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왕위를 보시하다

옛날 어떤 나라의 왕이 자비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잘 보살폈다. 달마다 나라 안을 두루 다닐 때에는 수레에 갖가지 보물과 의복, 약품 등을 싣고 나가, 가난한 사람과 병자에게는 보물과 약을 나눠주고 죽은 사람이 있을 때는 장례를 치러 주었다. 특히 가난한 사람을 볼 때에는 그것을 자신의 허물이라 하여 ‘내가 덕이 있었다면 백성들도 풍족할 것인데 내 덕이 모자란 탓으로 백성들이 가난하다. 지금 이 백성들의 가난은 곧 나의 가난이다.’ 하고 자책했다.
이때 제석천은 왕의 덕행을 시험하기 위해 늙은 바라문으로 변하여 왕에게 가서 돈 천냥을 달라고 했다. 왕은 곧 천냥을 주었다. 그러자 바라문은 받았던 돈을 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늙었습니다. 이 돈을 남에게 빼앗길까 걱정이니 대왕님이 이것을 맡아 주십시오.”
왕은 그 돈을 맡아 주었다. 제석천은 또 다른 바라문으로 변하여 왕에게 가서 왕의 덕을 찬양하고 말했다.
“나는 전생에 복을 적게 지어 본래 귀족의 몸이던 것이 지금의 이렇게 천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대왕의 그 영화를 사모하여 왕위를 얻으려고 왔습니다. 나에게 나라를 맡겨 줄 수 없겠습니까?”
왕은 선뜻 왕위를 내준 다음 처자와 함께 허름한 수레를 타고 궁전을 떠났다. 제석천은 또 다른 바라문으로 변하여 왕의 앞에 나타나 수레를 청하였다. 왕은 기꺼이 수레마저 내어주고 처자와 함께 정처없이 길을 떠났다.
제석천은 다시 맨 처음의 바라문으로 변하여 왕의 앞에 나타나 맡겨 두었던 돈 천냥을 돌려 달라고 하였다.
“나는 나라 전체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느라고 당신이 맡긴 돈을 깜빡 잊었습니다.”
“그러면 사흘 안으로 그것을 돌려 주시오.” 하고 바라문은 말했다.
왕은 아내와 아들을 어느 집에 잡히고 돈 천냥을 얻어 그 바라문에게 돌려주었다. 왕의 아내와 아들은 그 집에서 도둑의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혀 있다가 마침내 사형을 당하여 거리에 버려졌다.
왕은 남의 집 고용살이로 돈 천냥을 벌어 아내와 아들을 구하려고 찾아갔다가 거리에서 참혹하게 죽은 그들의 시체를 보았다. 그래서 왕은 ‘나는 전생의 악업으로 인해 지금 이런 과보를 받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시방 세계의 모든 부처님께 전생의 자기의 죄를 참회하였다.
그런 후 왕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선정에 들어 신통의 지혜로 이제까지의 모든 일들이 다 제석천의 시험임을 알았다. 그 뒤 왕은 백성들의 간청으로 다시 왕위에 나아가 나라를 잘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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