
밖으로 나와 시종이 살고 있는 집 앞으로 다가갔다. 낮은 목소리로 시종 찬다카를 깨워 말을 끌고 나오도록 했다. 싯다르타는 말에 올랐다. 그가 말을 타고 궁중을 빠져나가는 것을 찬다카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찬다카는 무언가 마음에 잡히는 일이 있었지만 태자의 그 엄숙하고도 비장한 표정을 보고서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성문을 나올 때 태자는 속으로 맹세를 했다.
‘내가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다시 이 문으로 들어오지 않으리라.’ 싯다르타는 오랜 세월을 두고 갈망하던 출가의 길을 마침내 이렇게 해서 떠나게 되었다. 태자의 행차치고는 너무도 외로운 길이었다. 원래 출가 사문의 길은 혼자서 가는 고독한 길이다.
싯다르타는 성을 벗어나자 길을 재촉했다. 말발굽 소리만이 밤하늘에 울려 펴졌다. 이따금 숲에서 밤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올 뿐 태자와 찬다카는 한 마디도 없었다. 아뉴피야, 고을을 흐르는 아노마강을 건너자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새벽의 맑은 강바람이 상쾌하게 불어왔다.
싯다르타는 말에서 내렸다. 시종의 손을 잡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찬다카, 수고했네.” 이길이 태자의 출가임을 알아차린 찬다카는 흐느껴 울었다.
싯다르타는 강물에 얼굴을 씻고 허리에서 칼을 뽑아 치렁치렁한 머리칼을 손수 잘랐다.
찬다카는 눈물을 흘리며 그 모양을 말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싯다르타는 몸에 지녔던 패물을 모두 떼어 찬다카에게 내주며 말했다.
“이 목걸이를 부왕께 전하여라. 그리고 싯다르타는 죽은 것으로 생각하시라고 말씀드려라. 내 뜻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왕위 같은 세속의 욕망은 털끝만큼도 없다. 다만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길을 걷는다고 말씀드려라.”
그리고 다른 패물을 주면서 이런 부탁도 했다.
“이것은 이모님과 아쇼다라에게 전하여라. 내가 출가 사문이 된 것은 세속을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혜와 자비의 길을 찾기 위해서라고 말해다오.”
그때 마침 사냥꾼이 그들 곁을 지나갔다. 태자는 그 사냥꾼을 불렀다. 그리고 자기가 입고 온 호화스러운 태자의 옷을 벗어서 사냥꾼에게 주고 사냥꾼의 해진 옷을 얻어 입었다. 머리를 깎고 다 해진 옷을 걸친 싯다르타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카필라의 태자로는 보지 않게 되었다. 그의 모습은 도를 구하는 사문으로 밖에 볼 수 없었다.
“찬다카여, 그럼 우리는 여기서 헤어지기로 하자. 만나면 헤어지는 게 이 세상 인연이 아니냐. 그럼 잘가거라.” 찬다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싯다르타는 마지막으로 타고 온 백마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동안 너는 나를 위해 수고가 많았다. 너도 잘 가거라.”
백마도 이별을 서운해 하는 듯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