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해탈의 길 06. 인과악연

만사가 인과의 법칙을 벗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어, 무슨 경과든지 그 원인에 정비례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은 우주의 원칙이다.

콩 심은 데 팥 나는 법 없고 팥 심은 데 콩 나는 법 없나니, 나의 모든 결과는 모두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 결과를 맺는다.

가지씨를 뿌려 놓고 인삼을 캐려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미친 사람일 것이다. 인삼을 캐려면 반드시 인삼씨를 심어야 한다.
불법도 그와 마찬가지로, 천만사가 다 인과법을 떠나서는 없다. 세상의 허망한 영화에 끄달리지 않고 오로지 불멸의 길을 닦는 사람만이 영원에 들어갈 수 있다.

허망한 세상 길을 밟으려면 영생을 바라는 사람은 물거품 위에 마천루를 지으려는 사람과 같으니 불쌍하기 짝이 없다.

이것이 생사윤회하는 근본 원칙이니, 대도를 닦아서 불멸을 얻으려는 사람은 모든 행동을 이 원칙에 비추어, 일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영원을 위해서 악인과는 맺지 않아야 한다.

모든 일이 다 내 인과 아님이 없나니, 추호라도 남을 원망하게 되면 이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며 이같이 못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모두 내가 지어 내가 받는 것인데 누구를 원망한단 말인가? 만약 원망한다면 명경을 들여다보고 울면서, 명경 속의 사람보고는 웃지 않는다고 성내는 사람이다. 또 몸을 구부리고 서서 그림자 보고 바로 서지 않았다고 욕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어리석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천만사가 전생이건 금생이건 다 내 인과인 줄 깊이 믿어 남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가 더욱더 노력하여야 할 것이니, 이래야 인과를 믿는 수도인이라 이름할 것이다.

털끝만큼이라도 남을 해치면 반드시 내가 그 해를 받는다. 만약 금생이 아니면 내생, 언제든지 받고야 만다. 그러므로 나를 위하여 남을 해침은 곧 나를 해침이고, 남을 위하여 나를 해침은 참으로 나를 살리는 길이다.

부처님께서 전생에 누더기를 깁다가 모르고 바늘로써 누더기 속에 들어 있는 이 한 마리를 찔러 죽였다. 이 인과로써 성불하여서도 등창이 나서 오랫동안 고생하셨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정업은 면하기 어려우니, 자기가 지은 죄업은 꼭 재앙을 받고 만다.

인과의 법칙은 털끝만치도 어김이 없다. 그러나 출가한 불자로서 수도를 부지런히 하지 않고 해태굴에 빠져서 시주물만 헛되이 소비하는 무리는 하루에 천 명을 때려 죽여도 인과가 없다 하였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오직 부지런히 정진해야 할 것이다. 비극 가운데서도 비극은 스님이 가사 입은 몸으로서 공부를 부지런히 하지 않고 게으름만 부리다가, 죽어도 악도에 빠져 사람 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지금 불자로서 사람 몸을 잃지 않을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 걱정하고 걱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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