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느것이 자네 별인가?

작야월만루(昨夜月滿樓)하더니
창외노화추(窓外蘆花秋)로다
불조상신명(佛祖喪身命)한데
유수과교래(流水過橋來)로구나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나, 전강의 오도송이다.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묘법이요, 온 법계가 원융무애(圓融無碍)하고 일체가 유심조(唯心造)이다. 그러나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또한 얻을 수 없다는 마음도 없다.

내가 25세 때 덕숭산 금선대에 계신 만공 스님을 처음 찾아가서 예배하니 나에게 묻기를 “심마물이 임마래오(甚마物 恁마來)?”하시었다.
내가 다시 예배하니
또 묻기를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어?”하시었다.
이번에는 내가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니
만공 스님은 그만 얼굴을 찌푸리시면서 “허! 저렇게 주제 넘는 사람이 견성했다 해. 네 습기(習氣)냐, 체면없이 무슨 짓이냐?” 이러시고는 그 다음부터는 나를 보시기만 하면 비웃으며 “저 사람, 저런 사람이 견성을 했다 하니 말세 불법이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번번이 조롱을 하시었다.

나는 차츰 불안해지다가 분심이 났다. 선지식이 저러실 때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으리라. 이렇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몸은 극도로 쇠약하여 핏기가 하나도 없어 앉으면 잠이 와서 앉지도 못할 정도로 바짝 말랐다.

그래서 운동대를 붙잡고 서서 ‘에라! 한바탕 해봐야겠다. 그까짓 놈의 몸은 하다가 죽으면 그뿐이지.’하고 나는 만공 큰스님의 말씀을 믿고 그 회상에서 하안거 중 판치생모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다가 반 철이 지날 무렵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 의지(馬祖圓相公案 意旨)’가 확 드러났다.

그 길로 조실 방에 들어가 보월 스님 앞에 원상을 그려 놓고 묻기를 “마조원상 법문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入也打 不入也打)>고 하였으니 조실 스님께서는 어떻게 이르시겠습니까?” 하니
보월 스님은 곧 원상을 뭉개셨다.
나는 보월 스님께 말하되 “납승을 갈등 구덩이(葛藤과臼) 속에 죽이신 것입니다. 마조방하(馬祖棒下)에 어떻게 생명을 보존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보월 스님의 대답이 떨어지기 전에 문을 닫고 만공 스님 처소에 와서 다시 묻되,
“마조원상 법문을 보월 스님께 물었더니 원상을 뭉개었습니다. 이렇게 그르칠 수 있겠습니까?” 하였더니
만공 스님은 도로 나에게 묻되 “자네는 어떻게 이르겠는가?” 하시었다.
내가 답하되, “큰스님께는 이르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더니
만공 스님이 주장자를 초안이에게 주시면서 “자네가 묻게” 하시니
초안 스님이 주장자로 원상을 그리고 “입야타 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 해서, 내가 초안이를 보고 여지없이 일렀다.
그러나 학자를 위해서 설파하지 않는다. 만공 스님께서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면서 점검하시되,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가 있겠느냐(誰知更有夜行人)” 하셨다.

그런 다음, 만공 스님과 한암 스님과의 서신문답과 기타 중요 공안에 대한 탁마(琢磨)를 낱낱이 마치고 떠나려고 할 때, 만공 스님께서 물으시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했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시니
내가 곧 엎드려서 허부적 허부적 땅을 헤집는 시늉을 하니
만공 스님께서 “옳다. 옳다!(善哉善哉)” 인가하시고 곧 나에게 전법게(傳法偈)를 지어 주시되,

불조미증전(佛祖未曾傳)이요
아역무소득(我亦無所得)이라
차일추색모(此日秋色暮)한데
원소재후봉(猿嘯在後峰)이로다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제방 선덕(諸方禪德)들은 한번 착안해 볼지어다.

우리 부처님께서 출가하셔서 여러 유명한 선인들을 차례로 찾아서 도를 물었으나,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으로 극과(極果)를 삼으므로 구경(究竟)의 생사해탈법이 아님을 알고 선인의 처소를 떠나셨다. 이것이 바로 출가의 진면목이다.

참선법을 닦는 대중들이여! 저 비상비비상처정 따위를 얻고서 부처님의 정법을 증득하였다고 하지 말라. 더욱이 입을 벌려서 학자를 속인다면 그 죄는 더욱 크리라. 자기나 눈이 멀지언정 어찌 남까지 눈 멀게 하겠는가. 그러니 이런 선병(禪病)에 걸린 자는 모름지기 눈 밝은 선지식을 찾지 않는다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게 되리라.

