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2. 인색함의 결과

일제시대, 경상북도 경산에는 김해생이라는 만석꾼이 살고 있었다.

말할 수 없이 노랑이었던 그는 어쩌다 밥상에 쌀밥이 올라오면 집안 식구 모두를 불러놓고 호통을 쳤다.
“왜 보리밥을 안 해먹는 거야? 쌀밥만 해먹으면 집안 망한다. 집안 망해!”

거듭되는 꾸중에 식구들은 쌀밥을 지을 때 보리쌀 한 사발을 솥 밑에 앉혀 노인에게만 보리밥을 주고, 그들은 쌀밥을 먹었다. 결국 그 집안에서 보리밥을 먹고 살았던 사람은 누구였던가? 오직 김해생뿐이었다.

김해생은 전답뿐만 아니라 돈도 굉장히 많았다. 그러나 돈을 움켜쥐고만 살 뿐 쓸 줄을 몰랐다. 그는 아내에게도 돈을 주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졸라도 돈을 주지 않자, 아내는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놓고 빌기까지 하였다.

“우리 영감이 제발 돈 좀 주게 해주십시오. 돈 좀 주게 해주십시오.”

그렇지만 이러한 기도도 김해생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다. 김해생은 혼자 있으면서도 항상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다녔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자세히 들어보면 모두가 재산에 관한 것뿐이었다.

“저 건너 대추나무골 김생원한테 쌀 한 가마니를 빌려주었으니, 추수가 끝나면 한 가마니 반을 받을 것이다. 샘골 박노인에게는 소작료로 나락 열 섬을 받아야지.”

날마다 김해생은 받을 것을 계산하며 재물의 노예가 되어 살았다. 이렇게 한평생을 살던 김해생에게 어느날 불시에 찾아온 것은 저승사자였다. 그렇지만, 바로 그 순간에도 김해생은 평생 모은 돈을 가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던지, 문갑 속에 넣어두었던 100원짜리 지폐 세 뭉치를 꺼내어 두 뭉치는 양손에 쥐고 한 뭉치는 입에 꽉 물고 죽었다.

일제시대에는 100원이 매우 큰 돈이었다. 보통 사람은 한평생 100원짜리 한번 만져보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김해생은 3만원이라는 거금을 저승길로 가져가고자 했던 것이다.

아들들이 아버지의 돈을 빼내려 했지만 워낙 세게 쥐고 있어 뺄 수가 없자 시신을 향해 사정을 했다.

“아버지, 돈 주십시오. 돈을 주셔야 장사를 치르지요. 이제 그만 돈을 놓으세요.”

그러나 죽은 노인은 쥔 돈을 놓을 줄 몰랐다.

그럭저럭 9일장을 끝내고 장지로 가야 할 시간이 되자 아들들은 결론을 내렸다.

‘억지로라도 돈을 빼어야지, 돈까지 묻을 수는 없다.’

하지만 완전히 굳어진 손과 입은 꼼짝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손을 펴고 입을 벌리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아들들은 펜치로 아버지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부러뜨려 돈을 빼앗았고, 이빨을 모두 뽑은 다음 돈을 빼냈다고 한다.

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 돈에 대한 애착 때문에 자신의 몸은 고사하고, 자식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시신을 상하게 한 죄를 짊어지고 살도록 한 것이다.

돈을 잘못 쓰면 이토록 처참해질 뿐이다.

만약 돈에 얽매여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

한평생 돈을 모으기 위해 아둥바둥해본들, 막상 죽음이 눈앞에 왔을 때 나와 함께 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돈인가? 명예인가? 권력인가? 사랑하던 사람인가?

아니다. 모두가 아니다. 오직 나의 업, 내가 지은 업만이 나와 함께 할 뿐이다.

日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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