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5. 자비(慈悲)로써 보시(布施)하자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경전을 통하여 이제까지 우리가 살펴본 세 가지 보시 중 그 어떤 보시라도 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셨다.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제자답게 힘에 따라 형편에 따라 법과 재물을 은혜롭게 베풀 줄 알아야 한다. 꼭 부처님께서 시켰기 때문에 하자는 것이 아니다.

중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재물과 법을 베풀어서 나와 중생의 마음 밑바닥에까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간탐심을 보리심으로 바꾸어놓아야 한다.

우리 모두 자비로써 보시하자. 그리고 그 자비를 더욱 승화시켜 동체대비를 이룰 수 있도록 하자.

동체대비! 그것은 한 몸의 사랑이요, 동체대비에 입각한 보시는 내가 나에게 주듯이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보시이기에 여기에는 주는 사람, 받는 사람, 주고 받는 물건에 대한 미련이 없다.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주었지. 많은 공덕이 있을거야.”

이러한 자랑 섞인 보시는 자비보시가 아니다. 아직은 모자람이 있는 보시이다. 보시가 해탈로 직결되려면 서로 동체라는 인식 아래 평등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너에게’라는 상대적인 생각, ‘내가 베풀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베푼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온전한 해탈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곧 보시는 평등한 마음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오직 평등한 마음,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보시를 해야 한다. 하나의 법계 속에 살고 있는, 미래 부처될 존재들끼리 기꺼이 나누어 살고자 하는 마음…

만일 이렇게 평등심을 유지하여 보시를 한다면 부처님의 평등성지를 얻어 해탈할 수 있으며, 능히 보시바라밀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무주상보시이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무주상보시를 고집하거나 강요해서는 안된다. 또한 동체대비의 보시가 되지 않는다고 포기할 일도 아니다. 우선은 베푸는 일이 중요하다. 베푸는 연습을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보시한 것을 자랑하고 싶으면 자랑을 해도 좋다. 결코 ‘무주상’을 강조하며 자랑을 막을 필요도 없다. 오직 나와 남의 마음을 여는 보시를 끊임없이 행하다보면 모양을 내는 것은 언젠가 저절로 사라지기 마련인 것이다.

모든 불자들이여, 우리 모두 ‘내 마음’의 그릇 속에 하루 아침의 티끌을 담지 말고 천년의 보배를 담도록 하자. 베풀면서 마음을 닦고 환희심을 기르도록 하자.

그리고 형편 따라 염불하고 기도하고 참선하여 마음자리를 밝혀가도록 하자. 틀림없이 이것이 ‘나’의 인생을 보배롭게 만든다. 현생에서 뿐만 아니라 내생에서도 ‘나’의 등불이 되고 세세생생 나와 함께 앞길을 밝혀주는 것이다.

부디 명심하고 또 명심하여 결코 다함이 없는 양식을 마련하기 바란다.

日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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