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조사님들의 가르침에 보면 염불이나 독경계행보시엔 과보가 따르지만 불자라면 반드시 견성성불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견성이라 하는지 몰라서 묻습니다만 제 경우는 마음이 주인이라고 굳게 믿는데 그렇게 믿고 수행하는 자체가 견성인지, 아니면 저희들로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어떠한 다른 경계가 있는 것인지요. 궁금증을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大行) 모르는 것도 탈이지만 너무 잘 알면 아는게 앞을 막아서 성불하기 어렵지요.지금 우리가 이렇게 움직거리게 된 것은 오랜 과거로부터 살아온 자기에 의해서인데 비유하자면 나무의 뿌리와 같죠. 그런데 흙이 덮여서 나무가 제뿌리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무명에 가려서 인간도 영원한 근본 뿌리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견성이란 제 뿌리를 보는 것인데 달리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과거의 자기는 부(父)입니다. 지금의 자기는 자(子)입니다. 부와 자가 상봉하는게 견성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부고 생각을 냈다하면 자인데 가만히 있으면 자가 부로 들어가 하나가 되고 생각을 냈다하면 부가 자로 나와서 하나가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동적으로 말입니다. 그러니 부다, 자다 할 것도 없지요. 그런데 어디 그렇습니까?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자기, 참자기라고 해도 됩니다만 그것은 까맣게 잊고 지금의 자기만을 자기라고 알고 있으니 말하자면 애비를 모르는 자식인 셈이지요. 애비없는 홀로자식은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부와 자를 합쳐 주인공! 한 것입니다. 주인공을 진실히 믿는데에 견성의 길이 있습니다. 알든 모르든 믿으라는 것입니다. 물론 경전도 보고 염불지계보시도 해야지요. 그러나 경전을 보고는 ‘아 이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해 놓으신 것’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벌써 따로따로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내 말은 삼천년전 부처님의 말씀이 오늘의 말씀이요 나로부터 있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내가 있기에 책을 볼 수 있고 독경도 하고 염불도 합니다. 그러니 그게 어찌 그 옛날의 부처님 말씀입니까? 오늘의 내 것이요 오늘의 내 살림이란 말입니다. 자기를 형성시킨 부에서 자가 나왔고 자가 부로 돌아가매 부와 자가 본래 둘이 아닙니다.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진실하게 믿고 물러서지 않는다면 분명 생수가 터질 것입니다. 어떤 경계 따위를 상상하는 것부터가 장애입니다. 그 또한 주인공에 맡기세요. 또 공부한지 몇년이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다는 그런 생각도 아닙니다. 성불해야지 하는 것도 욕심입니다. 욕심을 지닌 채 부처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냥 다 놓고 자유인으로 살 수 있으면, 세세생생의 굴레가 굴레가 아니라면 그게 부처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