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공덕(佛性功德)과 그 관조(觀照) IV

석공관(析空觀)

다음은 석공관(析空觀)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공(空)이다’ 해도, 공을 잘 못 느낍니다. ‘분명히 있는 것인데 어떻게 우리가 공(空)을 느껴’ 하고 잘 못 느끼니까 현대 분석과학(分析科學)적인 방법처럼 공을 느끼게하는 부처님 법문이 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법문입니다. 이런 공(空)은, 지금 현대적인 사람들도 역시 분석(分析)을 하고 실험을 해봐도 그걸 잘 안 믿는데, 옛날에는 어떻게 느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그 당시 부처님께서 이렇게 물질을 분석해 나가는 법을 인용해서 공(空)을 느끼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석공관(析空觀)이라, 공을 분석하는 하나의 관법(觀法)입니다.

먼저 극유진(隙有塵)이라, 틈 극자, 있을 유, 먼지 진자 입니다. 틈에 있는 먼지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평소에는 먼지가 잘 안 보여도, 태양광선(太陽光線)이 문틈으로 쭉 비쳐오면 그때는 먼지가 분명히 있는지라, 광선 따라서 먼지가 보입니다. 그 정도의 미세(微細)한 티끌, 이것이 극유진입니다.

그런 것이 현대적인 말로는 성분(成分)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부처님 당시의 경문(經文)에 있는 술어로 말씀한 것과 현대 과학적인 술어로서 약간 배대(配對)를 시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과학에서 말하는 성분은 불교에서 말하는 극유진에 해당한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은 우모진(牛毛塵)이라, 마치 소의 터럭 끄트머리 정도의 작은 티끌이라는 말입니다. 그 정도의 티끌은, 지금 말로는 분자(分子)에 해당합니다. 수소분자나 또는 산소분자나 그런 분자를 말하겠지요.

그 다음은 양모진(羊毛塵)이라, 마치 양 터럭 끄트머리 정도나 작은 티끌입니다. 양 터럭은 소 터럭 보다 더 작겠지요. 현재의 말로는 원소(元素)에 해뵹합니다.

그 다음은 토모진(兎毛塵)이라, 토끼털은 더 작으니까, 전자(電子)에 해당하고, 그 다음은 수진(水塵)이라, 이것은 우리 눈으로는 볼 수는 없지마는, 하나의 수소 부스러기를 말합니다. 물의 티끌이니까 수소같은 것을 의미했겠지요. 지금으로 말하면 양자(陽子), 양핵(陽核)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그 다음은 금진(金塵)이라, 이것은 원자핵(原子核)의 본질(本質)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나야, 각 물질이라고 하면, 사람 몸이나 하늘에 있는 별이나 일체 만유(萬有)의 근본이 다 원자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현대과학은 원자핵의 본질을 잘 모릅니다. 무슨 소립자(素粒子) 무슨 중성미자(中性微子)를 말하지만 그 핵(核)의 본질은 모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원자핵의 본질을 이미 알고서 말씀을 다 했습니다. 이것이 금진(金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금진보다도 더 미세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진(微塵)이라, 아주 미세해서 사람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금진도 사람 눈으로는 못 본다는 것입니다만 미진은 더욱 못 보는 셈이지요. 이것은 식립(識粒)이라, 우리 의식의, 우리 마음의 부스러기라는 말입니다.

그 다음은 더 미세한, 극미를 이루는 미세한 요소, 이것이 극미진(極微塵)입니다.

그리고 가장 미세한 부스러기가 린허진(隣虛塵)입니다. 물질 가운데서 린허진이 제일 미세한 셈입니다. 이보다도 더는 분석을 못합니다. 이것은, 불교말로 하면 비공비유(非空非有)라, 공도 아니고 또는 있지도 않다는 말입니다. 하도 적으니까 말입니다.