지금부터 삼백여년 전 월봉(月峰) 스님이 계셨는데 법문을 잘 하기로 그 당시에 제일 유명하였다. 그때 나라에 큰 재(齋)가 있어 월봉 스님을 법사로 모시고 법회를 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는 나라의 중신과 청신사 청신녀 등 사부대중이 많이 모였다. 그 중에는 허름한 옷을 입은 한 노승도 끼어 있었다. 이 노승이 바로 환성지안 선사(喚醒志安 禪師)인 것이다.

그런데 월봉 스님은 법문을 하실 시간이 되었는데도 웬일인지 떨면서 기력을 잃고 법문을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대중들은 월봉 스님을 억지로 법상에 오르게 하고 법문을 청하였다.

그때 월봉 스님은 『원각경』「보안장」을 설하시는 중에 ‘무변허공 각소현발(無邊虛空 覺所顯發)’이라는 구절을 법문하게 되었는데 월봉 스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무변허공에서 각이 나타난 바이니라” 이렇게 엉뚱하게 법문을 할 때 앉아서 듣고 있던 노승이 벽력같은 ‘할’ 을 하니 월봉 스님은 법상에서 뚝 떨어졌다. 그것은 원각대지(圓覺大智)에서 나온 노승의 일할(一喝)에 그만 정신을 잃었던 것이다.

생사해탈정법은 법문을 잘하고 명성이 높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수행하고 증득하는 데 있는 것이니 만약 그때 노승의 할이 없었던들 대중들은 <무변허공이 각의 나타난 바이다>를 <무변허공에서 각이 나타났다>고 그릇 믿을 뻔하였으니, 부처님의 정법이 사견종자(邪見種子)로 말미암아 얼마나 위태하였겠는가! 그러나 노승의 ‘할’로 부처님의 정법을 바로 잡았으니 이것이 바로 불법정화인 것이다.

소요 스님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자비하여 성동(聖童)이라고 고을 사람들한테 칭송을 받았다. 13세에 출가하여 부휴대사 밑에서 일대시교(一代時敎)를 통달하고 수백 명의 학인 가운데 운곡(雲谷)·송월(松月) 스님과 더불어 법문삼걸(法門三傑)이라고 칭호를 받았던 17세의 소년 강사 소요 스님이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부처님의 경전을 아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마칠 것 같지 않았다.

어느 날 묘향산에 계신 서산대사를 찾아가서 법을 가르쳐 줄 것을 청하니, 서산대사는 보자마자 법기(法器)인 줄 아시고 그날부터 시봉을 시키면서 능엄경 한 토씩을 매일 가르쳐 주셨다. 이미 경전을 통달한 강사인지라 능엄경을 모를 리 없지만 서산대사의 가르침이라 매일 배우다보니 삼 년이 다 지나갔다.

소요 스님이 생각하여 보니 한심하였다. 대선사요, 대도인이라 하여 찾아왔는데 법은 가르쳐 주지 않고 이렇게 다 알고 있는 능엄경만을 가르쳐 주니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참고 계속 배워 가는데 소요 스님이 잠깐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면 서산대사는 웬일인지 때묻은 작은 책을 보시다가는 곧 안주머니에 넣곤 하는데 이렇게 여러 번 계속되고 보니 소요 스님은 그 작은 책에 대하여 매우 관심이 많았다.

하루는 서산대사가 잠자는 틈을 타서 그 작은 책을 보려고 하니 서산대사는 깜짝 놀라 깨어나서 그 책을 더욱 소중히 감추는 것이다. 그러니 더욱 관심이 많아지고 또 무슨 책인지 점점 의심이 커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 작은 책을 보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단속이 심하고 또 그냥 그대로 아무런 법도 얻지 못하였으니, 더욱 화가 나서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소요 스님은 서산대사에게 하직을 고하니 그때야 비로소 서산대사가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던 때와 콧물이 묻은 그 작은 책을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가려고 하거든 이 책이나 가지고 가게.” 하셨다. 서산대사가 주신 책을 펴보니 게송이 있는데,

작래무영수(斫來無影樹)하여
초진수중구(초盡水中구)로다
가소기우자(可笑騎牛者)여
기우갱멱우(騎牛更覓牛)로구나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다가
물 가운데 거품을 태워 다할지니라.
가히 우습다 소 탄 자여
소를 타고 다시 소를 찾는구나.

이 게송을 가지고 호남으로 내려가 20년간을 참구하였으나 깨닫지를 못하고 나이 40에 이르러 다시 묘향산에 돌아가서 서산대사를 뵈오니 감개가 무량하여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20년간을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는 스승이 아니었던가.

서산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공부가 어떻게 되었느냐?”
“떠날 때 주신 게송의 의지를 아직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서산대사께서 “가히 우습다 소 탄 자여, 소를 타고 다시 소를 찾는구나.” 하시는 바람에 소요 스님은 언하에 확철대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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