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계이야기] 1. 불살생(不殺生) – 살리는 속에 깃드는 행복

여기서 잠깐 태국, 스리랑카, 미얀마 등 남방의 불자들이 외우는 불살생계문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들은 절에 오면 부처님 앞에 꿇어앉아 세 번 절을 하고 삼귀의를 외운 다음, 5계를 잘 지키며 살겠다는 맹세를 한다.

그들의 5계를 외울 때 제일 먼저 외우는 것이 불살생계인데, 그 말의 뜻이 아주 묘하다.

“파안나티파타 베라마니”

안나티파타는 그냥 ‘살생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안과 밖으로 살생하지 말라’는 말이다. ‘안(an)’은 하지 않겠다는 뜻의 부정사이고, ‘나티(nati)’는 안을 상해한다, ‘파타(pata)’는 밖을 상해한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남의 속을 상하게 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속도 상하는 일이 없고, 자기의 속을 상하지 않게 하는 사람은 남의 속도 상하지 않게 한다. 똑같은 이치로 남의 육신을 상해하지 않게 되면 자기의 몸도 상해를 입지 않게 되고, 남을 때리지 않는 사람은 남에 의해 다칠 것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남방 불교도들이 ‘안나티파나’라고 함은 “안과 밖으로 폭력을 써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하는 맹세인 것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장수만세> 라는 프로를 보았는데, 아나운서가 70이 넘은 한 노인에게 질문하였다.

“장수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 마누라 속을 썩이지 않는 것이 저의 장수 비결입니다.”

이 대답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였다.

그러나 그냥 우스갯소리 같은 이 말 속에 깊은 생활철학이 담겨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러한가?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데 있어 부부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부부는 모든 일을 함께 의논하며 살아간다. 부부는 한 몸이요, 서로를 가장 아껴주는 이가 부인이고 남편인 것이다.

이와같이 한 몸이나 다를 바 없는 부인의 속을 썩이지 않는다면 남편의 마음도 그만큼 편안할 것이다. 또 남편 때문에 속을 상할 일이 없는 부인은 항상 즐겁고 평화롭고 따스한 마음을 갖추게 될 것이며, 자연히 음식도 정성껏 만들고 때때로 정성껏 달인 보약도 대령할 것이다. 어찌 남편이 건강해 지지 않을 수 있으리.

이와는 반대로 부인의 속을 썩여 놓으면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 음식도 아무렇게나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남편의 속도 썩게 마련이고, 마음마저 불편하여 하는 일까지 시원스럽게 풀리지 않게 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마누라 속을 썩이지 않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한 그 노인의 말은 명답이 아닐 수가 없다. 실로 남방 불교권의 살생계문에서 말한 ‘안나티파타’의 정신의 그대로 담겨진 있는 것이다. “나의 속을 상하게 하지도 말고 남의 겉을 상하게 하지도 말라.” 는 말은 불살생의 뜻을 보다 근원적이고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표현한 것이며, 그 노인의 생활신조 또한 불살생계의 교훈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불살생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비로써 생명을 살리며 그 공덕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데까지 이른다.

옛날, 관상을 잘 보는 한 스님이 친구의 아들을 상좌로 데리고 있었다. 아들의 명이 너무 짧으므로 스님을 만들면 짧은 명을 넘길 수 있지나 않을까 하여 보내왔던 아이였다.

어느날 상좌의 관상을 보던 스님은 깜짝 놀랐다. 1주일 안에 상좌가 죽을 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스님은 친구의 어린 아들이 절에서 죽으면 친구 내외가 너무 섭섭해할 것 같고, 다만 며칠이라도 부모 옆에서 같이 지내게 해주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하여 상좌에게 말하였다.

“집에 가서 삼베옷도 한 벌 만들고 무명옷도 만들고 버선도 짓고 하여, 한 열흘 다녀오너라.”

그 동안에 집에 가서 부모도 만나고 부모 앞에서 죽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상좌는 열흘이 지난 뒤에 옷도 만들고 버선도 짓고 스님 잡수시라고 떡까지 해 가지고 아무 일 없이 돌아왔다. 돌아온 상좌의 얼굴을 보고 스님은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얼굴은 본래 단명한 상에다 최근에 상이 아주 나빠져서 꼭 죽는 줄 알았는데, 그 나쁜 기운은 완전히 사라졌을 뿐 아니라 앞으로 장수할 상으로 변하여 있었던 것이다. 틀림없이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스님은 상좌에게 자초지정을 물었고, 상좌는 다음과 같이 사실을 아뢰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작은 개울을 건너가게 되었는데, 개미떼 수천 마리가 새까맣게 붙어 있는 큰 나무껍질이 흙탕물에 떠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작은 폭포가 있고 그 아래 물이 소용돌이치고 있어 모두가 물에 빠져 죽을 상황이었습니다. 순간 스님께서, ‘죽을 목숨을 살려주어야 불자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고 복을 받는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얼른 옷을 벗어부쳐, 옷으로 나무껍질과 그 개미들을 다 받아 가지고 마른 언덕 땅에다 놓아주었습니다.”

스님은 그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 상좌의 등을 두드려주며 말씀하셨다.

“그러면 그렇지! 개미떼를 살려준 공덕으로 장수하게 되었고 부처님의 법을 잘 공부하게 되었구나. 다 불보살의 가피력이시다.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7일 뒤에 죽을 상좌의 생명이 방생한 공덕으로 70년 연장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영험담은 경전이나 영험록에 허다하게 많이 있다.

무릇 생명을 살리면 몸에 있던 병도 낫고 업장도 소멸되고 운명도 능히 새롭게 바뀌게 된다. 참으로 ‘나’를 사랑하는 이라면, ‘불살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뭇 생명을 살리는 자비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日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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