그 다음은 텅 빈 진공(眞空)입니다. 일체 만물은 결국은, 다 분석해 보면 나중에는 다, 진공(眞空)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나 진공(眞空)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나 진공(眞空)위에서 이와 같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본다면 현계욕계진(顯界欲界塵)이라, 지금 우리 중생이 사는 나타나 있는 세계인 욕계(欲界)는 수진(水塵)까지, 과학적으로 말하면 양자(陽子)까지가 욕계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의 금진(金塵)과 미진(微塵)과 극미진(極微塵)까지 색계진(色界塵)에 해당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원자핵의 본질이라든가 또는 식의 부스러기인 식립(識粒)이나 또는 일체 물질의 끄트머리라는 색구경(色究竟)이나 이것은 색계진(色界塵)에 해당합니다.

우리 중생이 갔다 왔다 하는 세계가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인 삼계(三界) 아닙니까, 우리가 욕계로 갔다가 색계로 갔다가 무색계로 갔다가 그렇게 하는 것인데, 우리는 지금 욕계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받아 쓰는 것은 이러한 수진(水塵) 이상, 즉 말하자면 양자(陽子) 이상, 원자핵(原子核) 이상만 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하 더 미세한 것은 모릅니다.

그런데, 색계(色界)는 그보다도 더 미세한, 즉 말하자면 원자핵의 본질로 되어 있는 아주 미세한 소립자로 구성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또, 무색계(無色界)는 그런 것도 없이 마음 부스러기만, 마음의 하나의 염파(念波)만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중생이 물질에 너무 집착하니까 물질에 대한 욕망을 털기 위해서 이같이, 분석하는 방법을 부처님께서 내세우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야말로 참, 이렇게 저렇게 백방(百方)을 다해서 우리 중생한테 무상(無常)을 알게 하기 위해서, 내나야 근본은 텅 빈 것인데, 텅 빈 것을 제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들으니까 분석도 해봤다가, 이렇게도 해봤다가, 가지가지 종종으로 방편(方便)을 내세운 것입니다.

하여튼, 우리는 그런 줄 짐작하고서, ‘아, 이것이 결국은 무상(無常) 한지라 얼마 안 가면 나중에는 허물어지고 마는 것이다’ ‘아, 내나야 내 몸뚱이가 분석해 보면 결국은 이처럼 모두 원소 하나의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구나’ 이렇게 느끼면서 집착을 털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원인(原因)으로서는 각 물질을 분석하는 석공관(析空觀)으로 해서, 결국 나중에는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것입니다.

텅 비어 있지만, 결국은 다만 비어 있지(但空)가 않은 묘유(妙有)입니다. 진공(眞空) 가운데 일체 만덕(萬德)이 다 갖추어져 있는, 결국은 묘유(妙有)가 있다는 말입니다.

공(空)만 있으면 그때는 불교가 안됩니다. 공은 다만 공(但空)이 아니라, 참다운 영원적인 유(有), 영원적인 행복스런 열반사덕(涅槃四德)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있어야만이 비로소 불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같이 분석하는 의도(意圖)는 먼저 허망(虛妄)한 물질을 분석해서 허망하지 않는 영생(永生)으로, 변치 않는 참다운 묘유(妙有), 참다운 나(眞我), 참다운 열반(涅槃) 그러한 것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인(因)으로 해서는 석공관(析空觀)을 써서, 과(果)로 해서는 진공묘유(眞空妙有)를 우리가 증(證)한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이렛날이고 내일 아침에는 해제(解制)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 한 차례나 더 법문을 할 셈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일주일동안에 대체로 빼놓지 않고 들으신다면 ‘참선은 무엇이다’ ‘불교는 어떤 것이다’ 이런 것을 세밀히는 모른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다소 윤곽 정도는 짐작하리라 생각하고 말씀을 드리는 것 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께서 빠지시기도 하고, 중간에 오시기도 하면은, 먼저 말한 것과 줄거리가 안 서서 알기가 참 곤란스럽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모인지라, 인연(因緣)이 할 수가 있습니까?

오늘 밤과 내일 아침까지 해서 이제 대체로 이번 삼동(三冬) 용맹정진에 하고자 하는 부처님 법문을 끝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대로 그치겠습니다.

淸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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