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절은 능례(能禮)와 소례(所禮)로 이루어진다.
능(能)은 주체요 소(所)는 대상으로, 능례는 절하는 ‘나’를 소례는 그 절을 받는 불보살을 가리키는 것이다.
중생의 분별 세계에서는 이 능과 소가 언제나 붙어 다니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토록 중요시하는 ‘나’도 ‘너’가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너’가 없으면 ‘나’라는 존재도 있을 수 없다. 선악(善惡)도 마찬가지요, 사랑과 미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상대적인 것이 결코 두 몸을 가지고 있거나 다른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처럼 항상 함께 하고 있다. 곧 예배를 하는 이와 예배를 받는 분이 완전히 별개의 존재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불이(不二)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절을 하는 사람과 절을 받는 분은 무엇에 의지하여 손의 앞, 뒷면처럼 존재하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참된 마음자리이다. 절을 받는 부처님은 참 마음자리를 회복해 가진 분이요, 절을 하는 우리는 참 마음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발현을 시키지 못하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기도하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 또한 우리의 마음자리 능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일이다. 만약 이렇게만 하면, 절을 받는 부처님과 절을 하는 우리의 마음자리가 하나로 계합하여 어떠한 소원도 능히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의 참 마음 자리! 모든 것은 이 마음자리로부터 생겨난다. 비록 이 마음자리는 특별한 모습이나 실체가 없지만, 인연이 화합하면 갖가지 묘한 모습과 작용을 나타내 보이게 된다.
좋고 궂은 모든 일도 바로 이 마음자리에서 일어나고, 기도 성취의 근원적인 힘도 이 마음자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곧 기도를 제대로 하면 참된 마음자리에서 묘한 힘이 흘러나와 기도를 이루게 하는 것일 뿐, 다른 특별한 존재가 있어서 감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불자들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日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