뗏목의 비유를 말하고 난 부처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와 {내 것}이라는 잘못된 소견이 일어날 수 있는 다섯 가지 경우가 있다. 그것은 물질(色)과 감각(受)과 생각(想)과 의지작용(行)과 의식(識)이다.
무지해서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고 가르침을 모르는 사람은 이 다섯 가지 경우에 대해서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나}다’ 라고 생각하여 그것에 집착한다. 그러나 많이 배우고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며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그 다섯 가지에 대해서 그와 같이 생각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이 없어졌다고 하여 바른 생각을 잃거나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이때 어떤 비구가 물었다.
“부처님, 어떤 외계의 사물로 인해 바른 생각을 잃고 두려움에 떠는 일이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자. ‘이것이 전에는 내 것이었는데 이제는 내 것이 아니다. 다시 내 소유로 만들 수는 없을까?’ 그래서 그는 슬퍼하고 탄식하며 가슴을 치고 운다. 이것이 외계의 사물로 인해 바른 생각을 잃거나 두려움에 떠는 일이다. 그러나 슬퍼하거나 탄식하지 않고 가슴을 치고 울지 않는다면 그는 외계의 사물로 인해 바른 생각을 잃거나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부처님, 그렇다면 마음속의 어떠한 것으로 인해 바른 생각을 잃고 두려움에 떠는 일이 있겠습니까?”
“이 세계와 나 자신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나는 없다’고 하는 여래의 가르침을 들으면 슬퍼하고 탄식하며 가슴을 치고 울 것이다. 이것이 마음속의 어떠한 것으로 인해 바른 생각을 잃고 두려움에 떠는 일이다. 너희들은 영원히 변치 않고 지속되는 것을 가지고 있거나 본 일이 있느냐?”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실체도 없는 {나}에 집착하면 항상 근심과 고통이 생기는 법이다. 내가 있다면 내 것이 있을 것이고, 내 것이 있다면 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내 것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세계와 내가 영원히 변치 않고 존재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소견이다. 이 가르침을 안 제자들은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들어서 물질과 분별을 싫어하고 욕망을 버리고 해탈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구를 가리켜 장애를 벗어난 자, 장애를 부순 자, 번뇌의 기둥을 빼어버린 자, 걸림이 없는 자,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자, 속박을 벗어난 성자라 부른다.
이와 같이 말한 내게 대해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저 사문 고타마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없어져 버린다고 가르치는 자다’라고 비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와 같이 말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현재의 고뇌를 말하고 그 고뇌를 끊어 없애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아무리 남들이 비난하고 욕하더라도 나는 조금도 마음을 쓰거나 원한을 품지 않는다. 또 누가 칭찬하고 공경할지라도 나는 조금도 기뻐하거나 우쭐거리지 않는다. 비난하거나 칭찬하거나 나는 ‘그들이 내게 이렇게 하는 것을 이전부터 알고 있다’ 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너희 것이 아닌 것은 모두 버려라. 그것을 버리면 영원한 평안을 누릴 것이다.
너희 것이 아니란 것은 무엇인가?
물질은 너희 것이 아니다. 그 물질을 버려라.
감각은 너희 것이 아니다. 그 감각을 버려라.
생각은 너희 것이 아니다. 그 생각을 버려라.
의지 작용(意志作用)은 너희 것이 아니다. 그 의지 작용을 버려라.
의식은 너희 것이 아니다. 그 의식을 버려라.
어떤 사람이 이 숲속에 와서 풀과 나뭇가지를 날라다 불사른다고 하자. 너희들은 이때 그는 우리 물건을 날라다 마음대로 불사른다고 생각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나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너희 것이 아닌 것은 버려라. 그것을 버리면 너희는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